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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리뷰]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불멸의 클래식 시리즈 Ⅶ(글 : 고병량_작곡가)

  • 작성일2011-12-15
  • 조회수5541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제162회 정기연주회 
<불멸의 클래식 시리즈 Ⅶ>
 
 
 
 
 
지난 12월 9일, 객원 지휘자 스테판 테츨라프의 지휘로 열렸던 불멸의 클래식 시리즈의 일곱 번째이자 마지막 공연은 2 주 전에 매우 좋은 인상을 남겼던 연주와는 다르게 아쉬운 점을 많이 남긴 연주회였다.  
 
부천시민회관 대공연장의 내부는 온풍기가 돌아가는 소리로 소음이 심했고, 관객들의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제 4번의 제 1악장이 끝났을 때 박수를 치는 것은 독일인 지휘자를 앞에 두고 약간 겸연쩍긴 하지만 독일에서도 가끔씩 있는 일이기에 넘어간다 하더라도, 연주 중에 잡담을 하여 다른 사람의 감상을 방해하는 청중이 여럿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납득하기 힘든 일이었다. 지휘자가 아무리 연주에 집중을 한다고 해도, 지속되는 객석의 소음을 듣지 못했을까!  
 
 
 
하지만, 청중들의 이러한 부정적인 관람 태도는 그 날 연주가 만족스럽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리라. 사실 이 날의 연주는 좀 실망스러웠다. 필자가 앞서 연주 평을 하였던 11월 25일의 연주회와 비교했을 때 바뀐 것이라고는, (연주 곡도 물론 바뀌었지만) 지휘자와 협연자, 악장 그리고 훨씬 추워진 날씨 뿐이었는데, 모든 것이 너무 달랐다.  
 
그렇다고 이것이 지휘자나 악장의 역량 때문이거나 시끄러운 온풍기의 소리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연주자들이 좋은 연주를 들려 줄 때에는 그들 자신이 연주 자체를 즐기고 그것에 몰입해 있기 마련인데, 그 날은 어떤 연주자도 연주에 도취해 있지 않았다고 느껴졌다. 개개의 단원들이 그랬듯 지휘자는 지휘자대로, 악장은 악장대로 스스로의 일에 최선을 다하긴 하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형식적인 것이었고 그들의 마음은 연주하는 그 순간 그들이 내는 소리와 함께 하지 않은 것이다. 협연자도, 지휘자도, 악장도 단원들도 모두 상당한 수준의 연주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음악회 전체를 통해 보여주긴 했지만, 잦은 실수와 내적인 원동력이 결여된 채 외형적인 겉치레로 일괄된 연주는 실망스러운 결과를 초래했다. 청중들의 박수 역시 겉치레였고, 협주곡 이후에도 전체 연주가 끝난 이후에도 연주의 재청은 없었다. 관중들이 산만한 것은 결국 연주자들이 음악을 만드는 데 그다지 열중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2주 전 연주에서는 음악에 몰두하며 최상의 연주를 만들어냈던 그들이, 어떻게 이 짧은 시간 동안 이렇게도 달라질 수 있을까? 11월 25일 연주에서 전 단원들은 모두 생기 발랄했었고, 그들의 기량을 마음껏 발휘하여 음악을 만드는 데 도취되어 있었는데, 왜 이번 연주에서는 생기 없이 단지 지휘자의 팔 놀림에 음만 맞춰 소리를 내는 기계처럼 연주를 한 것일까?  
 
필자는 여기에서 연주곡목과 연주회의 빈도 수라는 두 가지 측면에 주목하고자 한다. 이번 프로그램은 언제 어디서나 쉽게 들을 수 있는 곡들이다. 차이코프스키는 합주가 까다롭다고 하더라도, 전반적으로 특별히 어려운 기교를 요구하지는 않는다. 이 날 연주를 위해서 특별히 연습을 한 단원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반면 2주일 전의 프로그램 가운데 쇼스타코비치의 곡들은 부천필 단원들에게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곡들이었을 것이고, 그 날의 연주를 위해서는 별도로 연습을 한 단원들이 상당히 있었을 것이다.  
 
 
 
또 한 가지 주목되는 것은 연주회들 사이의 간격이다. 11월 25일과 12월 9일 사이에 부천필은 2주 동안 어떠한 연주회도 개최하지 않은 반면, 11월 25일 연주 전에는 10일과 17일에 연주회를 한 번씩 개최하였다. 즉, 11월 25일의 좋은 연주는 3주간 계속되는 연주회의 연속선 상의 결과이고, 실망스러웠던 12월 9일은 연주회의 흐름이 중간에 한 번 끊겼기 때문이지 않을까 한다. 
 
 
 
여기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나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같은 중요한 관현악단의 프로그램과 연주 횟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로, 베를린 필의 경우 현재 128명의 단원들이 일하고 있으며, 관현악단이 연주하는 대 연주회는 일주일에 세 번씩 개최되고 있고, 그 외에 단원들이 소규모로 연주하는 크고 작은 연주회가 여러 개 있다. 연주되는 곡목은 매번 다양하고 폭넓기 그지없다. 적어도 한 주에 한 번씩은 정기적으로 연주회가 개최되고 단원들이 소규모로 참여하는 연주회가 한 개 정도는 있어야, 단원들이 연주가로서의 정체성과 활력을 유지하며 연주자로서의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연주 곡목도 지금보다 훨씬 다양해져야 연주가들이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는다. 연주자들이 잘 모르는 곡이 적어도 한 곡이라도 포함되면, 그들은 곡을 익히기 위해 연습을 할 것이고, 연습을 하면 그들의 잠재력은 다시 살아나며, 이는 익숙한 곡을 연주할 때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유럽 음악가들은 자신들의 음악을 하는 것에 반해, 한국 음악가들은 자신들의 음악을 하지 않기 때문에 유럽 음악가들이 들려주는 연주와 같은 연주를 들려 줄 수 없다는 그릇된 생각을 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문화는 유전인자에 의해 물려지는 것이 아니라, 후천적인 경험에 의해 훈련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차이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결국 시스템이다. 연주가가 연주에 몰두하여 살아가게 하는 시스템. 그것은 결국 프로그램 곡목의 다양성과 연주회의 빈도수에 의해 실현된다. 일주일에 한 번 지속적인 연주를 다양한 곡목으로 연주한다면, 부천필 단원들의 역량은 3주 연속으로 연주회를 하였을 때 발휘된11월 25일의 연주회에서 보다 훨씬 배가될 것이며, 연주회는 항상 만족스러울 것이다.  
 
글 : 고병량(작곡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