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연리뷰

[리뷰][창단 30주년 기념]부천시립합창단 위대한 작곡가 시리즈 6(Ⅰ) 라흐마니노프(글_이연성)

  • 작성일2018-07-02
  • 조회수1843
[리뷰] 부천시립합창단 제136회 정기연주회 ‘위대한 작곡가 시리즈 6(Ⅰ)_라흐마니노프’  
2018. 6. 26. (화)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러시아 합창음악 宝库의 문을 열다” 
 
 
 
 
 
당신의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가, 드레스덴에서, 1908년 10월 14일에.... 
추신! 내 아내도 축하를 전합니다!“ -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가 깐스딴찐 스타니슬라브스키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긴 제목을 가진 편지 형식의 라흐마니노프 가곡 맨 마지막 소절의 가사이다. 당대 최고의 연출가였던 스타니슬라브스키의 ‘파랑새’ 10주년 축하연에 참석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음악 편지로 작곡하여 샬리야핀에게 부르게 하였던 노래가 지금은 러시아 저음 가수들의 주 레퍼토리가 되었을 만큼, 라흐마니노프는 성악곡을 즐겨 작곡하였다. 우리가 흔히 피아니스트이자 피아노 음악 작곡가로 알고 있는 라흐마니노프가 3편의 오페라와 83곡의 가곡을 작곡한 성악곡 작곡가이기도 하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적지 않게 생소한 사실이다. 이러한 라흐마니노프의 생소함을 우리는 2018년 6월 26일 예술의전당에서 부천시립합창단을 통하여 깨트릴 수 있었다.  
 
우선, ‘위대한 작곡가 시리즈’에 라흐마니노프를 선정해 주신 조익현 지휘자님께 러시아 유학파를 대표하여 감사를 드린다. 라흐마니노프의 합창곡을 선곡 하셨을 뿐만 아니라 너무 훌륭한 연주와 지휘를 보여주셔서 더욱 감사를 드린다. 11편의 라흐마니노프 합창 작품 중 8편을 연주 하셨으니 (물론 모든 작품의 전곡을 다 연주하지는 않았지만....) 이날 예술의전당에 오셨던 관객들은 거의 모든 라흐마니노프의 합창곡을 들으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립합창단 홈페이지에서 이 날의 연주 레퍼토리를 보고 적지 않게 놀랐던 것이 사실이다. ‘성 요하네스 크리소스토무스의 전례음악 Литургия Иоанна Златоуста’과 ‘저녁기도 Всенощное бдение’를 한 번의 무대에서, 그것도 러시아 유학파가 거의 없는 단원들의 합창단이 연주해 낼 수가 있을까 하고 말이다. 그러나 공연장에 앉아 있는 두 시간 동안 쓸데없는 걱정을 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번에 부천시립합창단은 러시아어와 그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의 합창음악 애호가들에게 자칫 지루할 수 있는 러시아 교회음악과의 인상 깊은 첫 만남을 만들어 주었다. 그냥 만나게만 해준 것이 아니라, 그 생소한 세계에 완전히 매료되게 해주었다.  
 
