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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쇼스타코비치의 암호

  • 작성일2006-11-06
  • 조회수9238
[최은규 음악에세이] 쇼스타코비치의 암호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는 러시아의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역시 2006년이 가기 전에 기념해야할 작곡가다.  
쇼스타코비치는 20세기 소련의 정치상황으로 인해 자신의 창조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없었던 비운의 예술가였다. 그는 1930년을 전후해서 일어난 소련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운동의 희생자로서, 끊임없는 당의 간섭으로 창작 욕구를 제한 받아야 했다.  
1930년대 초에 스탈린이 정권을 잡게 되자 소련의 권력자들은 소련에서 행해지는 모든 문화, 예술 행위를 통제하고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입각한 예술작품만을 생산할 것을 요구했다. 쇼스타코비치 역시 소련 정부의 새로운 요청에 맞추어 자신의 음악 스타일을 수정하며 당의 방침에 맞추어 자신의 의지를 꺾어야하는 비참한 생활을 해왔다.  
예술가에게 있어 자유로운 창조정신의 억압은 최대의 고문이었으리라. 때때로 터져 나오는 예술가 본연의 정신과 그 때 마다 가해지는 억압과 통제와 강요된 비판 속에서 쇼스타코비치는 수많은 번민과 좌절을 맛보았겠지만 그의 순수한 예술정신은 결코 시들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도 해방의 날은 왔다.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한 것이다. 바로 그 해, 쇼스타코비치는 그의 열 번째 교향곡을 놀랍도록 빠른 속도로 완성해내면서 억압됐던 창조욕구를 마음껏 분출했다.  
스탈린 사후에 발표된 최초의 교향곡! 쇼스타코비치는 이 특별한 교향곡에 그 자신만의 언어로 자유와 해방을 외쳤다. 자신의 이름 ‘드미트리’(Dmitri)의 첫 알파벳인 ‘D’와 자신의 성(姓) ‘쇼스타코비치’(Schostakowitsch)의 첫 세 글자인 ‘SCH’를 연결해 ‘DSCH’라는 조합을 만들고 이 주제를 교향곡 10번의 곳곳에 사용했던 것이다. ‘DSCH’를 계이름으로 바꾸면 ‘레, 미 플랫, 도, 시’가 되는데, 쇼스타코비치는 자신의 이름으로 만든 이 마술과도 같은 주제를 집요하게 반복하며, 억압에서 풀려난 진정한 예술가 정신의 회복을 소리 높여 외쳤다.  
당의 감시 속에서 한시도 편할 날이 없었던 비운의 예술가 쇼스타코비치. 그러나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그는 자신만의 특별한 음악언어로 그 고귀한 정신을 지켜냈고, 예술적 자유를 갈망했다. 
10월이 가기 전,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0번을 들으며 작품 속에 숨어 있는 비밀스런 암호를 찾아보자. 어려운 여건에서도 자신의 음악을 지켜 낸 한 예술가의 절규는 우리에게 많은 깨달음을 던져 줄 것이다. 
 
최은규(부천필 바이올린 부수석, 기획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대원문화재단 사무국장으로 재직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