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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부천필 109회 정기연주회 ‘러시아 음악기행’

  • 작성일2007-07-06
  • 조회수6623
[최은규의 음악에세이] 
부천필 109회 정기연주회 ‘러시아 음악기행’
 
 
 
지난 16일 저녁, 부천시민회관 대공연장은 러시아음악 열기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러시아음악 기행’이라는 제목으로 펼쳐진 부천필의 109회 정기연주회에서 부천시민들은 화려하고 열정적인 러시아음악에 매료됐다. 
 
특별히 이번 공연은 독일 다름슈타트 오페라극장 예술감독 스테판 블루니에의 지휘와 한국 음악계의 젊은 세대를 이끌어가고 있는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협연으로 이루어져 기대감이 높았던 탓인지, 부천시민회관에는 일찍부터 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이 돋보이는 림스키 코스사코프의 ‘스페인기상곡’이 첫 곡으로 연주됐다. 초반에는 빠른 템포로 인해 다소 앙상블이 흐트러지기도 했으나, 부천필 단원들은 뛰어난 개인기를 발휘해 이 곡을 무리 없이 소화해냈고, 블루니에의 활기 넘치는 지휘로 관객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첫 곡이 끝난 후 드디어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무대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미 지난 7일 금호아트홀에서 심오한 음악성을 담은 슈베르트와 슈만의 작품을 훌륭하게 연주해 호평을 받은 손열음은 이번 부천필과의 협연 곡목으로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을 골랐다.  
 
‘라 캄파넬라’(종)라는 이름의 주제에 바탕을 둔 24개의 변주곡은 그녀의 손끝에서 각양각색의 다채로운 음악으로 피어올랐다. 피아니스트의 손가락은 마치 물 만난 물고기처럼 생동감 넘치는 터치와 탄력 있는 리듬감을 선보였고 그 자리의 모든 청중은 그녀의 연주에 깊이 빨려 들어갔다.  
시민회관의 열악한 음향 여건 상 피아노의 섬세한 터치가 뚜렷하게 전달되지 못한 것이 흠이었지만, 손열음의 피아노 연주와 블루니에가 이끄는 부천필의 연주는 라흐마니노프 음악에 담긴 우수와 격정을 잘 표현해냈다. 다만 가족 단위 관객들이 많아 다소 어수선한 가운데 연주가 진행된 것은 옥의 티였다. 연주가 끝나자 손열음은 환호하는 청중을 위해 쇼팽의 왈츠 제7번을 앙코르 연주해 갈채를 받았다.  
 
휴식 후 연주된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제5번에서는 지휘자 블루니에의 생기 넘치는 지휘로 인해 2악장의 ‘유머’와 4악장의 ‘승리’가 더욱 부각되었다. 때때로 집중력이 흩어져 앙상블이 어긋나거나 관악 섹션의 실수도 일부 있었으나, 전체적으로 ‘고통을 극복하고 승리를 쟁취하는’ 이 교향곡의 구도가 잘 드러난 연주였다.  
부천필의 109회 정기연주회의 부천공연은 실력파 지휘자와 뛰어난 협연자, 그리고 정상급 오케스트라가 만들어 낸 훌륭한 공연이었지만, 좋은 공연이었던 만큼 시민회관의 열악한 음향에 대한 아쉬움은 더욱 컸다. 특히 타악기가 많이 편성된 연주곡목 탓인지 시민회관의 음향문제의 심각성이 더욱 잘 드러났다. 때때로 오케스트라가 큰 소리로 포효하기라도 하면 어지럽게 울리는 각종 잡음 때문에 듣기 괴로울 정도였고, 피아니스트가 혼신의 힘을 다해 부드럽고 섬세하게 표현해낸 피아노 소리는 객석 끝까지 전달되기도 전에 급격히 스러져 버려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현재 부천에 대편성 오케스트라 연주가 가능한 공연장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는 앞으로도 몇 년간은 부천필의 공연이 시민회관에서 이루어질 수 밖에 없겠지만, 전국의 음악애호가들을 부천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훌륭한 공연에 걸 맞는 훌륭한 콘서트홀이 지어져야 할 것이다.  
 
필자는 부천필 바이올린 부수석, 기획 팀장을 역임 했으며 현재 대원문화재단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부천포커스 2007-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