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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말러와 브루크너

  • 작성일2007-07-06
  • 조회수7429
[최은규의 음악 에세이] 
말러와 브루크너
 
 
 
부천필은 올해 말러에 이어 브루크너 전곡 연주에 도전하는 음악적인 전환기를 맞이한다. 7월20일 부천필의 ‘말러 인 부천’ 공연에 이어 11월에는 브루크너 전곡 연주 시리즈의 그 첫 번째 공연이 열리게 된다.  
“브루크너는 이미 신을 찾았고, 말러는 끊임없이 신을 찾고 있다”는 브루노 발터의 말처럼 말러와 브루크너의 음악은 매우 다르지만 두 사람은 개인적으로 좋은 친구 사이였다고 전해진다. 브루크너는 말러보다 36년 연상이었지만 워낙 천진난만한 성품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보다 한참 어린 말러와 세대 차를 뛰어넘는 우정을 나눌 수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이 만난 것은 1877년 12월 16일. 그날 브루크너는 자신의 교향곡 제3번의 초연이 참담한 실패로 막을 내리는 모습을 보며 쓰라린 패배감을 맛보아야 했다. 당시 바그너의 반대파인 브람스 편에 서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한슬리크의 일파들이 기라성같이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바그너에게 헌정된 브루크너의 교향곡 3번초연이 순조롭게 진행될 리 없었다. 연주가 끝날 무렵에는 객석에 10명 남짓한 브루크너의 추종자들만이 끝까지 남아 자리를 지켰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17세의 청년 구스타프 말러도 끼여 있었다. 비록 브루크너의 교향곡 3번의 초연은 처참한 실패로 끝났지만, 말러는 이 교향곡에 크게 감명을 받아 이 곡을 네 손을 위한 피아노곡으로 편곡하여 이듬해인 1878년에 출판했다. 브루크너는 말러의 편곡에 아주 만족하여 그 답례로 말러에게 자신의 교향곡 3번의 총보를 선물했다고 전해진다. 
그 이후 그들은 좋은 친구이자 동료가 되었으며 서로를 열렬히 숭배했다. 브루크너는 항상 자신보다 한참 어린 말러에 대해서 깊은 존경심을 나타내곤 했다. 그래서 말러가 그를 방문할 때마다 모자를 손에 든 채 계단을 뛰어 내려가 이 젊은이를 맞이할 정도였다. 그는 말러를 만날 때마다 자신의 작품을 연주해 보이며 이 신출내기 음악가에게 인정받기를 원했다.  
이미 말러 교향곡 전곡 연주로 말러 신드롬을 일으킨 부천필이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에 도전한다는 발표가 있은 후 음악애호가들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이제 곧 다가올 부천필의 브루크너 시리즈를 준비하는 의미에서, 집안에 있는 시간이 많은 길고 지루한 장마철에 큰맘 먹고 웅장한 브루크너의 교향곡을 들어보는 것도 장마철을 유익하게 보내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필자는 부천필 바이올린 부수석, 기획 팀장을 역임 했으며 현재 대원문화재단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부천포커스 2007-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