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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리뷰]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유럽 투어 프리뷰 콘서트

  • 작성일2014-08-26
  • 조회수3714
[리뷰]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유럽 투어 프리뷰 콘서트  
 
 
 
 
 
임헌정과 부천필. 25년간 숙성된 무르익은 소리가 심금을 울렸다. 마치 손끝에서 저절로 음악이 흘러나오듯 임헌정과 부천필의 연주는 숨 쉬듯 자연스러웠고, 그들의 연주를 듣는 관객들 역시 그 아름다운 음악에 자연스레 빠져드는 모습이었다. 이는 오랜 세월동안 함께 호흡을 맞춰온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가 아니면 해낼 수 없는 공연이었다.  
 
 
사실 유럽 연주여행에서 브람스의 교향곡을 메인 프로그램으로 연주하는 일은 섣불리 도전하기 어려운 일이다. 특히나 18·19세기 기악곡의 중심지였던 프라하와 뮌헨, 비엔나에서 그들의 ‘국악’이나 다름없는 브람스의 교향곡을 연주하는 일은 위험천만한 일이라고까지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음악회에서 임헌정과 부천필이 선보인 브람스 교향곡 연주는 그런 우려를 말끔히 씻어내고도 남았다. 오랜 세월 동안 여러 가지 실험과 연구를 통해 다듬어내고 또 다듬어낸 부천필의 브람스 교향곡은 국내외 여러 오케스트라들이 결코 모방할 수 없는 그들만의 색깔을 뿜어냈고 작품의 세부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다. 이번 유럽 투어에서 임헌정과 부천필의 브람스 연주는 교향곡의 본고장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안겨줄 것으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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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번 프리뷰 콘서트에서 돋보인 것은 비단 브람스 교향곡 연주 뿐만은 아니었다. 연주회 곡목과 앙코르 연주 역시 ‘하나의 완결된 작품’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통일성과 다양성의 조화를 보여주어 인상적이었다. 첫 곡으로 연주된 전상직의 ‘관현악을 위한 크레도’는 이 곡에 이어서 연주된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협주곡과 마찬가지로 D장조 조성을 암시하고 있어 다음 곡과 흐름이 잘 연결되었을 뿐 아니라 곡 중간 부분에 금관악기가 연주한 평성가 풍의 선율은 브람스 교향곡 4악장의 ‘트롬본 코랄(찬송가 풍의 선율)’을 강하게 연상시켜 전체 프로그램과 잘 조화되었다. 전상직의 작품이 이번 공연에서 세계 초연된 신작인 점을 감안해본다면 이러한 프로그램의 통일성은 놀라운 우연의 일치라고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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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직의 ‘관현악을 위한 크레도’에 담긴 영감에 찬 악상과 간결하고 명확한 표현법은 그 자체로 감동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특히 각 악기군의 음색과 특수 주법을 효과적으로 사용해낸 순수한 음향과 군더더기 없는 명쾌한 구조로 인해 이 곡의 메시지는 더욱 분명하게 다가왔다. 반음계적인 도입부에 이어 현악기의 하모닉스 주법(손가락을 현의 특정 위치에 살짝 얹어 연주하는 주법)을 이용한 환상적인 음색은 고통스런 현세에 비치는 한줄기 빛처럼 구원의 메시지를 던져주었고, 금관악기만으로 연주한 평성가 풍의 선율은 신의 향한 신앙고백처럼 확신에 차 있었다. 무엇보다 여러 악기들을 다양하게 조합하기보다는 비슷한 성격의 악기 그룹에 집중한 절제된 오케스트레이션과 통일성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어 18세기 고전음악을 연상시키는 간결·명쾌한 특성을 보여주었다. 아마도 많은 관객들이 이번 음악회에서 이 곡을 처음 들었음에도 이 곡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작품의 영적인 감흥이 명확한 형식을 통해 드러났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전반부 두 번째 곡으로 연주된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협주곡은 여러 바이올린협주곡 가운데서도 널리 알려져 있는 탓에 연주자에겐 더욱 부담이 되는 작품이다. 대개의 연주자들은 관객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현란한 테크닉을 앞세우거나 표현방식을 과장하는 등의 극단적인 시도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이번 공연의 협연자로 나선 김봄소리는 오직 작품에 충실한 ‘정공법’만으로도 감동을 안겨주어 인상적이었다. 풍부한 비브라토와 견고한 보잉을 바탕으로 한 충실한 톤과 정확한 인토네이션, 그리고 차이콥스키의 음악에 몰입하는 그 진실한 태도는 관객들에게 곧바로 전달되었다. 그것은 단지 세부적인 장식이나 다이내믹 변화로 일시적인 달콤함을 추구하는 연주가 아닌, 음악을 향한 진정성이 담긴 연주였다. 그리고 여기에 역동적인 속도감이 더해지면서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협주곡은 생기 넘치는 음악으로 표현되었다. 때때로 그 아찔한 쾌속 질주에 오케스트라의 앙상블이 다소 흩어지기도 했고 3악장에서 오케스트라 목관파트의 실수로 아슬아슬한 순간이 연출되기도 했지만, 전 악장에 걸쳐 눈과 귀를 뗄 수 없는 긴장감 넘치는 연주였다. 김봄소리는 이번 유럽 투어에 함께 하지는 못하지만 이번 공연을 통해 유럽 무대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바이올리니스트임을 입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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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 후 연주된 브람스의 교향곡 제4번은 이번 공연의 백미였다. 1악장의 자연스런 도입에 이어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제1주제가 펼쳐졌다. 이 유명한 주제는 쉼표로 끊어져 있어 그 흐름을 잘 연결해내기 힘들지만 20년 넘게 이 곡을 연주해온 부천필 현악 주자들의 보잉은 제1주제의 깊은 맛을 살려내기에 충분했다. 전 악장 가운데선 무엇보다 2악장의 명상적인 연주가 압권이었다. 물론 2악장 초반 관악기 연주는 다소 불안한 면은 있었으나 첼로가 아름다운 제2주제를 연주하기 시작하면서 브람스 음악 특유의 우수에 찬 분위기가 살아 올랐다. 2악장 후반에 바이올린이 다시 선보인 제2주제는 마치 신을 향한 기도처럼 간절함이 배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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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에 찬 4악장의 명연주도 단연 돋보였다. 주제와 30개의 변주, 그리고 종결부로 이루어진 4악장에서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그 꽉 짜인 형식 속에서도 그들의 기량을 낱낱이 보여줘야 하는 부담을 느끼데 된다. 그러나 부천필의 모든 단원들은 몸을 사리지 않고 마치 개개인이 뛰어난 독주자인양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연주를 펼쳐 보여 인상적이었다. 특히 4악장의 유명한 플루트 솔로를 훌륭하게 소화해낸 플루트 수석과 코랄 멜로디를 자연스럽고 깊이 있게 표현해낸 트롬본 주자들의 연주가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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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필의 앙코르 무대는 또 하나의 ‘작은 음악회’였다. 임헌정은 유럽 투어 첫 공연장소인 프라하에 어울리는 작품으로 드보르작의 교향곡 8번 3악장을 골랐다. 선율미가 뛰어난 이 곡의 감각적인 아름다움은 브람스의 진지한 음악과 묘한 대비를 이루며 청중에겐 음악 감상의 재미를 더해주었다. 여기에 마지막 앙코르곡으로 연주된 ‘오 대니 보이’의 풍부한 선율은 음악회를 감동적으로 마무리한 훌륭한 마침표였다.  
 
 
글_최은규 (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