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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리뷰]부천시립합창단 제123회 정기연주회 - 우리의 노래, 평화의 노래

  • 작성일2015-11-05
  • 조회수3387
 
 
 
[리뷰]부천시립합창단 제123회 정기연주회 - 우리의 노래, 평화의 노래 
2015.10.27.(화) 저녁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2014년 구레츠키(Gorecki, Henryk Mikolaj, 1933-2010)의 공연(부천시립합창단 제117회 정기연주회)을 놓치고 안타까워했던 기억을 더듬으며 설레는 마음으로 부천시립합창단 제123회 정기연주회 공연(10월 27일)을 기다렸다. ‘음색작곡’(Klangfarbenkomposition)을 중심에 두고 연구하고 있는 음악학자에게 구레츠키의 작품들은 다양한 연구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기에 이 작곡가의 작품을 실황으로 접할 수 있는 기회는 참으로 값진 것이다.  
 
 
 
 
 
조익현 지휘자와 부천시립합창단은 제123회 정기연주회 프로그램을 대한민국 광복 70주년과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해방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한국 작곡가 이순교와 폴란드 작곡가 구레츠키의 작품으로 구성하였다. 프로그램 구성만으로도 역사교과서 국정화로 국내가 술렁거리는 이 시점에 아픈 역사를 떨쳐버린 두 나라의 ‘해방’을 기념하는 음악회는 가슴의 한편을 뭉클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1부의 구레츠키 아카펠라 합창음악이 종교적 숭고함으로 나치즘에 희생된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것과 같은 엄숙한 분위기를 형성했다면, 2부의 이순교 칸타타 ‘나의 조국 대한민국’은 수난의 역사를 딛고 일어나 밝은 미래를 기약하는 힘찬 희망의 메시지가 대규모 합창과 오케스트라 편성으로 청중을 압도하며 전달되었다. 
 
 
 
 
 
1부에 연주된 구레츠키의 아카펠라 합창음악은 세 언어(폴란드어, 라틴어, 독일어)를 텍스트로 한 작품들이었다. 무대 정면에 텍스트 원어와 번역을 띄어 청중들이 귀로 눈으로 음악을 감상할 수 있게 한 배려는 음악 감상을 좀 더 심도 있게, 텍스트에 담긴 의미를 음미하게 하는 효과를 주었다. 한 명의 작곡가가 1975년(1부 마지막 연주곡이었던 Amen op. 35)부터 1987년(세 번째 연주곡 Totus Tuus op. 60)까지 13년 정도라는 짧지 않은 기간에 작곡된 다섯 곡의 연주에서는 있을 법한 음악어법의 큰 변화는 감지할 수 없었다. 다섯 곡이 모두 청중들에게는 20세기에 작곡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듣기에 불편을 주는 소리(무조성을 유발하는 불협화적 울림)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폴란드어를 텍스트로 한 첫 번째 그리고 두 번째 작품인 『나의 비스와 강, 잿빛 비스와 강』(Wisło moja, Wisło szar, Op. 46)과 『넓은 강』(Szeroka Woda, Op. 39)은 폴란드 민속음악을 모르는 청중들에게도 그의 다른 작품들과는 다른 ‘민속적’ 분위기가 느껴졌을 것이다. 다른 곡들과 마찬가지로 18-9세기 음악과 같은 조성은 아니지만, 온음계적 진행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폴란드 민속선율의 음계를 가지고 있다고 단언할 수 없는 작품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익현 지휘 아래 연주되는 두 합창곡은 ‘폴란드의 민속적 분위기인가?’ 할 다른 세 곡과는 다른 차이를 분명 전달하였다. 작품 분석에서도 쉽게 드러나지 않는 폴란드적 색채가 폴란드어를 모국어로 하는 합창단도 아닌 한국 합창단에 의해 청중에게 전달되었다는 것은 폴란드어 딕션을 완벽하게 섭렵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는 폴란드어 발음 지도를 받은 합창단 그리고 폴란드어 텍스트로 한글로 번역할 수 있는 지휘자의 능력과 같은 ‘학문적’ 접근이 얻어낸 결과라고 여겨졌다. 각 나라의 언어는 그 언어 속에 담긴 언어적 리듬과 억양으로 인해 고유 민족적 정서를 담아내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민족주의 작곡가들이 성악음악 창작으로 민족음악을 구현해왔다. 20세기 음악사 기술에 있어서 구레츠키를 민족주의 작곡가로 명명하지는 않지만, 이 음악회에서 연주된 독일어와 라틴어 텍스트에 의한 작품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그의 작품에 내재된 폴란드인으로서의 민족성을 부천시립합창단은 완벽한 폴란드어 딕션으로 드러나게 했다. 
 
 
 
 
 
이순교의 칸타타는 청중과의 소통이 작품의 구성에 들어가는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 300여명에 달하는 합창단과 대 편성의 오케스트라가 함께한 칸타타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클래식 창작계가 실내악 위주로 편중되는 현 상황에서 접하기 힘든 공연이어서 더 감동적이었던 것 같다. 마지막 악장에서 청중이 작품의 한 부분의 연주자로 참여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예기치 못하고 음악 연주에 참여한 청중들의 리듬감이 돋보였다. 수동적으로 앉아서 감상하는 청중을 음악의 능동적 주체로 이끌어 ‘공감’을 형성하였다.  
음색작곡가로 그리고 1976년 작품인 교향곡 3번을 통해 ’명료함’과 ‘단순함’으로 대변되는 구레츠키의 독자적인 창작세계가 1975년 이후 창작된 아카펠라 합창음악에서 더욱 구체화되었을 거라는 가정을 세워놓고 ‘확인해야지!’하는 소기의 목적을 갖고 찾은 음악회였다. 그러나 그 목적은 ‘억압의 세월을 겪은 두 민족의 애환과 슬픔이 피부에 와 닿는 연주’로 인해 간데 온데 없이 사라졌다. 특히 2부 작품이 연주되는 동안 너무나 자연스럽게 묻어 두었던, 아니 잊고 있었던 ‘애국’, ‘조국 사랑’과 같은 단어가 가슴 한편에서 스멀거리며 머리를 들이밀고 있었다.  
 
 
 
 
글_신인선(철학(음악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