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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리뷰][창단 30주년 기념]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브루크너 교향곡 제7번(글_송주호)

  • 작성일2018-11-20
  • 조회수1594
[리뷰]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제241회 정기연주회  
- 브루크너 교향곡 제7번  
2018. 11. 16. (금)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 
 
<기쁨으로 빛나는 절정의 순간을 향해>
 
 
 
 
 
박영민이 지휘하는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거장의 대작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하여, 관객들에게 풍부한 아름다움과 압도하는 기쁨을 선사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부천필이 추구하는 확장되고 중후한 음악세계와 연결되며, 최근에 출시된 말러 <부활 교향곡>의 음반도 이러한 부천필에 대한 기대에 부응하고 있다. 창단 30주년을 기념하는 지난 11월 16일 연주회에서 브람스의 <알토 랩소디>와 브루크너의 <교향곡 7번>로 꾸며진 프로그램 또한 그 연장선상에 있다. 
 
브람스의 알토 랩소디 
 
첫 곡인 요하네스 브람스의 <알토 랩소디>는 알토와 남성합창, 그리고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으로, 독일 낭만문학의 거장인 괴테의 시에서 가져온 가사는 이별의 슬픔에도 떠나가는 이를 축복하는 매우 낭만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다. 동적인 이야기보다는 심상과 감정의 상태를 노래하기에 극적인 면이 두드러지지 않은 대신, 장면에 따른 분위기 전환이 섬세하게 이루어진다. 부천필은 이 곡의 시작부터 저음의 중후한 사운드로 콘서트홀 공간을 온전히 채우면서, 이러한 기대에 대한 만족을 넘어 전율을 일으키는 감동에 다가갔다. 그리고 섬세한 표현으로 애틋한 감성을 유지함으로써, 괴테의 시가 가진 의미를 음악적으로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작곡 당시 프랑스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베를리오즈나 리스트 등의 프로그램 음악과 같이 극적인 효과에 의존하기보다는, 모차르트의 연주회용 아리아나 베토벤의 합창과 관현악을 위한 작품들의 연장선으로 보이도록 했는데, 고전의 지속에 앞장섰던 브람스의 음악에 매우 어울리는 해석이며, 또한 가사에 포함된 종교적인 의미까지 함의하면서 성가로 승화시켰다. 
부천시립합창단은 관현악의 중후한 음색과 화학적으로 결합하여 감동의 크기를 배로 더하였으며, 알토 독창을 맡은 이아경의 연주는 내면에 감성을 가득 담은 음성으로 음악을 이끌어갔다. 독창자는 가사가 담긴 의미를 직접 부르기 때문에 극적 표현에 대한 내적 요구가 비교적 강하게 나타날 수 있으며, 이것이 음색과 다이나믹의 변화를 통해 노래에 자연스럽게 반영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독창자의 해석은 부분적으로 관현악의 지향점과는 차이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전체 휴지 이후 등장하는 마지막 부분에서 연주자들의 시작이 일치되지 않은 점은 모든 감정을 정리하는 마지막 마무리로서 풀지 못한 미련이 남은 듯 아쉬움이 남는다. 
 
