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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용어]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심포니오케스트라

  • 작성일2009-08-03
  • 조회수21089
얼마전 네이버 지식 검색 사이트에다가 필하모닉을 입력했습니다. 친절하게도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차이?라는 구체적인 질문이 옵션에 추가가 되어 있더군요. 반가와서 클릭을 하고 난 다음의 황당함이란. 검색된 두 개의 답변은 대충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답변 1: 오케스트라 구성상의 차이는 없지만, 굳이 따지자면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이름 그대로 교향곡(Symphony)만 연주하는 악단이고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관현악 소품이나 협주곡을 연주하는 악단입니다.  
 
답변 2: 답변 1도 정확하지만 부연설명하자면 요즘은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도 규모가 커져서 꼭 소품만 연주하는 건 아닙니다. 이 두가지 답변이 도움지수 별 네 개 반을 받았더군요(참고로 네이버 검색 도움 지수는 별 다섯 개가 만점이랍니다).  
 
네. 일단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현대에 이르러 크게 차이가 없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오케스트라 가운데는 특히 필하모닉이란 명칭을 붙이고 있는 단체가 많지요. 그러나 처음부터 같은 내용이었다면 뭐하러 심포니와 필하모닉으로 이름을 제각각 붙여놓았을까요? 네. 사실 그 사이에는 엄연한 구분이 존재한답니다. 의미상 차이부터 따지자면, 일단 심포니(Symphony)는 본래 그리스어 sinfonia에서 비롯된 것으로 함께 내는 소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 필하모닉(philharmonic)은 필하모니아(philharmonia)에서 비롯된 형용사로, harmonia에 사랑을 의미하는 phil이 붙은 합성어입니다. 즉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의 모임이란 뜻이지요. 의미적으로 볼 때 둘 다 오케스트라에 붙이기에 걸맞는 명칭이지요? 필하모닉이나 심포니란 명칭은 모두 함께 모여 연주한다는 의미에서 비롯된 것일 뿐 연주하는 작품이 교향곡이냐 협주곡이냐 관현악 소품이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물론 단원 수나 규모하고도 아무런 관련이 없고요.  
 
150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말러며 브루크너의 초대형 교향곡들을 초연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것입니다. 자, 그럼 어느 오케스트라에는 필하모닉을, 어느 오케스트라에는 심포니란 명칭이 사용되었을까요? 이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데요, 가장 유력한 설은 필하모닉은 개개인의 후원을 모아서 설립한 오케스트라에, 심포니는 회사나 기관 등 특정 단체가 재정을 담당할 경우 붙여졌다는 것입니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후원하는 개인들이란 왕정시절에는 귀족들, 산업혁명 이후에는 막대한 부를 축적한 부르주아들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반면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지방도시, 작은 관공업체 등에서 조직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금은 그 구분이 무의미해졌지만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원칙적으로 설립취지에 있어서나, 사회적인 평판에 있어서나, 규모에 있어서나, 연주 기량에 있어서나 모두 그 격이 달랐습니다. 위의 답변 2와는 정반대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한 수 위였죠. 한 도시 안에 수많은 오케스트라가 존재하더라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입장권이 다른 오케스트라에 비해 월등히 비쌌고 협연자도 최상급의 거장들 가운데에서만 선별했으며 거장들의 작품 초연을 도맡아 했습니다. 청중들 또한 왕정시절에는 귀족들로, 산업혁명 이후에는 부르주아들로 채워졌습니다. 그들은 상당히 배타적인 회원 제도를 운영했는데, 후원금을 내는 대신 티켓을 오픈하지 않고 회원들 사이에서만 구입이 가능토록 했습니다. 서민층은 아예 연주회 티켓을 구할 권리를 박탈당한 셈이죠. 마치 왕이 궁정 오케스트라를 독점하던 것처럼 말이죠.  
 
반면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서민 사회를 대상으로 한 악단이었습니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상류층의 여흥을 위해 조직된 악단이었다면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중산층 이하 서민들의 복지 향상을 위해 조직된 악단이었던 셈입니다. 이들 연주회의 티켓은 필하모닉보다 월등히 저렴했습니다. 프로그램 또한 새로운 작품을 시도하는 대신 서민들의 귀에 익은 전통적인 프로그램들로 이루어졌습니다. 자, 이쯤 되면 빈 필하모닉과 빈 심포니, 런던 필하모닉과 런던 심포니의 차이를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적 기원이 그렇다는 것이지, 이런 사회적인 차등이 아직까지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서양에 비해 얼마 되지 않는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 관현악단들이 필하모닉이나 심포니의 명칭을 붙이는 것 또한 이런 역사적인 유래와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 명칭의 명분이 분명하던 시절에 창단된, 오랜 전통의 오케스트라들조차 지금은 구분이 모호해 졌으니까요. 필하모닉이나 심포니나 지금은 모두 사회적으로 평등하며 둘다 똑같이 재정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으니까요(?). 연주 기량은 말할 것도 없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