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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리뷰]The Great Series - 브람스 2011(글 : 황장원_음악칼럼니스트)

  • 작성일2011-11-18
  • 조회수4767
The Great Series - 브람스 2011  
 
지난 11월 10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브람스 2011 시리즈 피날레 공연에 다녀왔다. 부끄럽게도, 필자로서는 실로 오랜만에 접한 부천필 공연이었다. 가장 최근에 부천필 공연에 갔던 것이 언제인지 기억을 더듬어 보니, 지난 2008년과 2009년에 진행된 브루크너 사이클 때였던 듯하다. 한 때 말러 사이클, LG아트센터에서 진행된 브람스 사이클 등 부천필 공연이라면 열심히 쫓아다니던 시절도 있었건만, 최근엔 여러 모로 기회가 닿지 않았다. 아무튼 그랬던 만큼 이번 공연에 대한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도 컸고, 어느 정도는 설레는 마음까지 있었다.  
 
 
 
실망을 넘어 분노를 느끼게 했던 협연자 
 
하지만 사전에 공연 프로그램을 확인하고 기대와 더불어 얼마간의 걱정도 했었는데, 바로 협연자로 내정된 피터 야블론스키 때문이었다. 야블론스키는 한 때 메이저 레이블인 데카(Decca)에서 음반을 내놓아 주목을 받았고, 무엇보다 꽃미남 피아니스트로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그는 데뷔 초기부터 논란이 많았던 연주자이기도 하다. 그가 내놓은 음반들에 대한 평가는 대개 좋지 않았고, 필자가 잘 아는 한 평론가는 그의 음반 리뷰를 거부한 적도 있다고 했다. 또 내한할 때마다 구설수에 휘말리기도 했는데, 필자의 지인들 말로는 그의 실력이 말도 안 되는 수준이며 연주는 못 들어줄 정도라는 것이었다.  
다만 필자는 최근에야 그의 연주를 접하게 되었는데, 바로 서울시향과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을 협연한 무대였다. 그러나 당초 우려와는 달리 그 공연에서 야블론스키는 무난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특별히 뛰어나다고 평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곡의 난이도를 감안하면 선방한 셈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그에 대한 경계를 어느 정도 풀게 되었고, 이번 부천필 공연을 지인들에게 권하면서도 설마…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여러 관객들이 확인했다시피, 바로 그 야블론스키가 기어이 사단을 내고야 말았다! 그 동안 필자가 접했던 대여섯 번의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 공연들 중에서 그토록 무기력하고 무성의한 피아노 파트는 처음이었다. 단적인 예로, 악보를 보면서 연주에 임한 부분을 거론해 보자. 물론 브람스 1번은 난곡이고, 스케줄이 빡빡한 인기 피아니스트라면 간혹 악보를 보면서 연주해야 할 경우도 있을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그럴 경우에도 어디까지나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예방 차원이어야지, 곡 자체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대충 연주에 임하는 건 용납되지 않는다. 적어도 프로 연주가라면 말이다.  
그런데 야블론스키는 어땠는가? 악보를 펴놓은 건 그렇다 쳐도 보면대도, 페이지터너도 없이, 자기 손으로 직접 악보를 넘기면서 연주에 임했다. 그럴 경우 필연적으로 빼먹는 음들이 생기게 마련이고, <브람스 1번>처럼 밀도가 높은 작품일 경우에는 음악의 흐름도 수시로 끊길 수밖에 없다. 더구나 그의 연주는 악보 넘김과는 무관하게 무수한 누락 혹은 생략, 얼버무리고 뭉개버린 음들로 점철되었다. 다이내믹은 포르테(forte) 이상에 이르는 법이 없었고, 프레이징과 아고긱은 그저 흐물흐물, 좋게 봐줘야 실개천 흐르듯 부드러울 뿐, 전체적으로 엣지 상실, 파워 실종의 지루하고 어이없는 연주였다. 그런 와중에도 별반 흔들림 없이 자신들의 직분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부천필의 모습이 그저 안쓰럽기만 했다.  
필자가 이렇게 다소 자극적인 표현까지 써가며 그 날 협연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이유는, 첫째 현장에서 엄청나게 화가 났었기 때문이고, 둘째 부천필 입장에서도 뼈아프지만 꼭 새겨둬야 할 경험이었으리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처럼 무성의한 연주자는 국내 무대에서 퇴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쪼록 우리나라 공연계 관계자들은 상기 정보를 공유하여 두 번 다시 이번 같은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주기 바란다.  
 
정신의 연소를 느끼게 해준 교향곡 연주  
 
인터미션은 1부의 충격을 추스르기 위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지인들에게 말했다. 2부는 괜찮을 거예요. 그 말이 거짓이 되지 않도록 해준 부천필 단원들과 임헌정 지휘자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2부에서 연주된 브람스의 <교향곡 제4번>에서는 임헌정-부천필 콤비의 저력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어 반가웠다. 먼저 1악장은 1부의 여파 탓이었는지 약간 불안하게 출발했지만, 뒤로 갈수록 본궤도를 찾아가면서 멋진 연주로 마무리되었다. 특히 바이올린 파트의 서릿발 같은 합주력이 살아나면서 이 악장 고유의 극적인 기복을 생생하게 부각시켰다. 2악장도 인상적이었는데, 특히 후반부의 이지적이면서도 심도 있는 흐름이 좋았다. 4악장에서는 임헌정 지휘자 특유의 강인한 드라이브와 직선적인 전개가 돋보였다. 한편으론 많은 이들이 브람스 음악에서 바라는 고독감과 인간미가 부족한 듯한 구석도 없지 않았지만, 대신 그 냉철하고도 강렬한 추진력과 견고한 구축미에서 치열한 정신의 연소를 감지할 수 있었던 값진 시간이었다.  
전반적으로 상당히 만족스러운 연주였지만, 아쉬움도 없지는 않았다. 일단 바이올린 파트에 비해 첼로 파트의 존재감이 다소 약했고, 목관 파트는 종종 고르지 못한 앙상블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호른은 강한 소리에는 능했지만 약음 처리에는 계속 고전하는 모습이었다. 필자의 추측으로는 근래에 단원 교체가 이루어지면서 나타나는 과도기적 현상이 아닌가 싶은데, 그보다도 이번 기회에 공연장 문제를 제기해보고 싶다.  
근래에 부천필이 예술의전당 무대에 설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 그리고 필자가 과거에 두어 번 가본 적이 있는 부천시민회관 대공연장은 클래식 공연에 최적화된 장소는 아니다. 물론 시민을 위한 봉사라는 면에서는 소중한 공간이겠지만, 문제는 그런 공연장에서는 오케스트라의 연주력이라는 면에서 질적 향상을 도모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부천필 전용 콘서트홀 건립이 계속 지연되고 있는 상황에서, 필자는 내심 이른바 한강 예술섬에 콘서트홀이 들어서면 부천필도 그곳을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있었으나, 그 성사여부가 불투명해진 현 시점에서는 다른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런 차원에서, 국내 최고 수준의 음향을 자랑하는 고양아람누리와 보다 지속적이고 긴밀한 협력 시스템 구축을 추진해보는 건 어떨까? 악단의 연주력 제고에도 큰 도움이 되고, 수도권 서부지역의 문화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는 괜찮은 방안이 아닐까 싶다.  
 
글 : 황장원(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