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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후기

부천필의 우먼파워가 브람스를 넉다운시키다

  • 작성자*
  • 작성일2007-01-29
  • 조회수6982
올해 한국 클래식음악계의 화두는 브람스다. 이유는 간단하다. 서울시향이 1년 내내 브람스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그에 자극받는 탓일까? 브람스 음악을 꽤 자주 듣게 된다. 지난 1월 9일 서울시향이 브람스 교향곡 1번을 연주한 데 이어 1월 27일 부천필이 같은 곡을 연주했다. 과연 결과는? 
 
부천필 사운드의 특징은 박진감이다. 지휘자 임헌정씨의 공이 컸다. 오랜 시간 다져진 팀워크덕이다. 말러 연주도 그래서 가능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어김없이 말러연주(교향곡 6번)가 예정되어 있다. 일찌감치 예매를 하고 기대감에 젖어 있다.  
 
그렇다면 브람스는? 일단 가는 길이 낯설다. 부천시청 대강당이다. 시민회관의 시설 또한 전문공연장으로 문제가 많은데 대강당이라니? 아마도 신년음악회의 특징상 많은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한 탓이리라. 하지만 부천시민이 아닌 내게는 별 혜택이 없다. 도리어 지하철역에서 더 멀다.  
 
바그너의 <로엔그린 서곡>으로 연주를 시작한다. 마지막에 애교처럼 덧붙인 결혼행진곡변주가 흥겹다. 이어서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겨울에 듣기 딱 좋은 곡이다. 하지만 전진주의 바이올린 협연은 시종 불안했다. 불행하게도(?) 무대 바로 앞에서 보는 바람에 연주자의 긴장이 바로 느껴졌다. 물론 그래서 더 연주가 좋아진다면 상관은 없겠지만. 냉정하게 말해 별로였다. 집에 돌아와 깉은 곡을 연주한 강동석, 오이스트라흐, 하이페츠의 음반을 들었다. 함께 한 연주단과 연주시기, 녹음기술의 차이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강동석이 가장 좋았다. 사뿐사뿐 얼음판위를 잘도 지치더군.  
 
아무튼 상관없다. 정작 듣고 싶은건 브람스 교향곡 1번이었으니까. 서울시향의 연주에서 뜻밖에 감동을 받았던지라 부천필은 과연 어떨지 자못 궁금했다. 게다가 이번엔 무대에서 네번째 정가운데 좌석이니 연주자의 모습을 똑똑히 볼 수있어 긴장감까지 느껴졌다. 서울시향 연주를 외야 맨 꼭대기 자리에서 들었다면 이번엔 선수들의 숨결까지 고스란히 느껴지는 홈베이스 바짝 뒤 본부석좌석에 자리잡은 셈이다.  
 
1악장, 2악장, 3악장. 좋다. 그런데 이상하다 아주 좋지는 않다. 그래, 4악장이 하이라이트니까 다 만회할 수 있을거야. 하지만 관객의 졸음을 일시에 깨우는 주제 선율이 흘러나오는데도 나는 감동받지 못한다. 연주홀의 문제인가? 저녁도 먹지 못한 채 힘들게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30분 이상을 걸어온 탓에 지친 건가? 아니다. 그럴 때일수록 멋진 음악은 허기진 내 배를 채우는데. 이상하다. 정말 이상하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연주가 끝이 났다.  
 
앙코르 곡까지 다 듣고 열심히 박수까지 친 다음 부천시청앞 공원의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셨다. 그 때 알았다. 유레카. 강약조절의 실패다. 마구 밀어붙이기만 했다는 말이다.  
 
예를 들겠다. 4악장의 주제선율을 한번 떠올려 보시라. 플륫의 또렷한 선율이 이제 드디어 이 음악의 핵심연주가 시작되는걸 알린다. 그리고 나서 바이올린이 이어진다. 따다아아다아아따아안. 유명한 선율이다. 뒤이어 첼로로 바톤 터치. 같은 선율이지만 바이올린보다 훨씬 낮은 저음으로 속삭인 다음 뒤로 물러나면서 관악기와 타악기가 불을 뿜는다.  
 
이 장면을 그림으로 그린다면 아마 넘실대는 파도이리라. 즉 저 멀리 바다 가운데에서 조짐을 보이던 물결이 서서히 왼쪽, 오른쪽을 휘감으면서 전체로 퍼져나가는. 서울시향 연주가 꼭 이랬다. 하지만 부천필은 그러지 못했다. 악기가 따로 놀았다. 각각 강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 뿐 넘실대지는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부천필이 서울시향의 연주보다 못하다는 말은 아니다. 누군가는 부천필의 브람스 연주를 더 좋아할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칼날처럼 선율들이 살아있는. 다만 브람스 교향곡의 특징인 깊은 계곡에서 울려나오는 듯한 과묵하지만 부드러운 선율을 좋아하는 내게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말이다.  
 
뒷이야기. 
 
4악장의 주제선율을 지나 맹렬하게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때 깜짝 놀랄만한 일이 벌어졌다. 지휘자 임헌정이 지휘봉을 놓친 것이다. 좁은 무대에 지휘대가 돌출되어 있어 처음부터 불안불안했는데 결국 사고가 터졌다. 임헌정씨는 어떤 내색도 하지 않고 이후 두 손으로만 지휘를 했는데, 그게 또 그렇게 멋져보일 수가 없었다. 역시 프로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왜 강약조절이 안될까라는 생각을 하던 차에 우연히 무대를 보니 바이올린과 첼로 연주자들이 죄다 여자들이었다. 북치는 이 또한. 물론 강약조절과 연주자가 여성인 것 사이에는 어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