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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리뷰]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말러, 자연과 삶 그리고 죽음 Ⅲ>

  • 작성일2015-09-21
  • 조회수4425
 
 
[리뷰]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말러, 자연과 삶 그리고 죽음 Ⅲ>  
2015.9.15.(화) 저녁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비극의 도래를 알리는 마지막 a단조 코드는 비극적이라기보다는 통쾌했다. 이미 12년 전에 말러의 교향곡 전곡을 완주해낸 부천필에게 말러의 교향곡은 더 이상 버거운 곡도 힘겨운 곡도 아니었다. 부천필의 연주는 말러의 음악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으로 충만했고 음악을 향한 진지한 접근은 여전한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  
 
국내 최초로 말러 교향곡 전곡을 완주해내 국내 음악계에 새 역사를 썼던 부천필은, 부천필의 말러 전곡 완주가 이루어졌던 바로 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다시 섰다. 그 사이 오랜 세월이 흘렀고 지휘자도 바뀌었으며 당시 말러 교향곡 전곡을 완주했던 단원들 중 상당수가 그 자리에 없었지만, 부천필 특유의 진지한 연주는 관객들에게 여전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그날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 서곡에 이어 연주된 말러 교향곡은 말러의 교향곡 중에서도 연주자들에게 대단한 스태미나가 필요한 제6번이었다. ‘비극적’이라는 부제로 알려져 있는 이 교향곡은 마지막 4악장에 비극을 예견하는 나무망치의 타격과 꿈의 세계처럼 아름다운 소방울의 신비로운 울림 때문에 실제 공연 무대에서 더욱 강한 인상을 주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 곡에서 연주자들은 쉬는 마디가 거의 없이 어려운 악구들을 소화해내야 하므로 그 어떤 곡보다도 많은 에너지와 집중력이 필요하다. 또한 비극적이고 무시무시한 음향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그 형식은 매우 고전적이고 잘 다듬어져있어, 이 교향곡의 잘 연주해내기 위해서는 고전적인 형식과 비극적인 표현을 잘 조화시켜야하는 해석상의 어려움도 있다. 부천필의 이번 말러 연주는, 비록 군데군데 앙상블이 흔들리고 관악기군의 실수가 두드러지기는 했으나, 비극적이고 감정적인 표현을 고전적인 형식의 틀에 잘 담아낸 명쾌한 연주로 말러 교향곡 6번의 새로운 매력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했다. 
 
 
 
 
 
‘박영민과 부천필’의 말러는 ‘임헌정과 부천필’의 말러와는 또 다른 신선한 연주였다. 비극적인 교향곡의 1악장 도입부에서부터 두 지휘자의 차이는 확연이 드러났다. 행진곡 풍으로 전개되는 말러 교향곡 6번의 1악장은 흔히 비극으로부터 탈출하려는 행진곡으로 설명되곤 하지만 박영민의 접근은 전혀 달랐다. 임헌정의 날렵한 지휘봉이 다소 격앙된 어조로 비극에 쫓기듯 무리한 탈출을 시도했다면, 박영민의 진중한 지휘봉은 비극을 그대로 떠안은 채 결연히 비극에 맞서듯 느껴졌다.  
 
행진곡의 첫 박을 여는 부천필의 첼로 섹션의 어택은 분명하면서도 확신에 차있었고, 바이올린의 행진 리듬은 결연하면서도 안정돼 있었다. 아마도 임헌정과 부천필의 말러 교향곡 6번의 연주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박영민의 템포나 표현이 다소 무겁고 추진력이 떨어진다고 느낄 수 있으나, 리듬의 윤곽을 분명히 강조하는 연주 덕분에 비극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는 더욱 강하게 전달됐다.  
또한 버전이 다른 악보로 달리 연주한 것도 임헌정과 박영민의 차이를 더욱 부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2002년 임헌정과 부천필의 말러 교향곡 6번 공연 당시에는 빠른 스케르초가 2악장으로 연주되는 버전이 사용되었다. 덕분에 1악장과 비슷한 부점 리듬형을 지닌 스케르초는 1악장의 행진곡을 더욱 악마적이고 무시무시하게 이어가며 감정적으로 더욱 고양시켰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2악장으로 느리고 아름다운 안단테 악장이 연주되어 행진곡의 투쟁적인 느낌은 다소 주춤하는 듯했다.  
 
