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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봄을 노래한 음악

  • 작성일2007-04-24
  • 조회수8283
[최은규의 음악 에세이] 
봄을 노래한 음악
 
 
지난주부터 개나리와 벚꽃이 피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봄기운이 완연하다. 길고 지루한 겨울이 가고 따스한 햇살과 꽃향기가 피어오르는 봄이 되면 누구나 가슴이 설레지만, 특히 뛰어난 예술가들에게는 더욱 강한 영감을 주었다. 그런 까닭인지 봄을 주제로 하는 클래식 음악은 유난히 많다.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는 비발디의 바이올린협주곡 <사계> 중 ‘봄’을 꼽을 수 있고, 그밖에도 베토벤의 바이올린소나타 제5번 ‘봄’, 요한 슈트라우스의 ‘봄의 소리 왈츠’ 슈만의 교향곡 제1번 ‘봄’ 등이 있다. 모두 봄의 아름다움과 따스함, 찬란함이 느껴지는 명곡들이다.  
그러나 봄을 노래한 음악이 모두 다 이처럼 명랑하고 밝기만 한 것은 아니다. 20세기 리듬의 혁명을 몰고 온 스트라빈스키의 발레 ‘봄의 제전’은 아마도 봄을 노래한 음악 가운데서 가장 과격한 작품일 것이다. 봄을 맞이하는 이교도의 의식에 영감을 받은 스트라빈스키는 봄의 원시적인 생명력을 강렬한 리듬으로 표현했다. 스트라빈스키는 이 작품이 탄생하게 된 배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느 날 나는 뜻하지 않게 이교도들의 거대한 희생의 제사 장면이 내 앞에 펼쳐지는 환영을 보았다. 늙은 사제들이 원을 그리며 빙 둘러 앉아있는 가운데, 한 젊은 처녀가 희생의 춤을 추고 있었다. 그녀는 봄의 신을 달래기 위해 바쳐지는 제물이다. 봄의 희생 제사 장면에서 나는 끊임없이 자신을 새롭게 변화시키며 용솟음치는 자연의 무한한 힘을 재현하고 싶었다. 서주에서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통해 모든 불안정한 정신을 압도하는 공포를 보여주고 싶었다.” 
봄의 탄생과 대지를 향한 찬양 의식, 그리고 처녀의 희생 제사 장면, 그리고 무엇보다도 불협화음과 강렬한 리듬으로 가득한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은 당시 청중들에게는 매우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이 작품이 발레 공연으로 1913년 5월 29일 파리의 샹젤리제 극장에 올려졌을 때 공연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 곡을 들은 청중들은 상식을 벗어난 스트라빈스키의 음악과 안무에 어리둥절해 하다가 찬성파와 반대파로 패를 갈라 서로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주먹 싸움도 서슴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봄의 제전’의 초연은 ‘20세기의 가장 큰 음악적 스캔들’로 기록되었다. 하지만 초연 당시의 소동은 오래 지나지 않아 금방 잊혀 졌고,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은 현대음악의 이정표를 마련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봄의 제전’ 이후 그 누구도 ‘봄의 제전’과 비슷한 정도의 대곡을 작곡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봄의 제전’에 폭발적인 영감은 너무나도 강렬한 것이어서 더 이상의 표현은 불가능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강렬하고 역동적인 봄의 생명력을 느껴보고 싶다면 이 봄이 가기 전에 20세기 공연 사상 최대의 스캔들을 남겼던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꼭 들어보자. 
 
필자는 부천필 바이올린 부수석, 기획 팀장을 역임 했으며 현재 대원문화재단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