먼저 선곡과 프로그램의 배치는 관객이 점차 몰입할 수 있도록 리드하는 정교한 짜임새가 돋보였다. 전통적인 러시아 정교회 예배 가사의 ‘잠들지 않는 하느님의 어머니께 드리는 기도’와 ‘영혼들의 합창’의 introducing은 앞으로 펼쳐질 러시아 정교회 음악의 대륙적인 풍모와 라흐마니노프만의 독특한 음색의 향연을 잘 예견해주었다. 단순히 작품 번호에 의한 배치였다 하더라도 “Литургия Иоанна Златоуста 성 요하네스 크리소스토무스의 전례” 앞에 여성 합창을 연주 한 것은 관객들로 하여금 장중한 전례음악으로 들어가기 전, 일종의 ‘성전 문 앞에 서서 예전을 기다리는’ 기대감을 갖게 해 주기에 충분하였다. 그러나 1시간 남짓 무반주 합창을 노래한 피로감 때문인지 작품 31의 16, 17번곡에서는 소프라노에 미세하게 플랫 되는 음정이 있기도 하였지만, 즐거운 감상에 크게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Всенощная, для смешанного хора, соч. 37 저녁기도”는 한러 수교가 이루어지기 전에도 이미 국내 음반시장에서 CD를 구할 수 있었을 만큼 유명하고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작품이다. 필자도 처음 “Telark” 레이블에서 발매한 Robert Shaw 합창단의 음반을 듣고 그 웅장한 울림과 큰 성부의 조화에 넋을 잃었던 적이 있는데, 이번 부천시립합창단의 연주는 30여 년 전의 그 감동을 되새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전체 15곡 중 6곡만 연주한 것이 아쉽기는 했지만, 작품의 백미와 같은 곡들을 잘 선정해 주었고, 한곡 한곡마다 폭넓은 음역대의 앙상블을 충실히 들려주었으며, 특히 테너와 알토 내성 음색의 조화는 여태껏 들어 본 ‘저녁기도’ 중에서 두 손가락 안에 꼽힌다 할 수 있겠다. 무반주 합창곡들의 향연에 이어 마지막 두곡은 오케스트라 반주에 의한 곡을 연주해 주었는데, 소규모 실내악 편곡의 구성도 좋았고 합창 소리와의 하모니가 잘 만들어 진 것이 지휘자의 세심함이라고 여겨졌다. 연주를 보는 내내 지휘자 조익현 선생의 깔끔하고 카리스마 있는 지휘는 모스크바 음악원 합창음악 학부의 스따니슬라프 깔리닌 교수의 젊은 시절을 연상케 하였다.  
 
공연을 시작하며 지휘자 선생께서 하신 멘트 중에 라흐마니노프의 합창음악이 국내에서 자주 연주되지 않는 것이 이데올로기의 영향이라고 얼핏 말씀하셨는데, 필자의 입장으로서는 이데올로기보다는 “언어”의 영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일단 읽을 수가 없으니 악보가 있다 하더라도 연주할 엄두를 내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혹시라도 한글로 토씨를 달아 노래를 한다 하더라도, 성악 음악의 특성상 발음이 정확하지 않고 단어의 뜻을 잘 모를 경우 연주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부천시립합창단의 연주가 환상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언어에 관한 아쉬움은 많이 남는다. 러시아 작곡가의 작품을 연주하는데 공연 홍보물이나 프로그램에 러시아어 제목이 단 한 줄도 있지 않음이 섭섭하였다. 각 곡의 제목은 아니어도 작품 제목 정도를 러시아어 표기를 해주는 것 정도는 글로벌 시대의 세계적인 합창단이 보여 줄 수 있는 배려이지 않았을까?  
 
또, 합창단의 발음과 가사가 거의 들리지 않았음은 이런 맥락에서의 아쉬움으로 남았다. 필자도 여러 음악 단체의 러시아어 딕션을 지도 해 본 경험이 있지만, 알파벳부터 체계적으로 공부 하지 않으면 결국 악보에 한글로 발음 토씨를 달아 노래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예를 들어 “브즈글랴니쩨”라는 3음절의 단어를 세 음표에 적어놓고 노래하라는 것은 이해하기조차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사실 합창단의 문제는 아니고 우리나라 음악대학의 성악과에서 러시아어 딕션을 가르치지 않는 다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그리고 사족이지만, 러시아 합창 음악에서 가장 빛나는 역할인 “저음”이 충분하지 않았던 것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피아노 음악 이상으로 성악음악을 많이 작곡하고 좋아했던 작곡가 라흐마니노프의 아름다운 합창음악을 최상의 화음과 감성으로 연주해주신 부천시립합창단과 조익현 지휘자님께 다시 한 번 최고의 찬사와 감사를 드리며, 혹시 또 러시아 합창 음악에의 열정이 생기신다면 쇼스타코비치와 스비리도프의 합창음악도 도전해 보시기를 추천드린다. 
 
글: 이연성_성악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