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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리뷰][창단 30주년 기념]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박영민의 말러 제2번 부활(글_김문경)

  • 작성일2018-05-23
  • 조회수1725
[리뷰]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제236회 정기연주회 <박영민의 말러 제2번 ‘부활’>  
2018. 5. 18. (금)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
 
 
 
 
 
“일어나라, 나의 마음이여, 한 순간에 다시 일어서라! 네가 받은 고통으로 인해 신에게로 인도되리라!” 독창자와 합창단이 오케스트라와 하나의 음향체를 형성하여 홀을 울리는 순간 관객들은 말러가 전한 메시지에 꼼짝할 수 없이 사로잡혔다. 지난 5월 18일에 열렸던 부천필의 말러 교향곡 2번 ‘부활’ 콘서트는 국내 최초로 말러 교향곡 전곡 사이클을 기획하고 치러낸 악단의 자부심을 잘 보여주었다. 박영민 지휘자는 시종일관 암보로 지휘하면서 곡에 대한 높은 확신과 장악력을 보여주었다. 
 
제1악장의 시작 부분은 매우 적절하게 해석되었다. 이 부분은 앙상블이 너무 잘 맞아 탱고처럼 들려서는 안되지만 결코 어수선한 모습을 보여서도 안되기에 지휘자에게 까다로운 숙제와 같다. 푸르트벵글러가 구현했던 ‘유동적인 정확성’이 요구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부천필은 그 어느 악단보다도 말러 교향곡 연주를 일찍이 자주 해왔던 악단이니 만큼 지휘자의 명민한 바톤에 높은 수준으로 부응하였다. 개시악장은 20분이 넘는 연주시간의 긴 곡이지만 하나로 꿰어질 정도로 높은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었다. 
제2악장은 너무 느리거나 끈적거리지 않은 상쾌한 렌틀러의 속도를 지니고 있었다. 무겁고 어두운 교향곡 전곡 가운데서 잠시나마 따스한 햇살을 느낄 수 있도록 적절한 휴식의 순간이 형성되었다. 제2악장이 끝나고 독창자들이 무대로 들어왔는데 이는 악장 사이를 느슨하게 만드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 소프라노와 메조-소프라노는 작곡가가 ‘5분간의 인터벌’을 두라고 악보에 지시했던 제1악장과 제2악장 사이에 입장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본다. 
다시 ‘일상의 역겨움’으로 되돌아가는 듯한 제3악장은 유난히 시니컬하거나 강한 모더니즘을 표방하지는 않았지만 적절한 속도감 속에서 좋은 앙상블을 유지하고 있었다. 제5악장의 시작부분과 연계된 파국의 클라이맥스 부분은 오케스트라 전체가 ‘비명’을 부르는 장면으로, 강력한 사운드와 높은 몰입이 피날레에 대한 기대감을 고조시키는 데 충분했다. 제3악장과 제4악장이 악보에 지시된 것처럼 짧은 휴식없이 막바로 연결되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았다는 점도 첨언해 둔다. 제3악장에서 제5악장까지는 청중의 헛기침을 허용하지 않고 바로 이어서 연주하는 것이 긴장감을 유지하는 데 유리하며 작곡가의 정성들인 프로그램을 구현하기에도 더욱 자연스럽다. 
제4악장은 말러의 가곡집 ‘소년의 마술 뿔피리’ 중 ‘근원의 빛’에서 차용한 것으로 구원에 대한 기대와 순수한 신앙의 고백을 노래 부르는 장면이다. 메조-소프라노의 가창에 이어 트럼펫이 코랄을 연주하는 장면에서 금관에 부여된 약음(pp)이 적절히 지켜지지는 않았지만 전반적으로는 무난한 진행을 보여주었다. 
 
