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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리뷰]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해설이 있는 콘체르탄테 오페라 라 보엠(글_박제성)

  • 작성일2012-12-06
  • 조회수4973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해설이 있는 콘체르탄테 오페라 ‘라 보엠’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11월 29일 부천시민회관 대공연장에서 푸치니 ‘라 보엠’ 오페라 콘체르탄테 공연을 열었다. 아니, 엄밀한 의미에 있어서 콘체르탄테라기보다는 연출이 가세한 무대를 극소로 줄인 해설이 있는 오페라 하이라이트 공연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너무나 훌륭한 공연이었다. 우선 5천원이라는 상상할 수도 없는 저렴한 티켓 가격으로 전곡에 진배없는 오페라 공연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어디에서도 상상할 수 없는 일로서 대단히 고무적이었다. 여기에 한국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성악진들이 등장하여 오페라 하우스에서의 무대 이상의 열정과 연기를 발산해 주었다. 더불어 젊은 최영선 지휘자의 섬세함과 극적 감각이 시간이 지날수록 뜨거워지며 음악 전체의 분위기를 로맨틱하면서도 드라마틱하게 펼쳐냈다. 물론 부천 필하모닉의 정확하고도 정교한 앙상블도 이번 공연을 성공으로 이끈 중요한 견인차였다. 더 나아가 무대의 색다른 묘미를 느끼게 해 준 연출력과 중간중간 어설프지만 친절한 목소리로 청중과 하나됨을 도모한 지휘자의 해설도 훌륭했다. 그 결과 청중은 음악에 완전히 몰입되고 연주자들은 극에 완전히 몰입되어 독특한 일체감을 형성했던 오페라 무대로서, 올해 서울-경기권에서 열린 3대 ‘라 보엠’ 공연(서울시향의 예술의 전당 오페라 하우스 무대와 게오르규가 등장한 연세대 노천극장 무대와 더불어)으로 손꼽기에 손색이 없다.  
 
 
 
 마치 훌륭한 오페라 하이라이트 실황음반을 낮은 가격에 산 듯한 뿌듯함을 안겨준 이번 공연의 연출부터 살펴보자면 오케스트라 지휘대 앞의 협소한 무대였지만 제대로 의상과 적은 양의 무대장치만으로도 무대의 동선을 지극히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아기자기한 드라마를 만들어낸 연출가 진현의 능력이 돋보였다. 단 의상은 전부 현대적인데 미미만 조금 생경한 보라색 드레스를 입힌 것이 옥의 티였지만, 3막에서는 그 황량한 이미지를 연상시킬 수 있도록 아무런 장치를 하지 않은 것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앞으로 그 재능과 활동이 기대되는 연출가라고 말할 수 있다.  
 
지휘자 최영선. 그는 해설을 통해 박수부터 극의 흐름, 관객 매너까지 세세하게 알려주어 청중들이 한 막이 끝난 다음 바로 그 지식을 사용하는 장면을 만들어냈다. 청중에게 마음으로 다가가는 그의 오페라 해설, 아니 거의 음악 강의에 가까운 그의 해설이 앞으로 더욱 세련되어지기를 바란다. 한편 그의 지휘도 훌륭했다. 1막은 조금 흔들리는 모습도 보였지만 2막부터는 이내 평정을 찾고 보다 세부와 흐름을 스펙타클하고 감각적으로 만들어갔다. 음악적으로 3막이 가장 훌륭했다. 그의 지휘도 아름다웠지만 로돌포역의 박현재와 미미역의 오은경의 절창은 이에 감동을 받은 청중들이 감탄사를 자아낼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특히 오은경은 앞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미미로 인정받기에 모자람이 없는 최상의 목소리와 연기력을 보여주며 많은 환호를 받았고, 이번 공연을 ‘공병우의 재발견’이라는 타이틀을 붙여도 좋을 만큼 마르첼로역의 공병우의 연기가 눈에 띄었다. 2막에서의 그 시니컬하지만 열정적인 연기와 3막에서 카운셀러로서의 동정심, 무제타를 쏘아붙이는 날카로운 눈빛과 손가락 하나까지 동원하여 감정연기를 펼치는 모습은 가히 절정이었다.  
 
 
  
아리아가 밀집해 있는 1막과 4막이 중요한 포인트이긴 하지만, 이날 공연에서는 사랑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희극적인 2막과 이별의 3막이 가장 훌륭하여 오히려 극 전체에 대한 탄력적인 흐름과 연극적인 구조가 돋보였다. 특히 오케스트라도 3막에서 현악의 두툼하면서도 유려한 사운드를 바탕으로 지휘자는 피아니시모와 스포르잔도를 한껏 강조하며 감정에 직접적으로 호소하고 성악가들은 중창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그대의 찬손’과 ‘내 이름은 미미’는 훌륭한 발성과 감정표현이 일품으로서 스타 성악가들의 역량을 제대로 돋보였고, ‘무제타의 왈츠’ 또한 세련되고 변덕스러운 캐릭터의 성향을 잘 표현해냈다. 콜리네역의 안균형 또한 마지막 ‘외투의 노래’에서 관객을 사로잡는 비장미를 선보였고, 쇼나르역의 정지철은 1막에서는 조금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이후로는 안정감을 찾아 이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 냈다. 무엇보다도 남자 네 명이 4막에서 신나게 춤을 추는 장면은 정말 기발했다. 특히 콜리네가 청어로 쇼나르의 머리를 때리는 코믹한 장면은 푸치니가 다음에 이어지는 미미의 죽음과 대비시켜 극적인 효과를 주기 위해 얼마나 공을 들였는가를 연출가가 충분히 이해했음을 보여주는 명대목이었다.  
 
 
 
전체적으로 뜨거운 박수를 받아야 마땅하고, 실제로 그 이상의 환호를 받은 훌륭한 공연이었다. 한 가지 첨언할 부분이 있다. 음악 외적인 부분으로서 프로젝터로 비추어준 자막 또한 훌륭했다. 디자인도 좋았고 배역들 이름의 색깔을 각기 달리해 준 것도 좋은 아이디어였지만 특히 대사번역의 말쑥함이 이 공연의 성공 가운데 절반 정도를 차지한 것 같다. 오페라에 대한 깊은 이해가 부족한 청중들이 더욱 극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어투로 간결하게 끊어가며 청중들을 성공적으로 극에 몰입시켰기 때문이다. 최근 오페라 극장에서의 자막들은 트랜디 드라마를 보는 듯한 어체와 어휘로 관객들로부터 즉각적인 웃음과 눈물을 유도하는데, 이번 공연의 자막 또한 이러한 경향 및 원작에 대한 충실도 모두를 만족시킨 훌륭한 수준이었다. 내년에 부천필하모닉은 어떤 오페라를 무대에 올릴지 벌써부터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글_박제성(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