브루크너의 교향곡 7번 
 
안톤 브루크너의 <교향곡 7번>은 그의 교향곡 중 4번과 함께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작품으로, 국내에서도 자주 연주되고 있다. 하지만 오르가니스트이기도 했던 그는 다양한 음색의 악기들이 혼합된 관현악에서도 오르간과 같은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음향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연주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또한 낭만 시대에 독특한 판타지를 표현하기 위해 각 악기군의 음색을 확대하는 경향이 배어있어, 다양한 악기들이 음색 효과를 풍부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점도 신경을 써야한다. 브루크너는 특히 현과 함께 독일어권의 특징인 금관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목관은 단지 한 쌍씩인데 비해, 혼은 네 대, 트럼펫과 트롬본은 각각 세 대, 네 대의 바그너 튜바, 그리고 베이스 튜바로 모두 열다섯 대의 금관악기가 편성되어있다. 오르간의 금속관에서 나오는 금속성 사운드에 익숙해서일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금관과 현악이 주도권을 갖는 편이지만, 브루크너는 관현악 작곡가로서, 금관과 목관, 그리고 현악의 세 앙상블에 역할을 부여하고 개성 있게 조화시킨다. 예를 들면, 하늘의 목소리와 같은 금관, 세상에서 분투하는 인간을 닮은 현악, 그리고 이 둘이 잠잠할 때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며 메시지를 전하는 천사와 같은 목관 등으로 역할을 설정할 수 있다. 부천필은 각 악기군을 나름대로의 음악적 역할에 따라 운용함으로써, 탄탄한 음악적 시나리오를 구현하여 설득력 높은 구성을 만들었다. 
1악장 첫 시작의 첼로 주제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부천필은 브루크너의 현악을 깊이 이해하고 있음을 들려주었다. 여유로운 주제를 연주하면서도 긴장을 한껏 머금고 있었으며, 이것이 이 악장을 이끌어가는 동력이 되었다. 브루크너가 현악 앙상블에서 더블베이스를 뺐을 때 나타나는 신비로운 특징이다. 그런데 이러한 긴장감은 감상자뿐만 아니라 연주자 자신에게도 긴장감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오케스트라라는 하나의 악기로서의 일치된 모습이 다소 부족해 보였는데, 템포를 좀 더 늦추는 것이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실제로 브루크너는 자신의 교향곡에 대해 느리게 연주할수록 좋다고 말한 적이 있으며, 다소 조급해 보였던 장면 전환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그럼에도 브루크너만의 진솔한 감동이 여기에 있다고 할 정도로, 마지막 부분을 발끝이 살짝 떠있는 정도의 절제하면서도 고양된 분위기로 완벽하게 마무리했다. 
2악장은 음악을 주도하는 현악 앙상블의 흐름이 비통함과 절망, 그리고 새롭게 피어나는 희망 등 각 장면의 의미가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면서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모든 타악기가 등장하는 절정의 순간은 고봉준령의 정상에 올라 세상을 바라보듯 압도하는 소리의 풍경을 들려주었다. 이와 함께 이 악장에서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금관 앙상블의 향연이다. 네 대의 호른과 네 대의 바그너 튜바, 그리고 한 대의 베이스 튜바까지 총 아홉 대의 혼 계열의 악기들이 만드는 사운드는 그 어떤 작품에서도 들을 수 없는 음악적 절경을 펼친다. 부천필은 이 인상적 장면을 놓치지 않고 따뜻하고 풍부한 음향을 존재감 있게 연주해냈다. 이러한 금관의 향연에서 가장 주의 깊게 보는 악기는 바그너 튜바이다. 바그너가 혼의 음색으로 소프라노부터 베이스까지 완벽한 하모니를 만들기 위해 혼과 튜바 사이의 음역을 연주할 수 있는 악기를 고안한 것이 바로 ‘바그너 튜바’이다. 이 악기는 일반적으로 혼 연주자들이 연주하는데, 흔히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아 연주에 어려움이 많다. 이들의 하모니는 다소의 아쉬움이 있었지만, 마지막의 하모니는 이 악장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마지막 순간 
 
부천필은 이 순간을 기다렸던 것일까? 3악장은 부천필이 절정의 순간에 강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모든 연주자들이 몰입하여 음향을 폭발시키는 에너지는 앞의 악장의 클라이맥스와는 또 다른 전율을 불러일으켰다. 앞의 악장에서 느꼈던 아쉬움을 모두 해소하고, 마지막 순간에 이르기까지 완성도 높은 음향을 유지하며 브루크너의 스케르초를 마음껏 즐겼다. 마지막 4악장은 금관 전체의 앙상블이 돋보이는 악장으로, 부천필의 금관 연주자들은 자신의 가장 뛰어난 연주를 들려준 것이 아닐까 싶은 정도로 조화된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이러한 성공적인 연주는 전체 휴지 후 등장하는 마지막 코다에 이르러 정신적인 해방의 순간을 기대하게 했고, 부천필은 이에 걸맞은 완벽한 음향으로 마무리하면서 모든 아쉬움을 거두고 음악적 기쁨만을 고스란히 남겨두었다. 
 
글|송주호(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