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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리뷰]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베스트 클래식 시리즈 Ⅲ - 리스트와 베를리오즈(글_송현민)

  • 작성일2018-09-05
  • 조회수1601
[리뷰]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제238회 정기연주회  
- 베스트 클래식 시리즈 Ⅲ 낭만주의 작곡가 Ⅱ 리스트와 베를리오즈  
2018. 9. 1. (토)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그 순간의 ‘열기’. 그 뒤 감동의 ‘온기’  
 
올해로 창단 30주년을 맞은 부천필은 지난 3월에 ‘낭만주의 작곡가’ 시리즈의 첫 번째 무대를 선보였다. 바그너의 <리엔치> 서곡, 생상의 첼로 협주곡, 브람스 교향곡 2번으로 꾸민 공연이었다. ‘낭만주의 작곡가’ 시리즈의 두 번째인 이번 무대는 박영민 상임지휘자의 지휘로 리스트 <죽음의 무도>(협연 박진우)와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를 선보였다.  
이번 공연을 보며 음악은 ‘어떻게 연주하는가’만큼 ‘어떻게 엮는가’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이든과 모차르트로 대변되는 고전주의가 객관성에 입각한 전범(典範)의 시대였다면, 낭만주의는 머리에 쏠렸던 이성의 기운이 가슴과 심장으로 내려온 시대였다. 작품마다 지켜야 할 규칙이나 약속보다, 작곡가들은 자신의 주관과 감정에 충실했다. 그런데 이러한 낭만주의 작품들도 어떻게 엮이는가에 따라-이른바 기획이다-그 특성을 달리 드러낸다. 지난 3월 공연의 세 작품에는 특별히 연상할 이미지나 줄거리가 없었다. 반면 이번 공연의 <죽음의 무도>는 리스트에게 악상을 준 회화에, <환상 교향곡>은 ‘무도회’를 거쳐 ‘악마들의 밤과 꿈’으로 나아가는 서사적 주인공의 줄거리가 녹아들어가 있다. 따라서 리스트가 음악으로 녹인 회화적 영감, 베를리오즈가 녹여 넣은 서사성(줄거리)은 지난 3월 공연과 또 다른 감상 자세를 제시했다. 무엇보다 국내외에서 실연으로 만나기 힘든 <죽음의 무도>는 <환상 교향곡>과 ‘접속’되며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숭고미를 배가시켰다.  
 
<죽음의 무도>. 강철의 피아노, 불의 지휘가 만든 용광로  
 
<죽음의 무도>는 리스트가 회화 <죽음의 승리>를 본 뒤, 그 악상들을 음 하나하나에 올올히 담은 곡이다. 회화 속 ‘죽음’의 사자는 낫을 휘두르며 자신의 처지를 ‘승리’로 몰아간다. 리스트는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보다, 혹은 그로부터 영향 받은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보다 더 강렬한 에너지로 이 곡을 시작하도록 했고,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 5악장을 모티프로 삼기도 했다. 따라서 <환상 교향곡> 앞에 놓인 <죽음의 무도>는 <환상 교향곡>의 일부를 미리 만나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박진우는 도입부의 저음을 가차 없이 내리치며 막을 열고, 호른은 낮은 음으로 성가 ‘진노의 날’에 담긴 불길하고 음험한 분위기를 표현했다. ‘강철’ 같은 피아니스트와 ‘불’ 같은 지휘자의 만남. 박영민은 피아노에서 튀어나오는 강철의 사운드를 녹여 뜨거운 용광로에 담아 거대한 그림을 그려나갔다. 박진우는 도입부 이후 거친 음량과 극단적인 정적을 자유롭게 오갔다. 느린 흐름을 타고 잔잔히 흐를 때는 리스트가 <사랑의 꿈>의 작곡가라는 것을 잊지 않게 해주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피아노와 대화하고 맞서는 금관의 대열은 한 치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부천필 금관군을 둘러싼 소문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죽음의 무도가 쓸고 간 자리에 박진우는 앙코르로 드뷔시의 ‘달빛’을 드리웠고, 라흐마니노프의 전주곡 Op.3-2를 선보였다.  
 
