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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리뷰]부천시립합창단 위대한 작곡가 시리즈 시즌2(1)-구레츠키 (글:최혁재)

  • 작성일2014-04-16
  • 조회수4357
부천시립합창단 제117회 정기연주회 
위대한 작곡가 시리즈 시즌2(1) - 미니멀리스트 : 구레츠키
 
 
 
 
쉼을 넘어 심연으로......  
부천시립합창단이 위대한 작곡가 시리즈 시즌2 라는 타이틀로 폴란드의 현대작곡가  
헨릭 미코와이 구레츠키(Gorecki, Henryk Mikolaj)의 합창곡들만을 모아 연주회를 가졌다. 
 
음악회가 끝나고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얘기는 
불과 3년전만해도 약간 거친 구석이 있다고 느꼈던 합창단의 소리가 한없이 유려하며 섬세함이 살아있는 음색과 불협화음과 협화음의 미묘한 음정을 정확하게 선보이는 소리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이전에 귀에 남아있던 부천의 사운드를 도무지 기억할 수 없는 전혀 다른 합창단의 소리였다. 
 
 
 
작곡가 구레츠키(흔히 ‘고레츠키’로 알려진)의 고향인 폴란드 대사관에서 공연장 로비에 폴란드를 소개하는 안내 책자와 폴란드 작가의 책자를 전시에 공연전과 중간에 작곡가의 나라와 가까워 질 수 있는 기회를 열어 준 점 또한 무척 고무적인 일이였다. 
 
구레츠키는 청중에겐 그의 교향곡 3번외에는 잘 알려진바가 없어 다소 낯선 작곡가였는데, 
공연 시작전 지휘자의 재치있고 친절한 해설은 음악을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맘을 갖게 하기 충분하였다. 
 
우리나라에서 합창음악이라하면 흔히 기독교를 통해 접할 수 있는 미국의 멜로디와 화성진행으로 익숙한 곡들을 떠올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더러는 서유럽의 합창음악도 소개되곤 하지만, 동유럽의 합창음악은 그 가치에 비해 상대적으로 생소한 것은 매우 안타까운 현실이었다. 
이렇게 동유럽의 음악이 낯선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일 것 같다. 
첫째는 한국과의 문화적 교류가 활발하지 못한 때문이고, 둘째는 그 언어를 쉽게 이해하지 쉽지 않은 까닭일 것이다. 
 
흔히 음악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의 표현이라고 일컫지만, 사실 어떤 한 작품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작곡가가 나고 자란 나라의 언어적 특징을 파악하지 못하면 그 이해라는 것은 요원한 일일 것이다. 언어를 중요한 재료로 쓰는 합창음악에서는 그 비중은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구레츠키의 음악들은-비록 적은 분량의 가사였지만, 직접 가사를 번역한 지휘자의 수고 덕분에 연습과정에서 합창단원들을 음악에 더 깊이 몰입하게 만들어 주었을 것은 물론이고 음악회를 감상한 청중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었다. 
 
덧붙여 폴란드 말은 발음기호도 영어 등과 달라 연습과정에 많은 수고가 있었으리라 쉽게 짐작이 된다.  
 
1963년 작품이후 소위 미니멀리즘이라 불리는, 최소한의 음을 재료로 사용해 창작한, 기법으로 작곡한 구레츠키 음악세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였다. 
 
지휘자가 폴란드의 민요선율이라고 설명한 주제가 절반이상의 작품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었지만, 단조와 장조, 협화와 불협화를 오가며 전혀 지루하지 않은 느낌이었으며, 오히려 단순함이 한없는 심연으로 청중을 몰입 시키는 듯한 작품들이 었다. 
 
 
 
한달이라는 연습기간이 결코 충분한 것은 아니었을 테지만, 굳이 아쉬운 점을 꼽으라면 두 번째 순서였던 Three Lullbies 첫 곡등 템포 지시가 42~44정도로 되있는 곡들은 좀더 느리게 불렀더라면 하는 작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간혹 불협화음에서 알토보다 테너가 더 강조되어야하는 부분에 음량 발란스가 조금 아쉬운 곳도 있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많은 청중과 잘 준비된 연주회로 오늘의 연주회는 한국 합창사에 남을 만한 뜻깊은 시간이라 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 마지막에 지휘자와 합창단의 뿌듯해 하는 표정이 흐뭇함마저 느끼게 해주었다. 
정말 최선을 다한 연주회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연주였다. 
 
개인적으로 앞으로 동유럽 대 작곡가들의 작품을 부천 시립합창단의 연주를 통해 많이 만날 수 있길 희망해본다. 
 
글_최혁재 (자휘자 &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