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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교향시의 매력

  • 작성일2007-10-18
  • 조회수6577
[최은규의 음악 에세이] 
교향시의 매력
 
 
찌는 듯한 폭염을 뒤로 하고 어느덧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고 있다. 본격적인 오케스트라 시즌이 시작되었다는 신호다.  
 
월7일부터 시작되는 부천필의 가을 공연 프로그램을 보면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을 비롯해, 드뷔시의 교향시 ‘바다’, 루토슬라프스키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바르토크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브루크너의 교향곡 등 대곡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 매우 풍성하다.  
 
흥미롭게도 부천필의 이번 가을시즌 프로그램에는 정통 교향곡보다는 오히려 ‘교향시’나 ‘협주곡’들이 많다. 일반적으로 오케스트라 연주회의 중심이 되는 ‘교향곡’은 18세기에 하이든에 의해 4악장제의 고전적인 형식을 확립한 이후 오케스트라 연주회의 핵심 레퍼토리로 자리 잡고 있지만, ‘협주곡’과 ‘교향시’ 역시 관현악 프로그램에서 교향곡 못지않게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음악장르다.  
그중 ‘교향시(交響詩, symphonic poem)’는 우리에게 다소 낯선 용어인데, 그 뜻은 대체로 ‘시적인 교향곡’, ‘오케스트라로 연주하는 시’, ‘시적인 기악곡’ 등으로 풀이될 수 있을 것이다.  
 
정형화된 형식보다는 음악을 통해 감정과 느낌을 표현하고자 했던 19세기 음악가들은 형식의 제약이 많았던 교향곡보다는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형식의 교향시를 선호했다. 대체로 단악장으로 이루어진 짤막한 형태의 교향시는 짧은 길이의 소품을 즐겨 작곡했던 낭만주의 작곡가들의 취향에 잘 맞았던 것이다.  
 
이처럼 독특하고 자유로운 관현악 장르가 탄생하게 된 것은 낭만주의 음악의 대가 리하르트 바그너의 폭탄선언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베토벤 이후 교향곡 형식을 통한 표현가능성은 없다’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그는 프란츠 리스트와 함께 진보적인 성격의 ‘신독일악파’를 이루며 브람스를 중심으로 한 보수파와 대립했다.  
고정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교향시의 매력은 20세기 작곡가들에게도 어필했다. 독일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뿐만 아니라 프랑스 인상주의 음악의 대가 드뷔시도 자유로운 교향시의 표현력에 매료되어 ‘바다’를 비롯한 걸작 교향시들을 남겼다. 
 
부천필 가을 시즌 프로그램에도 포함되어 있는 드뷔시의 ‘바다’는 작곡가 스스로 ‘세 개의 교향악적 스케치’라 명명한 작품으로, 햇빛을 반사하는 고요한 수면으로부터 넘실거리는 파도에 이르기까지 변화무쌍한 바다의 인상을 색채감 있는 관현악으로 표현해낸 걸작이다.  
 
올 가을, 말러 교향곡 이후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 도전을 선언한 데 이어 프랑스의 교향시와 20세기 작품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는 부천필의 새로운 도전에 기대를 걸어본다.  
 
필자는 부천필 바이올린 부수석, 기획 팀장을 역임 했으며 현재 대원문화재단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