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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부천필 제108회 정기연주회 ‘북구의 거장들’

  • 작성일2007-06-08
  • 조회수7214
[최은규의 음악에세이] 
부천필 제108회 정기연주회 ‘북구의 거장들’
 
 
 
지난 20일 부천시민회관 대공연장에서 있었던 부천필의 108회 정기연주회는 평소 실황연주로 접하기 힘들었던 북유럽 작곡가들의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할 수 있었던 값진 시간이었다. 그 날 연주회의 주인공은 물론 국내 최고의 기량을 자랑하는 오케스트라 ‘부천필’이었지만, 나흘간의 짧은 연습기간 동안 그 능력을 최대로 이끌 수 있었던 지휘자 김진의 탁월한 리더십이 있었기에 부천필의 연주는 더욱 빛났다. 여기에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브라질 출신의 피아니스트 에드송 엘리아스의 협연이 곁들여져, 그 날 음악회는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협연자의 3박자가 잘 맞아떨어진 최고의 공연이었다.  
음악회 프로그램은 올해로 서거 50주년을 맞이한 시벨리우스의 대표작 ‘핀란디아’를 시작으로, 노르웨이 작곡가인 그리그의 유명한 피아노협주곡 a단조, 그리고 덴마크 출신의 작곡가 칼 닐슨의 교향곡 제2번으로 이어졌다. 주로 베토벤과 브람스 등 독일, 오스트리아 작곡가의 작품들이 클래식 공연계에서 주류를 이루고 있는 국내 현실에 비추어 보았을 때 그 날 공연은 좀처럼 실황으로 듣기 힘든 작품들만으로 꾸며져 청중에게는 다소 어려운 프로그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음악회에 참석한 청중은 이 낯설고도 아름다운 북구 음악의 매력에 깊이 빠져들었다.  
부천필의 객원 지휘를 맡은 지휘자 김진은 미국 보스턴의 힝햄심포니오케스트라를 10년째 이끌고 있는 30대 후반의 젊은 지휘자로 11세 때 미국으로 이민을 한 이후 피아니스트와 성악가, 지휘자로서 다재다능함을 과시하고 있는 뛰어난 음악인이다. 주로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그동안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미 네 차례에 걸쳐 부천필을 객원지휘하면서 그 탁월한 음악성을 입증한 바 있다. 특히 이번 공연의 메인 프로그램으로 연주한 닐슨의 교향곡 제2번 ‘네 가지 기질’은 그의 대표 레퍼토리로 ‘다혈질’과 ‘점액질’ 등 인간의 네 가지 기질을 음악으로 표현하고 있어 매우 흥미로운 작품이다.  
지휘자 김진은 특유의 뛰어난 리듬감과 친화력을 바탕으로 북유럽의 낯선 음악을 ‘추상적이고 고상한 예술’로서가 아니라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예술’로 구체화시켰다. 그것이 바로 그가 청중과 가까이 소통할 수 있는 좋은 지휘자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는 음악적 커뮤니케이션의 달인이었다. 자신의 일방적인 음악적 스타일을 강요하지 않고 청중과 연주자들과 음악으로 대화하고 조율하면서 음악을 만들어갔다. 그 탁월한 커뮤니케이션 능력 덕분에 북유럽의 낯설고 생소한 음악은 연주자와 청중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음악으로 거듭났다.  
그리그의 피아노협주곡을 협연한 피아니스트 에드송 엘리아스 역시 섬세한 감성을 바탕으로 한 호소력 있는 연주로 청중과의 강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특히 2악장에서 믿을 수 없을 만큼 서정적인 연주를 들려주며 피아노라는 악기로 얼마나 아름답게 노래할 수 있는지를 입증해보였다. 협주곡 연주가 끝난 후 열광하는 청중을 위해 그는 앙코르로 빌라로보스의 피아노곡을 들려주며 감사를 표시했다.  
이번 부천필의 정기연주회를 계기로 일반인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프로그램이더라도 예술성이 뛰어나고 연주가 훌륭하다면 누구에게나 호소력 있게 다가갈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보았을 때 이제는 국내 오케스트라들도 귀에 익은 대중적 레퍼토리에만 안주하지 말고 새로운 레퍼토리를 개발하는 노력을 기울여야할 것이다. 청중은 생각보다 새롭고 참신한 음악에 목말라 있다. 
 
필자는 부천필 바이올린 부수석, 기획 팀장을 역임 했으며 현재 대원문화재단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