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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리뷰]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제248회 정기연주회(글_강지영)

  • 작성일2019-05-31
  • 조회수1975
[리뷰]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제248회 정기연주회  
- 박영민의 말러 제3번  
2019. 5. 17. (금)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부천필의 정기연주회, 제목만으로 기대하게 만들다! 
 
지난 17일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박영민의 말러 제3번”이라는 타이틀로 제248회 정기연주회를 가졌다. 화려한 문구로 포장된 각양각색의 제목들이 난무하는 요즘, 아무런 미사여구 없이 지휘자와 곡목으로 된 부천필의 제목은 단정한 인상을 주었고, 오히려 공연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 주었다. 지휘자 한 사람의 이름과 연주될 작품 제목만으로 청중의 관심을 끌 수 있다는 것은, 지금껏 부천필이 부단한 노력으로 견고한 음악의 세계를 구축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2015년부터 호흡을 맞춰 온 상임지휘자 박영민 역시 학구적이고 기본에 충실한 연주로 부천필 연주를 찾는 관객들에게 꾸준한 신뢰를 쌓아왔다. 제248회 정기연주회는 부천필과 박영민이 과연 어떤 색깔의 말러 교향곡 제3번을 들려줄지 기대를 안고 떠난 즐거운 음악적 탐구였다. 
 
조성호의 클라리넷, 기교를 넘어 음악을 만들다! 
 
말러의 교향곡 3번의 짝으로 1부의 곡목으로 낙점된 작품은 베버의 클라리넷 협주곡 2번이었다. 처음 프로그램 구성을 보고서는 살짝 의아하기도 했다. 2부에서 연주되는 말러의 곡이 통상 100분이 넘어가는 가히 우주적 스케일의 대작(大作)임을 감안할 때, 다른 작품 없이 교향곡 3번만 연주되거나 아니면 십여 분 이내의 짧은 서곡 정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주가 끝난 후 꽤나 좋은 페어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19세기 초반 독일에서 작곡된 베버의 협주곡과 19세기 후반 보헤미아 출신의 오스트리아 작곡가 말러의 교향곡은 여러모로 비슷하면서도 달랐고, 시대적 흐름이 인지되다가도 장르적 차이가 부각되기도 했다.  
18세기를 지나오면서 수없이 개량되고 발전된 악기 클라리넷의 발달로 인하여 연주자들의 연주 기교와 주법은 화려해졌고 작곡가들이 쓸 수 있는 작곡기법은 늘어났으며 음악의 표현적 가능성은 무한대로 확장되었다. 그리고 이는 19세기 협주곡 작품에 고스란히 그 성과로 남았는데, 이날 연주된 베버의 클라리넷 협주곡 2번에서도 역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전형적인 협주곡의 3악장 구성(1악장: Allegro – 2악장: Romanza Andante – 3악장: Alla Polacca 폴란드 풍으로)으로 된 이 곡은 팡파르 리듬으로 된 오케스트라의 당당한 총주로 시작한다. 이어 클라리넷이 음역대를 넘나 들며 극적으로 등장하는데, 서정적인 2악장에서조차 비르투오소적 성격을 잃지 않으며 빠르고 화려한 음형으로 된 3악장으로 마무리되었다. 무엇보다 협연자 클라리네티스트 조성호의 연주는 기쁜 마음으로 그의 이름을 기억하게 만들었다. 현재 도쿄필하모닉오케스트라 종신수석으로 선발되어 활동하고 있는 이력답게, 조성호는 악기가 구사할 수 있는 다양한 주법과 화려한 테크닉으로 시종일관 무대를 누볐으며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협주곡의 진수를 보여주는 인상 깊은 무대였다. 
 
부천필의 말러 교향곡 3번에 박수를 보내다! 
 
