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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낭만주의 거장 - 음악평론가 슈만

  • 작성일2006-11-06
  • 조회수9732
[최은규 음악에세이] 낭만주의 거장 - 음악평론가 슈만 
 
올해 기념해야할 작곡가는 모차르트뿐만이 아니다.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에 밀려 제대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로베르트 슈만 역시 올해 서거 150주년을 맞이한 작곡가다.  
낭만주의음악의 거장 로베르트 슈만은 ‘트로이메라이’의 작곡가로서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본래 명 피아니스트가 되려는 야심이 있었지만 무리한 연습으로 인한 손가락의 마비증세로 피아니스트의 꿈을 포기하고, 작곡가로 활동하면서 수많은 피아노 명곡과 주옥같은 예술가곡, 실내악, 관현악곡과 오라토리오 등 뛰어난 작품을 많이 남겼다. 부천필은 이미 봄시즌부터 ‘슈만 프로젝트’라는 타이틀로 8회에 걸친 음악회를 통해 슈만의 교향곡과 아름다운 실내악곡들을 연주하며 슈만의 해를 기념한 바 있다. 
슈만의 해가 가기 전에 기억해야할 일이 하나 더 있다. 음악평론가로서 무명의 천재 음악가들을 발굴해내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해왔던 슈만의 업적이다. 슈만은 <음악신보>라는 음악전문지의 필자로 활동하면서 잘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음악작품들을 소개하고 널리 전파하는 데 힘썼고, 그의 노력으로 인해 잊혀질 뻔 했던 수많은 걸작들이 오늘날까지 널리 전해질 수 있었다.  
슈만이 아니었다면 천재 음악가 슈베르트가 남기고 간 아름다운 음악은 몇 백 년 동안 서랍 속에서 잠자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슈만은 비엔나에서 슈베르트의 형 페르디난트 슈베르트를 방문해 슈베르트의 수많은 유작 악보들을 발견하고는 <음악신보>에 출판되지 않은 프란츠 슈베르트의 오페라와 교향곡, 미사곡 등을 연주할 음악가를 모집한다는 내용의 광고를 실었다. 슈만의 노력은 악보 출판과 연주로 이어졌고 슈베르트의 걸작들은 그의 손에 의해 세상 빛을 보게 되었다. 
슈만이 아니었다면 브람스의 음악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 힘들었을 것이다. 1853년에 브람스를 알게 된 슈만이 ‘새로운 길’이라는 제목의 글로 무명의 브람스를 독일 음악계를 구할 ‘메시아’로 소개한 이후, 브람스는 일약 독일 음악계에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슈만은 작곡가로서뿐 아니라 음악평론가로서 알려지지 않은 걸작과 무명의 천재음악가들을 소개하는 등 다른 음악가들을 돕는 데 헌신해왔지만, 정작 그 자신은 평생 정신질환으로 고통 받았다. 젊은 시절부터 신경쇠약 증세를 앓아온 그는 말년에 정신장애가 악화되어 라인강에서 투신자살을 기도했고, 이후 슈만은 본 부근에 있는 엔데니히 정신병원으로 이송되어 치료를 받았으나 완쾌되지 못한 채 1856년에 사망했다.  
 
최은규(부천필 바이올린 부수석, 기획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대원문화재단 사무국장으로 재직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