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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가족음악회의 원조

  • 작성일2007-02-26
  • 조회수8970
[최은규의 음악에세이]가족음악회의 원조  
 
지난 15일 부천시청대강당에서는 부천필의 가족음악회가 열렸다. 부천필 코러스 단원인 정재령의 해설로 클래식 음악의 재미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던 뜻 깊은 시간이었다. 연주된 곡도 로시니의 ‘비단사다리’ 서곡, 그리그의 페르귄트 모음곡, 베토벤의 전원교향곡 등, 흥미로운 이야기나 자연 묘사를 주제로 한 작품들로 구성되어 클래식 음악을 처음 듣는 이들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음악회였을 뿐만 아니라, 5세 이상의 어린이들도 입장이 가능해 온 가족이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처럼 어린이들을 동반한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클래식 음악회를 흔히 ‘가족음악회’ 또는 ‘청소년음악회’라 부른다. 대개 1시간가량의 짧은 프로그램으로 구성되고 지휘자가 직접 곡 해설을 하거나 해설자가 따로 나오기도 하는데, 이런 유형의 음악회는 정통 클래식 음악회와 음악 교육 프로그램의 중간 쯤 되는 가벼운 성격의 음악회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형식의 가족음악회의 원조는 뉴욕필의 ‘청소년음악회’(Young Peoples Concert)라 하겠다. 20세기 거장 지휘자 중 한 사람인 레너드 번스타인이 뉴욕 필하모닉에 재직할 당시 기획해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던 이 프로그램은 1958년 TV시리즈로 제작되기도 해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번스타인은 청소년 음악회 시리즈에서 “음악의 의미란 무엇인가?” “미국 음악이란 무엇인가?” “교향곡이란 무엇인가?” 등의 쉽지 않은 주제를 명쾌하고 재미있게 풀어내 수많은 어린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지휘자가 직접 해설을 하며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 음악회를 주관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일이었다. 주로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이어진 관현악의 전통이 베를린 필하모닉의 카라얀으로 이어지면서 근엄하고 독재적인 지휘자 상이 정착되고 있었던 그 당시에 미국 출신의 젊은 지휘자 번스타인의 민주적이고 대중 친화적인 접근은 낯선 것이었다. 그러나 번스타인은 음악 역사가 짧은 미국에서는 대중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공원에서의 무료 음악회나 청소년들을 위한 해설 음악회, TV 출연과 레코딩 등을 활성화하여 대중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갔고 그것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서양 클래식 음악을 수용하고 발전시킨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에서도 번스타인 식의 해설음악회와 가족음악회는 매우 효과적인 접근 방식이다. 그래서 최근 들어 청소년을 위한 청소년음악회나 주부들을 위한 11시 콘서트 등이 활성화되면서 국내 음악계에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과연 청소년음악회나 11시콘서트에서 단 악장의 짧은 곡들을 듣는 데 익숙해진 관객들이 교향곡과 협주곡 전곡이 연주되는 부천필 정기연주회의 관객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좀 다르다. 번스타인의 청소년음악회의 예에서 보았듯이 부천필 가족음악회와 같은 시도들이 진정으로 클래식 인구의 저변확대로 이어지려면, 단순히 듣기 좋고 짧은 음악만을 반복해서 들려주기보다는 길고 진지한 음악의 감동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가족음악회 같은 가벼운 음악회에서도 정통성을 잃지 않고 클래식음악의 본질에 충실한 부천필의 일관된 자세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필자는 부천필 바이올린 부수석, 기획 팀장을 역임 했으며 현재 대원문화재단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