말러의 ‘생의 철학’이 거대한 프레스코화로 펼쳐진 제5악장은 연주에 옥석이 공존했다. 일단 오프스테이지 호른이 매우 빼어났다는 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오케스트라 운영상 어쩔 수 없이 통상 객원주자로 채워지는 무대 뒤 브라스 파트는 그간 관객의 마음을 조마조마하게 했던 부분이었다. 국내 여건상 객원 금관 단원들의 수준이 높지 않아 잦은 실수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날 공연에서 무대 왼쪽의 입장문을 열고 연출한 오프스테이지 호른 소리는 말러의 프로그램을 구현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최후의 심판의 나팔 소리와도 같이 은은하게 퍼지는 공간감이 일품이었는데 잔향이 비교적 많은 롯데홀의 특성과도 잘 맞아 떨어졌다. 호른 주자들은 90마디의 하이 F음도 문제 없이 취주해냈다. 
문제는 오히려 무대 위의 오케스트라 금관 파트에서 발생했다. 제4악장까지 눈에 크게 띄는 실수를 하지 않았던 금관 파트가 피날레에서는 유난히 치명적인 실수를 범해 안타까움을 주었다. 69마디부터 등장하는 트롬본 파트에서 음이탈이 있었고 이는 73마디에서 이어받는 트럼펫 파트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적막한 가운데 현악이 가벼운 피치카토(활로 연주하는 대신 손으로 현을 뜯는 주법)로 연주하는 장면이기에 실수는 더욱 확연하게 들렸다. 이 부분은 합창이 처음 등장하는 부분의 코랄을 예시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매우 핵심적인 곳에 해당한다. 물론 금관악기란 것이 연주 기법상 자잘한 실수를 피할 수 없는 악기이기는 하나, 되도록이면 이런 부분에서는 높은 긴장감을 이어나가도록 집중력을 잃지 않아야 한다. 
이후는 빼어난 해석으로 느슨한 곳 없이 잘 진행되었다. 특히 합창이 등장하기 전 심판의 나팔소리와 저승새의 울음소리가 어우러지는 448마디 부분은 그간 들어왔던 국내 악단의 연주 중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무대 왼쪽에서 문을 열고 들려오는 호른 소리와 합창석 측면에서 울려 퍼지는 트럼펫이 어우러져 높은 입체 음향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합창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말러가 지시한 최약음(ppp)이 지켜지지 않은 점은 여전히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국내 합창단은 강한 소리에는 강점을 가지지만 그간 약음 파트에서는 유난히 고전을 면치 못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거의 속삭이는 허밍처럼 은은하게 노래되어 신비스러움을 창조해야 하는 부분이 관성에 젖은 평범한 음향에 그친 것이 못내 아쉬웠다. 말러 음악에서 감동을 주는 부분은 포르티시시모(fff)의 강음이 아니라 이러한 최약음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525마디에서 오케스트라의 트롬본 화음도, 필요 없이 강하게 들어와 이질적으로 들렸다. 
이후의 부분은 군소리 없이 훌륭했다. 지휘자는 여러 템포로 지시된 다양한 섹션이 자칫 조각보처럼 짜깁기 될 위험을 현명하게 피했고 전체가 마치 ‘대리석 조각’처럼 빛날 수 있었다. 심벌즈 파트는 예의 찬란한 소리로 곡에 눈부신 액센트를 더했고 홀에 제대로 설치된 파이프 오르간 소리는 웅장한 음향으로 오케스트라와 하나로 어우러졌다. 
 
훌륭한 마무리에 일부 청중들은 바로 ‘브라보’를 외치며 화답했다. 방약무인격으로 질주하는 교향곡 1번 ‘거인’과 달리 교향곡 2번 ‘부활’은 삶과 죽음에 무거운 화두를 던지는 곡이기에 이 같은 성급한 갈채는 매우 부적절하다. 단지 몇 초라도 홀의 공기를 느끼며 지휘자가 손을 내리고 박수를 받을 채비를 다 갖춘 다음 박수를 치는 것이 에티켓으로 정착해나가고 있다. 즉 박수의 타이밍도 곡의 성격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며 그 자체도 연주의 일부가 된다. 비록 몇몇 성급한 관객이 공연의 감흥에 영향을 주기는 했으나 악단의 높은 연주력과 지휘자의 탁월한 집중력에까지 해를 끼치진 못했다. 앞으로 청중들의 더욱 훌륭한 ‘박수 연주’를 기대해본다. 
 
글: 김문경_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