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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리뷰]부천필코러스 상임지휘자 조익현 취임 기념 연주회

  • 작성일2012-03-05
  • 조회수6294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코러스 상임지휘자 조익현 취임 기념 연주회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 
 
 
 
 
 
지난 2월 21일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코러스는 새로운 출발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새로운 상임지휘자 조익현의 취임 기념음악회가 열린 것이다. 새로운 지휘자의 취임 연주는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앞으로 그 합창단의 미래를 이 연주회를 통해서 가늠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날 연주회가 바로 그랬다. 조익현 지휘자는 앞으로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코러스와 함께 만들어갈 음악의 방향을 조용히 그러나 확고하게 보여주었다.  
 
 
 
 
 
새로운 지휘자, 조익현의 꿈은 그가 선택한 이 날의 레퍼토리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1부에서는 번스타인의 <치체스터 시편>(Chichester Psalms)과 본 윌리암스의 <다섯개의 신비의 노래들>(Five Mystical Songs)을, 2부에서는 역시 본 윌리암스의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Dona Nobis Pacem)를 연주했다. 이 곡들은 합창문헌에 제법 익숙하다고 하는 애호가들에게도 그리 잘 알려진 곡이 아니다. 연주의 난이도에 비해 그 내러티브가 충분히 극적이거나 화려하여 그 효과가 극대화 되어 있는 곡도 아니다. 이러한 레퍼토리의 선택이 흥미롭고도 충격적인 이유는 취임연주, 즉 새로운 지휘자의 첫 연주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대범한 결단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단원들에게 이미 익숙한 곡, 청중들에게 인기 있는 곡을 연주해 안전하고 안정된 출발을 꾀하는 여느 지휘자들과는 달리 조익현 지휘자는 이미 익숙한 레퍼토리가 아니라 앞으로 추구해 나아갈 레퍼토리를 제시함으로써 단원들, 청중, 그리고 널리 보면 우리나라 합창계에 단호한 도전장을 던진 셈이었다.  
 
 
 
 
그 도전은 충분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타악기들과 함께 다양한 리듬을 소화해야 하는 첫 곡 <치체스터 시편>에서 조익현 지휘자는 자신이 가진 정확한 리듬감을 합창단을 통해서 명료하게 드러내었다. 각기 분위기가 다른 세 부분의 음악적 감성을 최대한으로 강조하면서 음악으로 정서를 드러내는 일에 부족함이 없음을 과시하기도 했다. 2악장은 소년 다윗이 노래하는 부분으로 소년이나 카운터테너들이 부르게 되는데, 이날의 솔로 카운터테너 정민호는 한국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아름다운 소리로 합창단과 좋은 호흡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오페라 가수로서의 교육을 받았던 단원들에게 비브라토가 없는 스트레이트톤의 시도는 아직은 익숙해 보이지 않지만 앞으로 세계적인 합창단으로 가기 위해서는 플어야할 숙제로 보인다. 
 
오케스트라, 독창자, 합창이 같은 비중으로 사용된 두 번째 곡 <다섯개의 신비한 노래들> (작곡가는 여러가지 편성으로 연주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에서는 이 다양한 매체를 지휘자가 얼마나 잘 다루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합창지휘자들이 흔히 겪는 오케스트라 지휘의 어려움 같은 것은 아예 처음부터 없었다. 그 동안 수많은 음악회에서 오케스트라와 함께 해 온 경륜을 보여주듯,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보여줄 수도 있는 매체의 차이, 호흡의 차이를 하나로 묶어 자연스런 조화를 이끌어 내었다. 특히 바리톤 염경묵의 선택은 이 곡을 더욱 빛나게 해준 요소였다. 그는 이 곡의 상징시인 George Herbert의 어려운 가사를 깊게 이해하고 노래하였음이 분명했다.  
 
