본문 바로가기

공연리뷰

[리뷰]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불멸의 클래식 시리즈 V (글 : 최은규_음악칼럼니스트)

  • 작성일2011-10-04
  • 조회수5925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불멸의 클래식 시리즈 V  
 
 
 
 
 
올해 부천필이 야심차게 내놓은 불멸의 클래식 시리즈는 알차고 참신한 프로그램으로 음악애호가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9월 23일에 부천시민회관 대공연장에서 열린 ‘불멸의 클래식’ 다섯 번째 무대 역시 부천필의 연주력을 재확인할 수 있는 충실한 무대였다. 특히 지휘자 김진과 피아니스트 유영욱의 활약이 돋보인 음악회였다.  
 
 
 
베를리오즈와 라벨, 스트라빈스키 등 대곡 위주로 구성된 이번 프로그램은 지휘자에게나 단원들에게나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간 부천필의 레퍼토리는 베토벤과 슈만, 브람스 등 독일 작곡가들의 작품에 치중되어 있기에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몇 차례 부천필을 지휘하며 단원들과 유대를 쌓은 지휘자 김진은 짧은 리허설 기간 동안 여러 대곡들을 깔끔하게 해석해내며 음악회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공연 내내 세심하면서도 확신에 찬 태도로 작품 하나하나를 잘 다듬어낸 그의 리더십은 인상적이었다.  
 
음악회의 도입부를 화려하게 장식한 베를리오즈의 ‘로마의 사육제’ 서곡은 서정적이고 목가적인 음악과 화려하고 경쾌한 살타렐로 춤곡이 공존하는 작품으로, 예측을 불허하는 변화무쌍한 전개를 보이는 음악이다. 김진이 이끄는 부천필은 각 부분들을 매끄럽게 연결해내려 하기 보다는 이 서곡에 담긴 갖가지 음악 고유의 성격과 특징을 잘 살려내며 설득력 있는 연주를 들려주었다. 잉글리시호른의 아름다운 솔로가 돋보인 안단테 섹션과 타악기의 색채감이 절정에 달한 종결부에서 부천필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공연 전반부 마지막 곡으로 연주된 라벨의 ‘우아하고 감상적인 왈츠’는 전반적으로 깔끔하고 무리 없는 연주였으나 프랑스 음악 특유의 감각적인 세련미를 보여주었다고 하기는 어려웠다. 이는 충실하고 찰진 톤을 지닌 부천필의 오케스트라 음색과 라벨의 작품에서 요구되는 가벼우면서도 감각적인 음색과 잘 맞지 않았기 때문인 듯하다. 이 작품을 구성하는 여러 왈츠들 중 떠들썩하게 시작되는 제1왈츠와 제7왈츠의 클라이맥스 부분은 인상적이었으나 향수어린 감성과 미묘한 우아함을 표현해야하는 제2, 제3왈츠 등 이후의 왈츠에서는 세부적인 섬세한 맛이 잘 드러나지 못해 다소 지루한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왈츠 특유의 춤곡 리듬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휴식 후 연주된 그리그의 피아노협주곡은 이번 음악회의 하이라이트라 할 만 했다. 피아니스트 유영욱의 탁월한 연주는 첫 음에서부터 관객들의 귀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타이밍과 강약 조절을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유영욱의 연주는 즉각적으로 사람의 가슴을 파고드는 힘이 있었다. ‘북구의 쇼팽’이라 불리는 작곡가 그리그는 서정적이고 달콤한 선율의 달인으로 통하지만 유영욱의 피아노 연주로 재현된 그리그의 음악은 단지 달콤하지만은 않았다. 그것은 희로애락의 갖가지 정서가 혼재하는 음악이며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음악이었다. 강렬한 도입과 애수 띤 주제의 매력이 살아난 1악장과 서정적인 낭만으로 가득한 2악장, 역동적인 리듬이 강조된 3악장에 이르기까지 연주자와 관객 모두 긴장을 늦출 수 없을 만큼 음악에 몰입했다. 마침내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 연주가 모두 끝나자 부천 시민회관 객석을 메운 청중들은 열띤 환호를 보내며 피아니스트에게 갈채를 보냈다. 
 
유영욱은 앙코르로 슈만의 ‘헌정’을 연주해 관객들의 환호에 답했다.  
부천시민회관의 리노베이션 후 첫 무대이기도 했던 이번 음악회는 달라진 객석과 무대음향을 확인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시민회관 객석의 좌석이 쾌적해졌을 뿐 아니라 음향 역시 전보다 한결 또렷하고 울림이 좋아져 스트라빈스키의 화려한 관현악곡을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불새’ 모음곡을 여는 전주곡의 도입부는 첼로와 더블 베이스의 여리고 묵직한 음 하나하나가 또렷하게 전달되며 긴장감을 자아냈고 ‘카체이 왕의 춤’을 여는 베이스 드럼의 강한 타격 매우 크고 충격적으로 전달되면서 객석의 분위기가 술렁이기도 했다. ‘불새의 춤’에선 목관악기와 현악기 간의 앙상블이 위태로운 순간도 있었고 ‘공주들의 원무’는 다소 밋밋하게 표현되어 아쉬움을 남기기는 했지만, 카체이 왕의 춤과 피날레에서 부천필의 기량이 제대로 발휘되면서 역동적이고 활력에 넘치는 결말을 이끌어내 갈채를 받았다. 연주를 모두 마친 지휘자와 단원들은 쉽지 않은 프로그램의 음악회를 무사히 마친 것에 만족스러운 듯 서로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며 유대를 과시했다. 힘들고 긴 프로그램을 준비한 탓인지 오케스트라는 앙코르곡을 연주하지 않았지만 부천필의 성실한 무대에 청중 모두 흡족해하는 표정이었다.  
 
 
 
앞으로도 매 음악회 때마다 충실한 프로그램과 정돈된 연주로 음악애호가들에게 다가가는 부천필의 변함없는 모습을 기대해본다.  
 
글 : 최은규(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