<죽음의 무도> 2악장(?)으로서의 <환상 교향곡>  
 
그간 <환상 교향곡>을 선보인 여러 공연을 보아왔지만, <죽음의 무도>와 ‘접속’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2부의 <환상 교향곡>은 마치 1부 <죽음의 무도>로부터 이어진 한 곡 같았다. 묘하게 닮으면서도 다른 두 곡은 그렇게 서로를 보완하며 이번 공연의 코드인 ‘낭만주의’의 거대한 풍광을 완성시켰다.  
‘꿈-정열’이라는 부제의 1악장에서 박영민의 지휘와 현악군을 보며 말러와 브루크너로 단련된 지난 시간이 떠올랐고, 2악장 ‘무도회’는 흥겹되 흐트러지지 않는 목관의 표현과 절제가 돋보였다. 특히 2악장은 그간 필자가 접해온, 흥겨움과 선율의 치장미만을 내세운 연주와 많이 달랐다. 풍성하면서도 결구가 잘 맞아떨어지는 깔끔함이 돋보였다.  
3악장 ‘전원의 풍경’이 시작되자 오보에 수석은 조용히 무대 출입문 밖으로 걸어 나갔다. 무대 밖의 오보에와 무대 위의 잉글리시호른이 원거리를 두고 피리로 대화하는 목동들의 소리를 묘사한 대목이었다. 그 사이마다 노래하는 현악의 정제된 여유가 돋보였다. 한편으론 어떤 나른함도 느껴졌다. 하지만 연주의 실수나 템포 완급의 잘못된 조절에서 오는 게 아니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날의 공연 중 3악장이 유일한 아다지오 악장이었던 것. <죽음의 무도>부터 시작하여 <환상 교향곡>의 전반부로 이어진 팽팽한 긴장감이 아다지오의 물결을 만나며 처음으로 느슨해진 것이었다. 4악장 ‘단두대로의 행진’에서는 극한에 치달으면서도 갈라짐 없는 금관의 사운드 연출이 돋보였다. 5악장 ‘악마들의 밤과 꿈’은 가장 끝에 놓인 악장이었지만, 마치 공연을 막을 여는 서곡처럼 박영민과 단원들은 흐트러지지 않는 집중력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특히 이 악장의 마지막에서 장내를 가득 메운 두 대의 종소리, <죽음의 무도>에 나왔던 ‘진노의 날’의 선율 파트는 <환상 교향곡>을 처음 들은 관객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으로 자리 잡았을 것이다. 연주를 마친 박영민과 부천필은 엘가 <수수께끼 변주곡> 중 ‘님로드’와 드보르자크의 슬라브 춤곡을 앙코르로 선사했다.  
이번 공연은 ‘연주의 힘’만큼 ‘선곡의 힘’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시간이었다. <환상 교향곡>의 화력을 지원한 <죽음의 무도>. 박영민이 ‘접속’시킨 두 곡은 낭만주의에서 중요시되는 숭고미를 들여다보는 거대한 창문과도 같았다.  
작곡가가 남긴 것은 악보와 그 속에 남아 있는 미지근한 ‘온기’일 뿐이다. 그 온기를 ‘열기’로 바꾸는 것은 순전히 연주자의 몫이다. 그래서 연주자는 또 하나의 창조자인 셈이다. 이번 부천필의 연주를 보면 ‘열기’라는 단어가 매번 떠올랐다. 국내 교향악단들의 식상한 선곡과 성의 없는 연주에 살짝 지쳐가고 있는 요즈음, ‘열기’라는 말을 꽤 오랜만에 마음속에서 꺼내본 순간이었다.  
 
글 송현민(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