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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후기

브람스와 함께 맞이 한 새해, 최고였다

  • 작성자*
  • 작성일2007-01-02
  • 조회수6811
한 해의 마지막 순간, 정확하게 말하면 밤 12시를 넘기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사람들의 물결에 떠밀려 서울 종로의 보신각 종치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고, 교회나 성당, 혹은 절에 함께 모여 신도들끼리 덕담을 나누기도 하고, 마음맞는 이들끼리 모여 술잔을 기울이며 카운트 다운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그 중에는 집에서 조용히 새해를 맞이하는 이들도 있다. 나는 늘 후자였다. 어떤 해에는 12시가 지나간 줄도 모른 적도 있었다.  
 
최근에는 음악회를 가는 이들도 있다. 그 기원이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아마도 한 두 지방자치단체에서 시작한 것이 널리 퍼진 듯 하다. 어제 나는 아내와 함께 부천필하모니의 제야 음악회에 갔다. 왜 굳이 섣달 그믐밤이라는 우리 말을 두고 제야라는 일본식 한자를 쓰는지 못마땅하지만, 그런 기분으로 연주를 들으면 나만 손해라 꾹 참았다.  
 
연주는 밤 10시에 시작되었다. 세상에나, 이 시간에 연주를 듣다니. 밤 12시가 되기도 전에 잠자리에 드는 내게는 큰 모험이었다. 다 김선욱씨 탓(?)이다. 숨길게 뭐 있는가? 아내는 김선욱씨의 광적인 팬이다. 왜 그에게 꽂혔는지 자세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그의 앞으로 연주일정을 모두 꽤차고는 죄다 예약을 하자고 성화다. 그가 협연하는 연주곡목이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황제라는걸 알고는 연주회에 오기 전 집에서 서너종류의 음반을 꺼내 대략 6번 이상을 들었을 정도다. 흠, 역시 굴다가 최곤걸.  
 
김선욱씨의 연주는 생각보다는 별로였다. 아내도 마찬가지 의견이었는데, 우리가 내린 결론은 열악한 연주회장의 시설 탓이었다. 사실 연주회장이라고 하기에는 차마. 어서 빨리 전용홀이 생기기를. 꽤 앞쪽 자리에 앉았는데도 불구하고, 피아노 소리가 홀에 퍼지지 못하고 무대에서만 맴돌고 있었다. 아니면 반주에 머물러야 할 오케스트라가 지나치게 강한 소리를 낸 탓인지도. 아무튼 과감한 터치만큼은 높이 사고 싶다.  
 
2부에서는 베토벤 교향곡 7번, 드보르작의 8번 교향곡, 그리고 브람스 1번 교향곡의 4악장이 연달아 연주되었다. 유명 교향곡의 4악장만 골라 듣는 재미가 쏠쏠했다. 특히 브람스는 대단했다. 역시 부천필이다라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금관악기와 타악기의 파이팅이 돋보였다. 역시나 앙코르 곡은 브람스 춤곡 5번이었고, 그렇게 새해가 밝았다.  
 
뒷이야기.  
 
송년도 아니고 신년도 아닌 섣달 그믐 음악회가 이젠 자리를 잡은 듯하다. 부천필 뿐만 아니라 서울과 인천에서도 비슷한 행사가 열린걸 보면 말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좋은 음악을 들으며 새해를 맞이하는건 멋진 일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주최측이나 관객 모두 조금은 더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부천시에서 준비한 듯한 쿠키와 커피가 그 한 예다. 1부가 끝나고 사람들이 서로 먼저 먹겠다고 달려드는 바람에 실랑이가 있었다. 나 또한 두어번 다가가다가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차라리 입장객 모두에게 봉지에 담아 전해주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연주회 때는 참고해 주세요.  
 
관객들의 매너는 대체로 훌륭했으나(악장과 악장사이에 박수를 치지 않었던게 그 대표적인 예이다), 휴대폰을 끄지 않고 연주를 듣는 이들이 꽤 많았다. 내 옆자리에 앉은 아저씨는 전화기를 끄라는 딸의 성화에도 문자메시지를 보내야 한다면서 끄지 않았다. 나는 정중하게 꺼달라고 부탁했지만, 그런 말을 하는 내 마음도 썩 편했던 건 아니다. 다들 기분내자고 온 음악회에서 싫은 소리를 주고 받을 필요가 있겠는가? 부디 연주회장에서는 휴대전화를 꺼주세요. 그건 상식이랍니다.  
 
한가지 더. 나는 인천에서 갔는데, 안내표지가 보이지 않아 꽤 헤맸다. 리필핏에 나와있는 약도도 왠지 어설펴 그 지도를 보고서는 찾기 어려웠다. 부천필의 명성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으니, 앞으로는 연주회장 주변에 보기 쉬운 푯말을 더 많이 설치해 주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미리 부탁드린 포스터를 받아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해드립니다. 우리 집 거실에 떡하니 붙여두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