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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리뷰]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챔버뮤직 시리즈 - The Beethoven Ⅶ(글 : 박제성_음악칼럼니스트)

  • 작성일2012-10-18
  • 조회수4224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챔버뮤직 시리즈  
The Beethoven Ⅶ 
 
 
 
 
 
 
거대한 스케일, 개개인들의 탁월한 비르투오시티, 금관을 중심으로 한 엄청난 다이내믹, 귀를 현란케 하는 아름다운 음향 등등 한 오케스트라를 특징짓는 많은 기준이 있지만, 오케스트라가 오케스트라로서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덕목은 다름 아닌 앙상블이다.  
 
 
역사가 오래 된 오케스트라를 우리가 선망하고 칭송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 악단에 내려오는 고유한 앙상블 전통을 갖고 있기 때문으로서, 이는 단순히 기술이나 능력의 문제라기보다는 악단의 전통과 예술적 성취에 대한 자긍심과 주체의식과 같은 정신적인 측면이 가장 중요하게 작용함을 부인할 수 없다. 악기나 주법과 같은 기술적인 문제로는 남의 소리를 들으면서 자신의 페이스와 음량을 조절하고 앙상블 타이밍과 세부에 대한 표현을 일체화하는 과정을 전적으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앙상블 단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정신적 공감대야말로 한 악단의 앙상블, 즉 그 오케스트라의 정체성의 출발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유서 깊은 오케스트라들은 자체의 앙상블을 운영하며 오케스트라의 명성만큼이나 높은 인기를 누리곤 한다. 현악 4중주, 첼로 앙상블, 목관/금관 앙상블, 쳄버 오케스트라와 같은 전문적인 앙상블을 통해 악장과 수석, 단원들 사이의 긴밀한 호흡 및 악단의 음악적 정체성을 계발, 보존해 온 것이다. 지금까지 국내 오케스트라들은 서양에 비해 역사도 길지 않을 뿐더러 실내악 음악이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는 실정이었지만, 청중들의 높아진 수준과 국제적인 경쟁력 필요에 의해 이러한 노력과 지원이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전에는 다양한 곳에서 활동하는 솔리스트들이 모여서 앙상블을 만든 반면, 이제는 오케스트라의 이름을 걸고 단원들로 구성된 비교적 많은 앙상블이 정기적으로 연주회를 가지며 이목을 끌고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챔버뮤직 시리즈의 존재감이 가장 돋보인다.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챔버뮤직 시리즈에 특히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오케스트라의 정체성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서 바로 그 아카데믹한 기획과 구성에 있다. 한 작곡가의 교향곡 전곡 연주회를 통해 음악 어법과 스타일의 발전, 해석의 변화에 대한 가장 정교하고도 정확한 포트폴리오를 보여주며 국내 교향악에 일대 파란을 일으켰던 부천필하모닉의 정신을 이어받아, 단원들이 주축을 이룬 챔버뮤직 시리즈 또한 한 작곡가의 실내악 작품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집중적으로 조명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슈만 & 브람스에 이어 2011년부터 베토벤 시리즈를 진행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피아노 트리오, 현악 3중주와 4중주, 현악 5중주는 물론이려니와 목관 앙상블과 세레나데까지 포함되어 진정한 베토벤 실내악 전곡 연주회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이를 통해 부천필하모닉은 베토벤의 음악어법을 온전히 재조명함은 물론이려니와 단원들 사이의 호흡을 실내악적 관점에서 새롭게 조합하여 현재를 공고히 함은 물론이려니와 미래의 위대한 악단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10월 11일 목요일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열린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챔버뮤직 시리즈 베토벤 7회 연주회에서는 현악 5중주 Op.104와 피아노와 관악을 위한 5중주 Op.16, 그리고 2012년 드뷔시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플루트, 비올라, 하프를 위한 소나타를 연주했다. 베토벤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드뷔시를 기념을 위한 작품을 연주하는 것 또한 청중과 음악사에 대한 소중한 배려라고 말할 수 있다. 제1바이올린 수석 최희선을 중심으로 한 단원들이 연주한 첫 곡 현악 5중주는 규모도 클 뿐만 아니라 피아노 트리오를 편곡한 작품인 만큼 연주 또한 어려운 편이다. 극단적인 대비나 표현보다는 앙상블의 흐름에 초점을 맞춘 듯한 이들의 연주는 1악장에서 조금 난항을 겪는 듯했다. 특히 피아노 파트를 편곡한 부분에서 기민한 변화가 인상적이지 못했고 단원들의 기량 또한 조금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2악장부터 앙상블은 살아나기 시작하여 이내 페이스를 되찾았고, 특히 악기 사이의 대화가 인상적이었다. 비올라와 첼로의 대화는 다른 음반이나 연주에서 경험하기 힘든 긴밀함이 묻어났으며 제1바이올린의 대범한 리드로 변주의 묘미를 충분히 살려냈다. 3악장 미뉴에트에서는 1바이올린의 고난이도의 하강과 상승 스케일이 등장하는데, 조금 힘든 구석이 없지 않았지만 절제된 비브라토와 리듬감을 강조하고자 혼신의 힘을 기울이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마지막 피날레 악장에서는 단원들의 일체된 통일감이 지금까지의 긴장감을 시원하게 날려주었고, 첼로의 가벼운 피치카토와 마지막 갑작스럽게 끝나는 대목의 미스테리한 여운이 신선한 매력을 발산하기도 했다.  
 
 
 
드뷔시의 플루트, 비올라, 하프를 위한 소나타는 대단히 세련되면서도 명료한 강약대비와 정확한 호흡을 통해 몽상적이면서도 바로크적인 작품 특유의 느낌을 잘 살려냈다. 2악장 인터루드에서는 콩세르적인 즐거움을 한껏 내보는 각 악기들의 역할이 흥미로움을 더했고, 주도와 반주를 반복하는 비올라의 다양한 음악적 효과가 특히 돋보였다. 피날레 악장에서는 역동적이고도 에조틱한 분위기를 통해 마치 드뷔시 방 안에 있는 청대 시기의 청화백자처럼 미미하지만 강렬한 낯설음을 솜씨 있게 살려냈다. 마지막 베토벤의 피아노와 관악을 위한 5중주는 부천필하모닉의 보장된 미래를 역설하는 듯한 훌륭한 연주였다. 특히 2악장에서 오보에의 선율미와 혼의 비애감 넘치는 울림, 바순의 미끈한 매력과 클라리넷의 날렵한 프레이징이 돋보였고, 목관들을 감싸며 부드러운 필치로 유연하게 흐름을 주도한 피아노의 역할 또한 훌륭했다. 앞으로 가야할 길은 멀지만 이렇게 한 켜 한 켜 경험치를 쌓으며 악단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단원들의 열정이 청중들에게 푸른 희망을 심어준 소중한 연주회였다. 
 
 
글 : 박제성_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