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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부천필과 임헌정의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 작성일2007-10-18
  • 조회수6862
[최은규의 음악 에세이] 
부천필과 임헌정의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프로 오케스트라에게는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인기 레퍼토리를 연주하는 일이 오히려 더 부담스러울 수 있다.  
 
희귀 레퍼토리를 발굴해 연주할 경우 새로운 곡을 연주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도전적인 시도로 평가되기에 작품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야할 부담감은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그러나 이른바 ‘불멸의 명곡’이라 일컬어지는 몇몇 걸작 교향곡들을 무대에 올릴 경우 그 작품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는 청중을 감동시킬 만한 참신한 관점이나 독특한 해석이 없이는 연주회의 성공을 바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지난 7일 부천시민회관에서 열린 부천필의 ‘차이코프스키 오디세이’는 부천 필하모닉에 있어 하나의 시험무대였다.  
그날 공연의 메인 프로그램으로 연주된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제5번은 국내 교향악단의 단골 레퍼토리일 뿐만 아니라 러시아 악단의 내한연주회에서 가장 자주 연주되는 곡목으로, 국내 청중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명곡이다.  
 
그동안 부천필은 몇몇 객원지휘자들과 함께 이 교향곡을 연주해왔지만, 상임지휘자 임헌정과 함께 연주하는 것은 14년 만이다. 오랜만에 차이코프스키를 지휘한 임헌정의 지휘봉은 14년 전에 비해 훨씬 안정적이고 여유 있었다. 14년 전의 연주가 러시아의 지휘자 므라빈스키의 휘몰아치는 해석을 연상시켰다면 지금의 연주는 간결하면서도 위엄이 있었다.  
 
역시 임헌정은 18년간 함께 해 온 악단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그의 지휘봉의 미세한 움직임과 눈빛 하나에도 오케스트라의 사운드가 빛났고, 음 하나하나에 긴장감이 담겨 있었다.  
 
임헌정과 부천필은 차이코프스키 음악의 감상적인 표현에 치우치지 않고 이 교향곡을 전체적인 안목으로 꿰뚫어 보며 몇몇 주요 지점에서 클라이맥스를 터뜨려 청중의 공감을 얻었다.  
 
1악장에서는 주요 성부가 부각되지 않고 다이내믹의 변화가 급격해 설득력이 부족했는데, 이는 열악한 홀의 음향환경에 일부 기인한 점도 없지 않다. 그러나 2악장에서부터 부천필 특유의 현의 질감이 살아나고 호른 수석의 뛰어난 솔로에 힘입어 분위기가 고조되기 시작했다. 정연한 템포 속에 목관과 현의 생동감이 살아난 3악장, 절도 있는 금관의 리듬이 살아난 4악장에 이르기까지 정제된 열정이 돋보였다.  
 
부천필과 임헌정은 진부한 감상에 젖기 쉬운 차이코프스키 음악에서 오히려 간결한 아름다움을 보여줌으로써 명곡 연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었다. 이는 서울의 주요 공연장에서도 좀처럼 듣기 힘든 수준 높은 연주였다.  
지방의 작은 공연장에서 이 같은 고급 음악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필자는 부천필 바이올린 부수석, 기획 팀장을 역임 했으며 현재 대원문화재단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