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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리뷰]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박영민의 말러 제2번 부활

  • 작성일2016-10-14
  • 조회수2775
 
 
 
[리뷰]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박영민의 말러 제2번 부활>  
2016.10.7.(금) 저녁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음악에 있어서 전통은 발전의 밑거름이 된다는 점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요소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오케스트라의 경우 악단의 전통은 곧 정체성에서 비롯하기 마련인데 그 정체성은 과연 어떠한 음향을 갖고 있는가에서 결정지어진다. 어딘지 보수적이라고 생각될 수 있겠지만 오케스트라 예술의 기본단위인 음향, 조금 더 나아가 이야기한다면 자신들만의 고유한 개성으로서의 음향을 지켜나가야만 비로소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단계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다.  
 
 
 
1990년대 한국에 말러 신드롬을 일으킨 주체로서 부천필하모닉은 전 예술감독인 임헌정 지휘자 시절에 수차례의 전곡 연주를 통해 말러 교향곡에 가장 적합한 기량과 음향을 쌓은 바 있다. 그 결과 단호한 디테일과 순발력 높은 엑스타시의 형언할 수 없는 조화를 자신들의 전통으로 쌓을 수 있게 되었고 이는 곧 부천필의 트레이드 마크와 같은 스타일로서 그 어떤 악단과도 구분되는 독창적인 개성으로서 그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이후 박영민 지휘자가 새롭게 부천필을 이끌게 되면서 떠오른 가장 큰 관심사는 과연 이러한 전통을 어떻게 이어나갈 것인가였다. 부임한 후 몇 차례 말러 교향곡을 연주하며 악단과의 파트너쉽을 다져나갔던 박영민 지휘자에게 있어서 2016년 10월 7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가진 말러 교향곡 2번 연주회는 이렇게 완성된 단계로서의 전통을 간직하고 있는 오케스트라만이 보여줄 수 있는, 이른바 설명할 수 없는 신비로움을 만날 수 있었던 회심의 기회였다고 평가할 만하다. 
 
 
 
첫 악장 시작부터 부천필의 그 사운드가 여전히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첨예하게 울부짖는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격정적인 트레몰로부터 중단되었다가 다시 시작되는 그 불연속적인 리듬감까지 여전히 감동적인 부천필만의 개성적인 에너지를 느끼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그러다가 두 번째 주제가 시작되면서부터 훨씬 부드럽고 전원적이어서 이전의 부천필의 연주와는 확연히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 결과 주제의 대비가 보다 정묘해지고 수축과 이완의 묘가 강조되어 앞으로 진행될 전개부부터 피날레 코랄까지 치솟아 오르기 위한 에너지를 비축하고 그 강도를 암시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특히 미세한 템포변화와 악기들 밸런스의 미묘한 중첩, 여기에 보다 긴 호흡이 가세하며 기능적으로도 훨씬 진일보했고 스토리텔링의 힘 또한 한층 강화되었다. 트롬본의 맹활약에 비해 혼과 트럼펫이 받쳐주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던 1악장에 비해 2악장은 온도감이 너무 밝은 것이 짐짓 낯설게 느껴졌을 뿐 모든 것이 신선하고 새로웠다. 무엇보다도 과도하지 않은 엑센트를 수반한 리듬과 투명하고 화사한 현악합주의 밸런스는 오스트리아의 렌틀러가 주는 전원적 소박함을 거의 완벽하게 구현해냈다는 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3악장에서는 전체적으로 긴장감이나 대비의 효과가 조금 느슨해서 그로테스크한 느낌이 적다는 아쉬움이 들었지만 현악의 피차카토와 목관의 고급스러운 유니즌이 부천 필만의 강력한 개성을 발산하며 청중의 귀를 잡아끌었다.  
 
 
 
세부적으로 보강해야 할 악기군의 기량과 보다 한결 같은 스타일의 조탁이 요구됨에도 불구하고, 박영민은 부천필로 하여금 부드러움과 장엄함의 이질적인 조화라는 새로운 단계로 이끄는 듯하다. 악단의 고유한 성질과 기민한 반응력을 존중하면서 자신만의 음악적 스타일을 쌓아가는 모습이 그러한데, 이러한 모습은 4악장에서 가장 크게 부각되었다. 알토 이아경의 엄청난 호소력과 표현력과 함께 신비로우면서 위안을 실어내는 오케스트라의 음향이야말로 이번 공연의 하이라이트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감동적이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5악장에서는 부천-수원-안산 시립합창단 연합이 오케스트라와 가세하여 하늘이 열릴 정도로 웅장한, 동시에 잘 조율된 울림을 만들어내면서 위대한 음악에 걸맞는 장대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접했던 국내 오케스트라의 말러 교향곡 2번 연주 가운데 가장 공감할 수 있었던 연주로서 부천필의 말러가 차원전환을 통해 본격적으로 그 자체로서 충분히 브랜드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앞으로의 선전을 기대해 본다.  
 
글: 박제성/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