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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리뷰]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R.Strauss 탐구 시리즈 Ⅲ

  • 작성일2017-11-13
  • 조회수2076
[리뷰]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제229회 정기연주회  
2017. 11. 9. (목) 저녁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음악은 매혹과 정열, 탐닉으로 점철된 세계다. 아니, 이런 요소들이 ‘의도적인 과잉’으로 치닫는 세계다. 이를 표현하기 위한 도구는 휘황함과 변덕(Capriciousness)이다. 슈트라우스는 고음현과 금관을 강조해 잘 연마된 금속의 표면과 같은 번쩍거리는 색채를 빚어내고, 날카로운 리듬과 수시로 변화하는 박자로 칼끝처럼 표제에 따라 원하는 악상을 빚어내는 데 대가였다. 
 
여기서 빚어지는 질문이 ‘슈트라우스의 음악세계에 어느 정도의 휘황함과 변덕스러움이 적절한가’라는 것이다. 슈트라우스 자신이 악보에 담아놓은 만큼의 휘황함이면 될까. 슈트라우스 최고의 대변자로 자처했던 카라얀은 슈트라우스 음악의 고음현과 금관에 가장 강렬한 수준의 집중도와 한결 큰 음향을 요구했다. 이후 이는 1960년대 이후 일종의 경향을 이루었고, 악보의 객관적 재현을 넘어서는 수준의 뜨거움이 부가되었다. 각 장면의 묘사에 있어서도 악보가 요구하는 바를 넘어서는 지휘자의 주관과 칼날 같은 대비가 일종의 유행이 되었다. 
 
이런 연주들에 익숙해진 청중에게는 박영민 지휘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연주한 ‘R. 슈트라우스 탐구 시리즈 III’가 새롭거나 낯익지 않은 세계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휘자는 악보에 지시된 이상의 과열된 휘황함을 주문하지 않았고, 악보에 묘사된 이외의 급격한 템포 변화를 주는데도 매우 신중했다. 이런 성격의 연주를 통해 최근의 흔한 슈트라우스 연주들과 색온도가 다른 슈트라우스가 표현되었다. 그리고 이 낯익지 않은, 그러나 악보와 한층 가까울 수 있는 슈트라우스상은 한껏 화려하고 온화했으며 충분히 아름다웠다. 
 
박영민은 말러를 비롯한 후기 낭만주의 대곡 연주들을 통해 악기군 간의 아름다운 음량 밸런스를 빚어내는데 능숙하다. 영상으로 비유하자면 한 순간의 화면 속에 요소들을 조화롭게 배치하는 ‘미장센’에 능함을 그는 증명해 왔다. 이날 연주의 첫 곡인 ‘돈 주앙’에서부터 이 점은 확연했다. 첫 부분에서부터 휘황하게 부풀어 오르는 현은 파트 사이 절묘한 밸런스를 잡아냈다. 결코 과열의 느낌을 주는 현악부가 아니었지만 오히려 단조로운 인상을 피하고 한층 탐미적인 느낌으로 귀에 붙었다. 믿음직한 기량을 선보인 금관과 적당한 온도의 현이 어울려 상쾌한 음색의 팔레트를 빚어냈다. 
 
‘여성과의 열락’을 나타내는 정점에서도 고음현 뿐 아니라 관과 베이스의 세부가 정밀하게 잘 들렸다. 다른 많은 연주들이 놓치기 쉬운 요소다. 템포 역시 슈트라우스 특유의 변덕스러움 또는 신속한 전환에 지휘자 자신만의 색채를 더해 더욱 변덕스럽게 만드는 부분은 느끼기 힘들었다. 곡 마지막 부분, 불이 꺼지듯이 욕망이 가라앉는 부분에서도 악보에 지시되지 않은 리타르단도는 나타나지 않았다. 
 