마지막 곡인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 (Dona Nobis Pacem)에서는 짧은 시간 동안 지휘자와 합창단이 얼마나 함께 노력했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대부분이 6성부로 이루어진 이 곡이 가진 아름다우면서도 신비한 화음의 섬세함과 마지막 곡으로서의 장엄함을 둘 다 놓치지 않고 표현하였다. 특히 솔로 파트를 부른 합창단원들은 이 합창단의 개별 구성원들이 얼마나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조익현 지휘자는 그간 지휘자가 갖추어야 할 여러가지 장점들을 보여주어 왔다. 기획능력, 청중과의 소통 능력, 음악을 말로 풀어내는 학식과 연변, 음악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다양한 통로를 찾는 일 등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이번 연주회에서 그 무엇보다 돋보였던 것은 지휘자가 갖추어야 할 바로 그 핵심적인 능력, 바로 음악에 대한 이해와 해석, 그리고 그것을 이끌어 내는 그의 지휘 능력이었다. 수년간 호흡을 맞춰온 합창단이 아니기에 불편하고 어색한 점이 있었을 터이고 자신이 만들어 내고 싶었던 음악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이번 연주회에서 선택한 레퍼토리들은 앞서 언급한 대로 짧은 연습 시간에 소화하기에 쉽지 않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는 어려운 음악에 적절한 쉼표와 마침표를 찍어가며, 마뜩한 억양과 숨결을 살려가며 그것이 청중에게 자연스레 전달되게 하는데 성공했다. 어색하지만 혹 잠깐 충격적 효과를 줄지도 모르는 꼼수같은 것은 없었다. 그저 과하지 않고 적절하게 자연스런 음악의 길을 찾아내어 그것을 담담히 전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은은하여 오래갈 그런 감동을 자아낼 수 있었다. 음악을 연주해 본 사람이면 안다. 자연스런 음악의 길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혹자는 이번 취임연주회가 ‘합창’의 진면목을 드러내 주지는 못했다고 평할 수 있을지 모른다. 오랜 편견에 의하면 합창의 정수는 무반주 합창, 아카펠라로 가장 잘 드러난다고들 하기 때문이다. 만일 이런 편견을 가지고 있는 청자라면 이번 연주회에서 아카펠라 레퍼토리가 한 곡도 들어있지 않은 것에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의심하기 좋아하는 청자라면 신임 지휘자가 혹 부족한 합창단의 소리를 오케스트라 소리로 메워보려는 것이 아닐까 의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익현 지휘자가 취임 기념 연주회에서 모든 곡들을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코러스의 정체성과 관계가 있다. 여타 시립합창단과는 달리 부천의 합창단은 오케스트라코러스라는, 즉 오케스트라와 긴밀한 관계를 갖는 합창단이라는 정체성을 그 이름에 새기고 있는 합창단이다. 이번 취임연주회는 이러한 합창단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안으로 다짐하고 밖으로 천명한 상징적인 연주회라 할만하다.  
 
결국 이번 취임연주회를 통해서 조익현 지휘자는 앞으로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코러스가 나아갈 방향을 단호하게 제시하고 있다. 이 연주회를 통해 짐작하건대 조익현 지휘자의 지휘봉 아래서 이 합창단은 전에 없는 깊이 있는 합창단, 넓은 폭을 가진 합창단이 될 듯 하다. 청중과의 소통을 최우선으로 삼는 즐거운 음악회뿐 아니라 합창 음악을 통해 깊은 예술적 감동과 인생의 의미를 반추해 볼 기회를 제공할 진지한 음악회가 이 합창단을 통해서 펼쳐질 것으로 기대된다. 오케스트라에 종속된 합창단이 아니라 오케스트라와 동등한 협력관계, 레퍼토리에 따라서는 오케스트라를 당당히 거느리는 합창단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리하여 이러한 관계를 통해서 우리나라에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감동적인 합창 레퍼토리가 바로 이 합창단을 통해, 이 지휘자를 통해 소개될 것으로 기대된다.  
 
 
 
조익현 지휘자는 취임 기념 연주회를 통해 이러한 포부를, 이러한 꿈을, 이러한 도전을 표명했다. 지금까지의 관행과 편견, 오해와 몰이해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이 연주회의 제목은 그러나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이다. 어쩌면 이 지휘자는 평화란 적당한 타협을 통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제 자리에,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비로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용기와 도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 지휘자가 취임 기념 연주회에서 보여준 단호한 결심이 열매를 맺어 마침내 평화를 이루고 그리하여 그가 앵콜에서 부른 노래의 가사처럼 항상 우리 곁에 있는 음악의 힘이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 주기를 바라고, 기대한다.  
 
 
글 : 정경영_한양대학교 음악이론과 교수,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