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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리뷰]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Maestro+Virtuoso Ⅲ (글 : 박제성_음악칼럼니스트)

  • 작성일2011-10-06
  • 조회수5517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Maestro+Virtuoso Ⅲ 
 
 
 
냉철함으로 무장한 뜨거운 열정으로 콘서트장을 휘어잡는 마에스트로 임헌정은 그 입장부터 확연히 달랐다. 걸음걸이부터 한결 사뿐함을 머금고 있는 듯 했고 그 부드러움을 머금은 미소는 청중들에게 무엇인가를 나누고 싶어함을 알아챌 수 있었다. 부천필하모닉의 단원들 앞에 놓인 포디움에 올라선 상임지휘자 임헌정의 그 여전한 카리스마는 지금까지 보아왔던 그것과는 사뭇 다르기에 이 날의 공연회에 임한 지휘자의 새로운 의도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무대로 걸어나오면서부터 9월 28일 부천시민회관 대공연장에서의 연주회는 시작되었다. 
 
 
 
 
 
부천 시민의 날 경축행사로 마련된 이 날의 연주회에는 관련 공무원들도 대거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주었다. 그러나 이 날의 진정한 주인공은 아이들과 혹은 부모님을 모시고 온 가족 단위의 많은 시민들 및 좌석 중간중간 눈에 확연히 띄는 부천필하모닉을 사랑하는 열혈 애호가들이었다. 연주회 시작 전부터 그들의 뜨거운 기대감이 홀 전체에 가득 메워지는 모습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이 날은 부천 시민의 날을 경축하기 위한 연주회이기도 하지만 부천필하모닉이 2011년에 새롭게 선보이고 있는 프로그램인 Maestro + Virtuoso 시리즈의 연장선이기도 했다. 가장 먼저 프로그램은 경축 행사로 적합한 대중친화적인 레퍼토리가 주를 이루었다. 주페의 ‘시인과 농부’ 서곡과 슈트라우스 2세의 ‘박쥐’ 서곡을 비롯하여 폰키엘리의 오페라 ‘라 지오콘다’ 가운데 발레음악인 ‘시간의 춤’, 스메타나의 교향시 ‘나의 조국’ 가운데 ‘몰다우’가 그것이다.  
 
그리고 ‘시인과 농부’ 서곡 다음의 1부 마지막 곡으로는 리스트 피아노 협주곡 1번이 등장했다. 올해 리스트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고자 하는 담아, 차세대 비르투오소로 각광받고 있는 피아니스트 김준희가 이 거대한 작품에 도전했다. 화려한 비르투오시티를 자랑하는 작품이지만 트라이앵글이 등장하는 마지막 악장은 이 날을 축하하기에 더없이 어울리는 훌륭한 선곡이었다. 
 
주페의 ‘시인과 농부’ 서곡이 울려퍼졌다. 그 어떤 때보다 자극적, 혹은 추진력 높은 분위기를 자아내고자 1바이올린의 강력한 주도 하에 장중한 도입부가 시작된 후 호소력 짙은 솔로 첼로가 주제 선율을 흐드러지게 연주했다. 1부 내내 잔잔하게 울렁이는 듯한 기민한 움직임과 소박한 전원적인 분위기, 이를 대단히 촘촘하면서도 변화롭게 표현하는 오케스트라 음색을 통해 임헌정의 여전히 번뜩이는 감수성을 전달받을 수 있었다. 이후 행진곡이 전개되면서 부천필 단원들은 일체감 높은 리듬과 금관이 혼자 독주하지만은 않는 균형감 잡힌 클라이막스로 이 날의 첫 곡을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그 다음으로 등장한 리스트 피아노 협주곡 1번. 얼마 전 김대진이 이끄는 수원시립교향악단과 손열음의 리스트 피아노 협주곡 2번이 공연되었던 바, 이와 좋은 페어링을 이룬 레퍼토리라 여러모로 기대가 컸다. 감각적인 동시에 특유의 화려함을 주무기로 삼았던 손열음의 연주에 비해, 김준희의 해석은 서정적인 노래와 신중한 터치를 통해와 작품의 구조적 발전과 전개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이채로움을 더했다. 그가 구사하는 피아노 음악 고유의 언어는 무척이나 시적이고 고급스럽다는 것이 그에 대한 첫 인상이었다. 
 