두 번째 스테이지에 연주된 ‘4개의 마지막 노래’는 소프라노 서선영이 솔로를 맡았다. 그의 이지적인 음성과, 노랫결에 따라 공명점을 자연스럽게 바꿀 수 있는 능력은 기대를 갖게 했다. 바그너의 음악극에도 자주 출연했으니 충분한 음량 또한 증명된 셈이다. 그러나, 낮은 음역에서 일부 가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소프라노 음량 자체가 관현악에 묻히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1곡 ‘봄’에서 ‘너는 나를 다시 보고(Du kennst mich wieder)’, 3곡 ‘잠들 무렵’에서 ‘별이 빛나는 밤(gestirnte Nacht)’같은 부분들이 그랬다. 
 
1곡에서는 후주가 전해주는 색깔이 거듭해서 듣고 싶은 잔잔한 여운을 안겨주었다. ‘잠들 무렵’의 간주에서도 달콤한 앙상블이 펼쳐지면서, 여러 지휘자들이 선보이는 템포변화는 보이지 않았다. 이 곡을 마무리하는 부분에서 현악부의 신비한 화음 시퀀스는 기대한 이상의 매력적인 음색으로 귀를 붙들었고, 독창자도 적확한 음색으로 반응했다. 
 
마지막 곡 ‘저녁노을’의 쏟아지는 듯한 전주 역시 앞의 곡들을 통해 상상한 바와 같았다. 여태껏 들어본 연주 중에서 가장 음량과 열도가 과하지 않게 정제된 편에 속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노을이 아니라, 이미 빛이 사위어가는 노을의 인상이었다고 할만했다. 부가되는 장점이라면, 화음이 교차하는 부분의 미묘한 색깔이 저녁노을의 묘한 ‘그라데이션’ 같다고 할까, 더 분명히 들린 점이다. 마지막 곡 후주, 금관의 사위어가는 지속음에도 울퉁불퉁한 면은 없었다. 필자에게는 독창 저음역 부분의 음량 문제가 마음에 걸렸지만, 관객은 세 번의 커튼콜로 서선영의 소프라노 솔로에 공감을 표시했다. 
 
중간휴식 후 ‘돈키호테’는 부천필 첼로 수석 목혜진이 돈키호테 역인 첼로 솔로부를 담당했다. 오래 호흡을 맞추어 온 만큼 지휘자 박영민과의 ‘화학적 결합’이 무난했다. 슈트라우스적 기벽에 자신의 색깔을 더해서 굳이 복잡하게 만들고자 하지 않은 지휘자와 같은 지향점을 공유한 것으로 보였다. 
 
1변주 ‘풍차를 향한 도전’에서는 기사의 추락을 나타내는 하프 소리가 뚜렷한 음량으로 들려오지 않았다. 7변주 ‘하늘을 나는 기사’와 8변주 ‘보트를 타고 떠나는 불행한 항해’는 이날 연주의 정점이었다. 전체 합주의 밸런스가 호화로운 느낌을 주었으며 금관의 투철함을 응원할 만 했다. 연습에 쓰인 시간과 성의가 실감나게 상상되었다. 9변주 ‘상상 속의 마술사와 벌이는 결투’에서는 바순의 듀오가 일부러 ‘에지’를 흐려 쉬 흘러가듯이 들리도록 한 것인지 궁금했다. 피날레에서도 첼리스트 목혜진은 절절하면서도 선이 간결하고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주었다. 
 
이날 연주에 걸쳐, 슈트라우스가 고생을 시키기로 유명한 금관 파트에서도 순조롭지 않은 부분은 돈 주앙 마지막 부분 호른의 상행음형 일부와, 돈키호테 3변주 중간 직전 트럼본에서 나타났던 작은 멈칫함 정도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잘 귀에 뜨이는 정도는 아니었으며, 해외 악단들의 연주 실황과 비교해도 특별하지 않은 정도였다. 
 
박영민 지휘 부천필은 앙코르로 드보르자크 ‘슬라브 춤곡’중 서정적인 제2번을 들려주었다. 역시 허식이 없는 담백한 색상으로 절절한 노래를 펼쳐나갔다. 열락과 도취의 세 메인프로그램에 선선한 바람과 같은 마침표를 짓기에 적절한 선곡이었다. 
 
 
글 유윤종(동아일보 음악전문기자, 서울국제음악콩쿠르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