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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리뷰]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불멸의 클래식 시리즈 Ⅰ(글 : 박제성_음악칼럼니스트)

  • 작성일2012-02-23
  • 조회수4698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제164회 정기연주회 
<불멸의 클래식 시리즈 Ⅰ>
 
 
 
 
2012년의 개막을 알리는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신년 음악회가 성공적으로 열린 지 보름 정도가 지난 2월 10일, 부천시민회관 대공연장에서는 올해 정규 시즌 프로그램의 개막을 알리는 연주회가 시작되었다. 제164회 정기연주회인 이 날의 공연은 ‘불멸의 클래식 시리즈’ 1회로서 독일에서 건너온 마크 로데가 지휘봉을 들었다. 로데는 독일 함부르크 출신으로서 프랑크푸르트 음대에서 바이올린을, 함부르크 음대에서 지휘를 공부한 뒤 첼리비다케와 틸레만과 같은 대지휘자들의 리허설에 참가하여 독일 지휘의 전통을 배워나간 신예 지휘자다. 특히 그는 괴리츠 오페라 하우스의 상임 지휘자이자 하노버 국립 오페라 하우스의 객원 지휘자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만큼, 독일 명장들이 그러해왔듯 경력의 초기 시절을 오페라 지휘에 헌신하고 있는 재원이기도 하다.  
 
 
이러한 그가 부천필하모닉의 객원 지휘자를 맡은 이 날의 연주회는 독일의 오페라 하우스를 기반으로 한 매력적인 스타일로 청중을 사로잡은 성공적인 연주회였다고 말할 수 있다. 첫 곡으로 연주한 리스트의 교향시 ‘전주곡’부터, 그는 조금은 느린 호흡으로 느껴지는 섬세한 템포 하에 현악 파트에 특히 강세를 주며 자신만의 음악 만들기의 관점을 유감없이 발산했다. 두터운 질감과 치밀한 밀도감을 바탕으로 음악에 따라 울렁이는 현악의 물결을 주도적으로 이끌어내는 모습을 보여준 로데는, 이러한 현악의 주도적인 현악의 볼륨감을 반주 삼아 관악과 목관 파트를 자유자재로 얹으며 마치 아리아를 부르는 듯한 편안하면서도 인상적인 표현력을 보여주었다.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앉았다 일어나는 포즈를 취하는 한편, 지휘봉은 엄격하면서도 절제된 비팅을 실어내며 항상 부드러운 프레이징과 리드미컬한 멜로디를 강조하는 로데의 지휘 언어는 대단히 명쾌했다. 정확함과 제어력을 우선하되 오페라적인 부드러움을 견지하는 그의 지휘로부터, 현재 그 또래의 젊은 독일 지휘자들이 추구하는 전통적인 감성을 토대로 한 현대적 스타일의 현주소를 가늠할 수 있었다.  
 
 
 
 
 
부드럽게 감싸안는 듯한 음향과 치밀한 긴장감의 응축을 통한 클라이막스에서의 완전한 해결이라는 독일 지휘자들의 전통적인 연주 스타일에 의해 영웅화된 이미지를 머금은 ‘전주곡’이 끝난 뒤 프로코피에프의 바이올린 협주곡 2번이 연주되었다. 이 날의 협연자로는 국내에서 교육과 연주무대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서민정이 등장했다. 속이 꽉찬 농밀한 톤과 음과 음 사이를 촘촘하게 연결해내는 왼손 테크닉이 인상적인 서민정의 바이올린은 작품에 다양한 표현력을 부여하며 찰라에의 순발력을 강조하는 해석을 보여주었는데, 특히 그녀의 디테일 강한 세부 조탁 능력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조의 발전을 뚜렷하게 보여주려는 절제와 호흡이 돋보였다. 지휘자 로데는 음악의 발전의 단계와 세부의 대비를 강조하다보니 덩어리로 느닷없이 다가와야 하는 프로코피에프 음악의 원시성이 조금 무뎌진 듯했다. 그런 까닭에 1악장의 러시아 민요풍의 멜로디는 우수띈 치열함보다는 귀족적인 우아함이 강조되었고 3악장의 마지막 코다의 아첼레란도는 극적인 고양이라기보다는 필연적인 해결의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2악장에서 현악기들의 피치카토 효과와 솔리스트가 앙상블을 이루는 진솔한 대화는 이 협주곡 연주 가운데 가장 돋보였다.  
 
 
 
 
 
2부에 연주된 브람스 교향곡 1번은 이 날의 하이라이트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이 작품을 자주 연주했던 부천필하모닉의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인 임헌정의 연주와 대조를 이루었다는 점에서 매우 인상적이었다. 임헌정의 브람스는 수직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엄격한 템포와 분명한 박자를 토대로 음향을 구축해나가는 반면, 로데의 브람스는 수평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칸타빌레적인 멜로디 진행을 바탕으로 상대적으로 목관과 더블베이스를 엄격하게 사용했다. 로데와 같은 해석은 극적인 효과는 높일 수 있되 자칫 순간적인 추진력과 구조적인 안정성이 저해될 수도 있는 위험이 있지만, 그는 리듬의 싸이클노이드적인 연속성을 효과적으로 파악하여 부드럽게 진행하되 그 보폭을 최대한으로 줄여 고전주의적인 구축력과 긴장감을 잃지 않게끔 처리했다. 또한 지휘자의 관점에 기민하고도 충실하게 반응하는 오케스트라는 로데와의 최상의 궁합을 자랑하며 전형적인 올드 스타일에 의한 독일식 브람스 해석의 최고 수준을 만들어냈다는 점이 가장 감동적이었다. 오케스트라 관계자의 말을 빌리자면 연주회 5일 전부터 상당히 많은 시간을 리허설에 투자했다고 하는데, 그만큼 오케스트라와 지휘자의 관계와 호흡이 긴밀했기에 가능했던 연주였다.  
 
 
 
 
 
첫 악장부터 어두움을 불러 모으는 듯한 팀파니의 강한 울림 이후, 로데는 치열하게 음악의 발전단계를 밟아가며 다이내믹과 구조의 발전적 점층과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서의 어두운 에너지의 점진적 소멸을 설득력 높게 표현했다. 특히 첫 부분에서 반음씩 상승하는 현과 반음씩 하강하는 금관의 대비효과에서 로데가 표현력 높은 대비효과를 이끌어내었고, 이러한 표현 방식은 1악장 전반에 걸쳐 효율적으로 사용되며 음악에 입체감을 증폭시켰다. 또한 절도 있는 호흡과 정확한 템포로 돌진하듯 다가오며 이야기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목관 파트의 음향과 표현력이 특히 깊은 인상을 남겼고 마지막 코다에서 모든 악기들이 한껏 부풀어 올랐다가 갑자기 멈추는 듯 서서히 침잠하는 효과 또한 생경스러울 정도의 감동을 주었다. 2악장의 서정성도 훌륭했고 3악장의 목가적인 분위기 또한 지휘자의 능력이 한껏 발휘된 대목이었다. 마지막 4악장은 가히 절경이었다. 물결치는 바이올린과 트롬본의 가세, 여기에 충분한 테누토를 구사하는 플루트의 낭랑함과 혼의 개방성이 어우러지며 차츰 어느 한 지점으로 응집력이 모아져 폭발하는 모습은 이 날 하루 감상할 수 있는 연주이기에는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독일적 오케스트라 운용의 묘를 보여준 로데의 역량과 부천 필하모닉의 장점이 하나로 어우러지며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감동적인 브람스 교향곡 1번이었다.  
 
글 : 박제성(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