단호하되 자극적이지 않은 첫 옥타브 상승 스케일 이후 펼쳐지는 김준희는 각 에피소드에 개별적인 성격을 부여하는 한편 이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전개되면서 전후맥락에 어떠한 의미로 작용할지를 이미 설계해놓은 듯한 자신만만한 해석을 보여주었다. 특히 음향 자체의 논리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에도 그의 톤에 대한 특별한 감식력은 단연 돋보였다. 프레이징의 시작과 끝에서 그는 대단히 독특한 인토네이션을 구사하며 그 짧은 빈 공간에 음악의 호흡을 두는 모습도 훌륭했고, 2악장에 해당하는 파트에서 보여준 극적인 음향의 대조 또한 신선했다. 부천필과 임헌정은 피아니스트와 치열한 대화를 하듯 단호하면서도 기민한 어법을 구사하며 음악에 추진력과 긴장감을 불어넣는 모습 또한 대단히 존경스러웠다.  
 
마지막 트라이앵글 악장에서 김준희는 자신이 단순한 재능있는 젊은 피아니스트가 아니라 새로운 해석가로서의 자신감을 설파하는 듯했다. 그는 한층 다양한 터치(그의 손가락 위치와 운지각도는 음을 넓고 단단하게 펼쳐내기에 이상적이었다)와 적절한 왼손의 루바토를 사용하며 단순히 이 작품이 비르투오소의 과시용 작품이 아니라 내선율과 장식음들에 보다 많은 의미가 있는 동시에 벨칸토적인 메사 보체 또한 중요한 요소임을 역설했다. 마지막 코다 부분의 전광석화와도 같은 옥타브 연타에서 드러나는 또렷한 리듬의 진행과 강약의 대조, 확고한 균형감은 작품을 바라보는 거시적인 관점을 갖추지 않고서는 결코 불가능한 대목으로서 김준희의 놀라운 예술성을 반증해 주었다. 
 
 
 
 
 
2부의 프로그램은 모두 오케스트라 피스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결코 웃으며 즐길만한 내용은 아니었다. 대규모의 복잡하고 어려운 작품보다 이런 작고 유명한 작품들에서 거장의 스타일과 오케스트라에 대한 지배력 잘 드러나는 만큼, 오히려 청중들로 하여금 더욱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순간이었다. 빈 스타일의 멜랑콜릭한 왈츠 리듬을 통속적으로 노래부르는 대신 절도 있는 리듬과 간결한 싱코페이션으로 쿨한 이미지를 발산한 ‘박쥐’ 서곡부터 임헌정만의 스타일은 빛을 발했다. 무엇보다도 리듬과 멜로디가 어느 한 쪽 치우치지 않으며 절묘한 균형을 이루는 모습으로부터 음악에 대한 완고할 정도의 고집스러움을 고수하는 임헌정만의 개성적인 스타일을 십분 느낄 수 있었다.  
 
오히려 ‘시간의 춤’은 한결 부드러웠다. 부천필 관악 단원들의 섬세하면서도 특징적인 활약이 돋보이며 무곡으로서의 유려한 흐름과 극적인 반전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부천필 특유의 파스텔톤의 음향이 빛을 발한 대목으로서 멘델스존의 ‘한 여름 밤의 꿈’ 서곡을 연상시킬 정도의 이미지와 스펙타클한 효과를 이끌어낸 호연이었다. ‘몰다우’는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정묘한 묘사력과 중층적인 다이내믹을 쌓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각 파트별로 표현력을 부여하기보다는 전체의 사운드를 두텁게 구축하며 절도 있는 리듬 위로 흐름을 실어내는 모습으로부터, 마에스트로가 지난 세월 보여주었던 그 영광스러운 시간들을 다시 한 번 만끽할 수 있었다. 
 
 
 
 
 
11월 10일 임헌정은 다시 지휘봉을 들고 부천필하모닉의 브람스 연주회에 오른다. 브람스의 교향곡 4번과 피터 야블론스키의 협연으로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선보일 예정인데, 다시금 새로운 도약을 시도하고 있는 임헌정의 한층 깊어진 예술적 성숙도를 부천 시민의 날 기념 연주회에서의 모습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만큼 그 기대감을 더욱 크게 부풀려본다.  
 
글 : 박제성(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