어느 작품이건 연주하기 쉬운 곡이 어디 있겠느냐 만은, 많은 수의 연주자들과 고도의 테크닉을 요하는 말러의 교향곡들은 관현악단에게 하나의 큰 과제나 마찬가지이다. 교향곡이라는 장르를 “모든 기술적 수단을 강구하여 세계를 이루는 것”이라 여겼던 말러는 교향곡 작곡에 항상 심혈을 기울였고, 결과적으로 작품들은 각기 독자적인 하나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교향곡 제3번은 연주 시간이 통상 100분이 넘는 교향곡 사상 가장 긴 작품이라 할 수 있으며, 그 외에도 6개의 악장으로 되어 있다는 점, 각 악장에 문학적인 부제가 붙어 있다는 점에서 전통의 범주를 넘어선다.  
8대의 호른이 일제히 같은 음으로 된 팡파르로 시작되는 1악장, 부천필은 중후하면서도 어둡지 만은 않게 화려하면서도 긴장감 있는 연주를 들려주었다. 말러 자신의 설명에 따르면, 1악장은 그리스의 목신, 판(Pan)이 잠을 자다 깨고 여름이 행진해오는 것을 묘사했다고 한다. 따라서 이 악장에는 목가적인 부분, 코랄을 연상시키는 부분, 마치 장송행진곡 같은 트럼본 솔로 등 여러 악구들의 대비, 대조가 돋보인다. 작품에 대한 이해가 미비하다면, 이를 제대로 표현해낼 리 만무하다. 지휘자 박영민은 마치 이런 우려를 알고나 있었다는 듯이, 말러의 다양한 음악적 성격들 각각을 생생하게 살리면서 동시에 솜씨 좋게 한 악장의 완결된 음악 안에 표현해냈다.  
‘초원의 꽃들이 내게 말하는 것’이라는 부제가 붙은 2악장은 플루트와 오보에 등의 목관과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고음역 악기들의 주도에 트라이앵글, 탬버린, 글로켄슈필 등 높은 울림을 가진 타악기들이 가세하는 가벼운 텍스추어로 되어 있다. 이날 부천필은 최상의 컨디션으로 섬세하면서도 화사한 음색을 들려주었는데, 이로써 가벼우면서도 풍부한 음악적 질감을 구현해냈다. 3악장 ‘숲 속의 짐승들이 내게 말하는 것’에서 새소리는 목관악기로, 포효하는 맹수들은 금관악기로 표현된다. 말러가 예전에 작곡했던 가곡 <여름날의 변화>가 일부분 인용된 후, 무대 뒤에서 포스트 호른(호른의 축소판처럼 생긴 악기로 예전 유럽의 우편배달부가 우편의 도착을 알리던 나팔)이 몽롱한 음향으로 연주된다. 청중에게 소리의 공간적인 감각을 전달하려 했던 작곡가의 의도대로, 부천필 연주자들은 그렇게 무대 위와 무대 밖에서 음악을 입체적으로 만들어냈다.  
‘인간이 내게 말하는 것’이라는 부제가 붙은 4악장이 시작되고 알토 독창자가 나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발췌한 텍스트를 노래한다. 독창자로 나선 이아경은 일단 무엇보다 매력적인 음색으로 청중의 귀를 사로잡았다. 그는 교향곡에 나오는 인간의 목소리를 마치 하나의 악기처럼 다룬 말러의 의도를 정확히 잡아내 관현악 반주가 붙은 말러의 여타 가곡과 달리 과장하지 않고 기악적으로 노래하였으며, 심오하면서도 철학적인 텍스트의 성격을 깊고 어두운 울림으로 표현하였다. 여성합창단과 어린이합창단, 성당 종, 글로켄슈필 등이 등장하면서 분위기가 반전되는 5악장의 부제는 ‘천사가 내게 말하는 것’이다. <소년의 마술 뿔피리> 중 일부가 인용되는데, 텍스트가 바뀌면서 밝고 기쁨을 노래하듯 음악의 분위기 역시 전환된다. 솔리스트 이아경을 비롯하여 오케스트라는 이를 잘 잡아내 효과적으로 연주하였다.  
마지막 6악장은 ‘사랑이 내게 말하는 것’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었던 바, 고통과 절망을 겪고 비로소 평온함을 얻은 숭고한 사랑으로 향하는 기나긴 여정을 연상시킨다. 느리고 서정적인 6악장의 음악은 자칫 텐션을 잃고 지루해지거나 반대로 선율의 진행만 강조하다보면 그 자체의 매력을 잃을 수 있는데, 지휘자는 적절한 템포로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한 채 깊은 울림으로 감동을 선사하였다. 
 
부천필의 브랜드 가치, 스스로 증명하다! 
 
부천필에게 말러의 교향곡은 마치 한 식당을 대표하는 시그니처 메뉴와 같다. 시그니처 메뉴는 셰프가 오랫동안 맛을 연구하고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자신만만하게 내놓은 결과물로, 많은 사람들이 찾고 많은 이들로부터 호불호 없이 널리 사랑받는 음식을 말한다. 부천필 역시 오랜 기간 동안 말러의 작품에 매진한 시간들이 있었고, 바로 이 공들인 노력들로 인하여 많은 클래식 애호가들이 말러를 들으러 부천필을 찾는다. 1999년부터 2003년까지 말러 교향곡 전곡을 연주했던 부천필의 시도는 한국 최초라는 영광스러운 타이틀 외에도 말러의 음악세계를 완벽히 재현한 탁월한 곡 해석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국내 정상의 오케스트라의 위상을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을 뿐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말러 스페셜리스트로서 부천필의 인상을 각인시켰다(필자 역시, 대학 다니던 시절 부천필의 연주로 말러를 실황으로 처음 접했다).  
이날 말러 교향곡 연주는 1999년부터 현재까지 20년 동안 부천필의 고군분투가 쌓인 역사적 흔적이었고, 그렇기에 더욱 감동으로 다가왔다. 혹자는 연주 도중 몇 번 있었던 소위 음이탈을 지적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청중은 ‘틀린’ 음 하나를 듣는 게 아니라, 음악 전체를 온몸으로 경험한다. 부천필은 그간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화려하면서도 중후한, 깊은 어둠으로부터 빛이 뿜어져 나오는 말러의 음악을 정확히 이해하고 연주로 함께 하고 있다. 이러한 행보가 가능한 데에는 지휘자의 역할이 무엇보다 컸을 것이다. 화려한 수사보다 본질을 꿰뚫는 박영민의 음악 해석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말러로 시작하여 그 전후의 작곡가들로 이어지는 부천필의 지금까지의 여정(<쇼스타코비치 시리즈>, <바그너의 향연 시리즈>, 등)과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한다.  
 
 
글|강지영(음악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