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연리뷰

[리뷰]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마에스트로 + 비르투오소 Ⅲ(글_류태형)

  • 작성일2013-12-06
  • 조회수4226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제181회 정기연주회  
- 마에스트로 + 비르투오소 Ⅲ  
 
[명인의 첼로, 담백한 악단] 
 
 
11월 29일 밤 부천시민회관 대공연장에서 열린 부천필의 정기연주회에 참석했다. 빨리 지나가버린 가을이 아쉬운 겨울밤에 어울리는 낭만적인 프로그램이 준비됐다.  
 
 
 
임헌정과 부천필이 연주한 첫곡은 슈베르트 로자문데 서곡. 총주가 밤을 덮듯 어둑하게 울려 퍼졌다. 이어 목관악기가 순수하고 애달픈 선율을 연주했다. 점차 달래듯 하다가 다시 땅거미 지듯 어두운 총주 뒤에 발레리나들이 종종걸음을 걷듯 발랄한 표정의 연주가 시작됐다. 임헌정은 단원들을 독려하며 빠른 템포를 견지했다. 클라리넷에서 오보에, 플루트로 연결되는 부분에서 약간 사운드가 비는 듯한 장면을 연출했으나 임헌정의 안정감 있는 지휘로 벗어나는 모습이었다. 견고함이 더해지자 일사불란한 앙상블로 정돈이 되어갔다. 깔끔하고 단정한 부천필 특유의 스타일로 마무리되었다.  
 
베를린 필 수석 첼리스트 마르틴 뢰어가 임헌정과 함께 등장했다. 애수 어린 전주 뒤에 곧바로 첼로음이 그윽하게 울렸다. 억지로 꾸미지 않고 그렇다고 버리지도 않는 찰현음이다. 한 마리 학처럼 고고한 소리였다. 명필이 붓 가는 대로 쓴 휘호를 연상시켰다. 과거 명연주자의 스타일이 느껴진 그의 연주를 들으며 뢰어가 명 첼리스트 자라 넬소바의 제자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왼손의 움직임이 자유자재였다. 연주에서 어색한 부분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고음에서 저음을 오르내릴 때도 동일한 음량을 정확하게 내 주는 게 마치 건반악기를 연주하는 것 같았다. 호른과 주고받는 첼로음이 준엄했다. 손수건을 꺼내 말없이 활을 닦은 뢰어는 꿈꾸는 듯 지나간 짧은 2악장에 이어 3악장에서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관현악의 길을 안내했다. 곡의 감흥을 요약하는 듯한 카덴차에서 왼쪽으로 고개를 움직이면서 연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3개 악장이 마치 한 개의 악장같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나갔다.  
 
 
 
아쉬움을 달래는 청중에게 뢰어는 앙코르를 선사했다.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4번 중 ‘사라방드’였다. 뢰어는 중후하면서도 맑은 찰현으로 명상적인 순간을 연출했다.  
 
 
 
휴식시간 뒤 드보르자크 8번이 연주되었다. 따스한 저음이 휘감기 시작해 바순과 트롬본이 녹아들고 플루트가 정답게 지저귀었다. 본격적인 시작이라고 알리듯 관현악이 포효했다. 임헌정은 비교적 빠른 템포를 견지했다. 거칠 것이 없었다. 그러다 따스한 분위기에서는 다시 템포를 늦추고 특유의 낭만적이고 체코적인 선율을 이어갔다. 팀파니의 단호한 타격음이 곁들여지며 마치 토스카니니와 NBC 심포니의 연주 같은 인상을 남겼다. 표현에는 과장이 없었다. 담백하고 직선적인 드보르자크였다. 튜바와 트롬본도 시원시원한 소리를 뿜어냈다.  
 
2악장은 다감한, 그러면서도 단호한 현으로 시작됐다. 이후 플루트와 목관악기로 이어지면서 전원을 따라 거니는 듯한 아름다운 풍경을 그려냈다. 오케스트라는 이따금 부풀어 올랐다. 이렇게 팽창될 때 팀파니와 금관이 가슴 벅찬 순간을 연출했다. 플루트는 ‘이것을 잊지 말라’는 듯 곡을 깨우는 모습이었다. 마지막 부분에 호른에서 음 이탈이 일어난 점은 아쉬웠다.  
 
드보르자크 교향곡 8번에서 가장 선율이 아름답고 유명한 3악장에서는 매끄럽게 흐르는 현이 시릴 정도의 고음을 내 주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첼로와 비올라의 피치카토는 다른 악기들과 조화를 이루며 녹아들어갔다.  
 
4악장의 트럼펫 서주는 깔끔했다. 호른 주자들은 객석을 향해 벨을 쳐들고 엄청난 음량을 내어주었다. 특히 여기서 플루트 주자가 발군이었다. 화끈한 해석의 와중에 셈여림 조절이 돋보였고, 금관의 포효에서는 자신감이 대단했다. 현과 목관은 따스한 온기를 느끼게 하는 장면을 여러 번 연출했고, 마지막 부분의 총주로 강렬하게 끝을 맺었다.  
 
임헌정과 부천필은 앙코르로 드보르자크의 슬라브 춤곡 Op.46-8을 연주했다. 마치 떠들썩한 축제가 열리는 광장의 다리 위에서 흘러가는 강물을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2013년 한해. 올해도 많은 것들이 흘러갔다. 지나간 것들의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해야 할 때가 오고 있음을, 임헌정과 부천필의 드보르자크 슬라브 춤곡을 들으며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글 류태형(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