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연리뷰

불멸의 레퀴엠

  • 작성일2007-07-06
  • 조회수7140
[최은규의 음악에세이] 
불멸의 레퀴엠
 
 
 
6.25사변 57주년 기념일인 지난 25일, 부천에서 특별한 연주회가 열렸다. 부천필 코러스가 위대한 음악가들이 남긴 걸작 레퀴엠 여섯 편의 하이라이트를 모아 호국영령들을 위로하는 음악회를 마련한 것이다.  
 
‘레퀴엠’은 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하는 가톨릭 미사곡으로 ‘진혼곡’(鎭魂曲)이라고도 부른다. 본래 ‘레퀴엠’(Requiem)이란 말은 죽은 자를 위한 미사의 입당송 중 ‘주여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옵소서’의 첫머리의 단어에서 온 것인데, 이것이 죽은 자를 위한 미사곡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변형된 것이다.  
 
진혼미사의 전례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약간씩 변화를 겪어 왔기 때문에 진혼미사곡의 체계도 작곡가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일반적인 미사 전례 외에 ‘심판의 날’과 ‘나를 해방시켜주소서’, ‘천국에서’ 등의 부분이 따로 추가되기도 한다.  
가장 유명한 레퀴엠은 역시 천재 작곡가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나던 1791년에 작곡한 레퀴엠이지만, 베를리오즈와 브람스, 베르디, 포레 등 많은 작곡가들이 다채로운 형식의 레퀴엠을 남겼다.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검은 옷을 입은 정체불명의 남자가 모차르트를 찾아와 작품이나 작곡 조건에 대해 비밀에 붙인 채 레퀴엠 작곡을 의뢰했다는 일화로 더욱 유명하다. 그 때 모차르트는 이 작품이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될 것임을 운명처럼 직감하고 마치 그 자신의 장송곡을 작곡하듯 혼신의 힘을 기울여 레퀴엠을 작곡했다고 전해진다.  
후에 그 남자는 발제크 백작의 하인으로 밝혀졌다. 발제크 백작은 뛰어난 작곡가 모차르트의 작품을 비밀리에 의뢰해 자신의 이름으로 연주하려 했던 것이다.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미완성으로 끝났고 후에 모차르트의 제자 쥐스마이어에 의해 완성되었는데, 영혼을 울리는 그 심오한 표현과 아름다움으로 인해 오늘날 가장 널리 연주되는 레퀴엠으로 손꼽힌다.  
 
이탈리아 오페라의 대가 베르디의 레퀴엠은 좀 더 규모가 크다. 전체 여섯 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진 이 레퀴엠 중에서 ‘심판의 날’의 역동적이고 드라마틱한 음악이 가장 유명해 간혹 CF광고에 사용되기도 한다.  
‘심판의 날’의 격렬함으로 유명한 베르디의 레퀴엠에 비해 프랑스 작곡가 포레의 레퀴엠은 마치 예술가곡과도 같은 깨끗하고 섬세한 아름다움을 지닌 걸작이다. 작곡가 포레는 자신의 진혼미사곡을 통해 ‘심판’과 ‘지옥’의 이미지보다는 ‘안식’과 ‘천국’의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심판의 날’ 대신 바리톤이 부르는 ‘나를 해방시켜주소서’와 보이 소프라노가 부르는 ‘피에 예수’를 넣어 맑고 순수한 독특한 분위기의 레퀴엠을 남겼다.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은 아예 미사 전례를 따르지 않고 독일어로 번역된 성서의 일부를 텍스트로 사용한 전혀 다른 스타일의 작품이다. 그의 레퀴엠은 심오하고 진지한 성격의 전형적인 독일 음악의 특성을 보여준다.  
호국보훈의 달 6월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지만, 마음이 편안해지는 레퀴엠과 함께 호국영령들을 생각하면서 2007년 상반기를 차분하게 정리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필자는 부천필 바이올린 부수석, 기획 팀장을 역임 했으며 현재 대원문화재단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부천포커스 2007-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