흔히 ‘사랑의 간주곡’이라 해석되는 느린 안단테 악장은 전 악장 가운데 가장 편안한 곡이다. 그러나 장조이면서도 단조를 암시하는 음표들이 많아 달콤쌉싸름한 매력이 담겨 있어 잘 연주해내기가 매우 어려운 곡이기도 하다. 느린 악장 초반에는 이런 미묘한 복합성이 잘 드러나지 않아 다소 지루한 감이 있었으나 이 악장 후반에 소방울의 울림과 함께 찾아온 클라이맥스 부분은 충분히 감동적이었고 플루트와 바이올린의 섬세한 마무리 덕분에 이 악장 말미는 깊은 여운을 남겼다.  
 
스케르초 악장이 시작되자 특히 첼로와 콘트라바순을 비롯한 저음악기들의 활약으로 리듬의 활기가 살아났다. 말러 교향곡 6번의 스케르초 악장은 말러가 작곡한 교향곡 악장들 가운데 가장 악마적이고 무시무시한 곡으로 알려져 있으나, 박영민이 이끄는 부천필의 연주는 무시무시하기보다는 명쾌하고 간결했다. 각 파트의 소리는 명확하게 잘 들렸으며 스케르초의 주제와 아이의 걸음마를 닮은 주제로 알려져 있는 또 하나의 주제가 대비되는 이 악장의 구조도 선명하게 감지되었다. 듣는 이의 마음을 파고드는 감정 표현으로 관객들의 감정이입을 의도하기보다는 오히려 곡 자체의 구조와 선율 하나하나의 성격을 살려내는 박영민의 해석 덕분에, 말러의 비극적인 교향곡은 세기말의 혼돈을 담은 음악이라기보다는 마치 그리스 비극처럼 완벽한 플롯을 갖춘 작품으로 다가왔다. 이는 마지막 4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4악장 초반 신비로운 서주에선 잦은 실수로 다소 긴장감이 떨어지긴 했으나 제1주제가 제시되며 빠른 주부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오케스트라는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나무망치의 두 번째 타격이 지나가고 재현부가 시작되었을 때 박영민의 지휘봉은 바닥에 떨어졌다. 그런데 음악의 활기는 오히려 더욱 고조되며 마지막 비극을 향해 치닫기 시작했다. 하프의 신비로운 울림에 이어 높게 비상하는 바이올린의 선율은 비극으로부터 탈출하려는 몸짓을 보여주었고 관악기는 비극을 예견하는 장·단3화음을 찌르는 듯 강렬하게 연주했다.  
 
 
 
 
 
이윽고 교향곡의 거의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러 금관악기가 마치 진혼미사곡의 ‘이상한 나팔소리’와 같은 어두운 울림을 만들어내며 우리 귀를 사로잡았고 더블베이스와 첼로의 가냘프지만 강렬한 소리는 관객들의 귀를 무대에 집중시켰다. 그때 강렬한 a단조의 코드가 관객들의 가슴에 통쾌한 ‘한 방’을 선사했다. 아마 그 순간 가슴 속이 후련해짐을 느낀 것은 비단 필자 뿐만은 아니었으리라. 길고 고된 여정을 거쳐 마침내 터져 나온 비극적인 코드는 오히려 강한 카타르시스를 일으키며 우리의 감정을 정화하고 우리 마음을 만족감으로 가득 채웠다.  
 
 
 
 
 
글_최은규 (음악 칼럼니스트 / 전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제1바이올린 제2수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