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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브루크너와 바그너

  • 작성일2007-10-18
  • 조회수7902
[최은규의 음악 에세이] 
브루크너와 바그너
 
 
 
 
말러 교향곡 전곡 연주로 유명한 부천필하모닉이 이제는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 도전에 나섰다. 11월27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그 첫 번째 연주에 앞서 부천필은 오는 5일 부천의 음악애호가들을 위해 ‘부천필의 브루크너’를 미리 선보이는 특별한 자리를 마련했다.  
 
이번 음악회에서 연주될 작품은 브루크너의 교향곡 제9번으로 브루크너의 마지막 교향곡이다. 미완성 작품이기도 한 이 교향곡은 장엄하고 아름다운 느린 3악장으로 마무리되어 브루크너 음악의 명상적인 측면을 잘 보여준다.  
 
‘바그너 튜바’라는 이색적인 악기가 사용된 것도 이 교향곡의 독특한 점이다. 본래 ‘바그너 튜바’는 19세기 음악극을 창시한 작곡가로 유명한 리하르트 바그너가 자신의 음악극 ‘니벨룽의 반지’에 쓰기 위해 개발한 악기로, 호른과 튜바의 중간 음역을 지니고 있다. 작은 튜바 모양을 한 이 악기는 연주자를 구하기 어려워 때때로 호른으로 대체되기도 하지만, 브루크너의 본래 의도를 살리기 위해서는 호른보다는 바그너 튜바의 음색이 훨씬 잘 어울린다.  
 
브루크너가 이 특별한 악기를 교향곡에 편성하기 시작한 것은 교향곡 제7번부터였다. 그는 제7번을 작곡하던 1883년 당시 그토록 존경하던 바그너의 서거 소식을 접하고 슬픔에 휩싸여 곧바로 그의 교향곡 제7번의 느린 2악장에 네 대의 바그너 튜바로 연주하는 애도의 선율을 적어 넣었다. 이 주제 선율은 바그너에 대한 추모의 마음이 절절하게 흐르는 어둡고 신비로운 선율이다. 그 이후 브루크너의 교향곡에는 바그너 튜바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브루크너가 평소 바그너를 숭배해온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가 자신의 교향곡 제3번에 직접 ‘바그너’라는 제목을 붙인 것도 바그너에 대한 그의 깊은 존경심을 나타낸다. 그러나 당시 유럽 음악계가 브람스와 한슬리크를 중심으로 한 보수주의 음악가들과 바그너, 리스트로 대표되는 진보주의 음악가들로 양분되어 소모전과 독설에 휩싸여 있는 상황에서 바그너에 대해 노골적인 존경심을 표현하는 일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그것은 반대파의 반감을 살만한 일이기 때문이다. 
 
1877년, 브루크너가 그의 교향곡 제3번 ‘바그너’의 초연이 처참한 실패로 돌아간 것도 반대파의 방해공작 덕분이었다. 음악회에 참석했던 청중은 연주회가 끝날 무렵 거의 퇴장해버렸고 연주가 끝날 당시 객석을 지키고 있던 청중은 고작 25명이었다.  
브루크너의 교향곡들이 그 뛰어난 작품성에 비해 인정을 못 받았던 것은 당대 음악계의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오로지 작곡기법의 연구에 매달리며 평생을 학구적인 태도로 작곡에 전념했던 브루크너는 당대의 복잡한 ‘음악 정치학’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당시의 당파적 분위기에 대응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고 그를 둘러싼 격렬한 경쟁 분위기를 이해하지 못했던 천진스러운 천재였다.  
 
필자는 부천필 바이올린 부수석, 기획 팀장을 역임 했으며 현재 대원문화재단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