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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현대음악의 새 길을 연 바르톡

  • 작성일2007-11-23
  • 조회수7688
[최은규의 음악 에세이] 
 
현대음악의 새 길을 연 바르톡  
 
지난 19일 부천시민회관에서 열린 부천필의 정기연주회에서 러시아 작곡가 글라주노프와 헝가리 작곡가 바르톡의 작품이 연주됐다. 서양음악사에 그들의 음악은 소위 ‘민족주의’라는 조류로 분류되곤 하지만, 어찌 보면 이런 명칭은 서유럽 음악을 중심으로 서술되고 있는 기존의 음악사관에서 비롯된 편파적 용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음악이라는 예술을 인류의 보편언어로 간주한다면 음악에서 국가와 민족을 강조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하지만 새로운 음악 어법을 개발하는 데 있어 전통적이고 민족적인 요소를 활용하는 것이 때때로 좋은 결과로 나타나기도 한다.  
 
작곡가 벨라 바르톡은 헝가리 민속음악의 가능성을 알고 있었다. 그는 오랜 세월동안 마자르 지방을 비롯한 헝가리 지역 곳곳을 돌며 민요를 채집해 이것을 새로운 음악을 위한 원천으로 삼았다.  
그는 단순히 자신의 작품에 민요를 인용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는 헝가리 민요의 특유의 인토네이션을 연구해 이를 바탕으로 서유럽 음악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조성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것은 19세기의 리스트와 브람스가 자신의 음악에 헝가리 민요를 인용한 단순한 작업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근본적인 개혁이었다.  
 
바르톡이 활동하던 20세기 초반, ‘후기낭만주의’라 일컬어지던 독일·오스트리아 지역의 음악은 그 표현의 한계점에 다다르고 있었다. 지나친 거대함과 감정표현을 추구하며 형식을 파괴해온 후가낭만주의 음악은 진부한 옛 음악이 되어갔고, 작곡가 아놀드 쇤베르크는 한 옥타브를 구성하는 12음에 동등한 지위를 부여한 ‘무조음악’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 했다. 이런 상황에서 바르톡의 음악은 20세기 새로운 음악이 나아가야할 또 하나의 훌륭한 해답이었다.  
 
바르톡의 작품들은 당대 다른 음악과는 비교할 수 없는 독창성으로 빛났지만, 그 자신은 말년에 미국에 건너가 경제적 어려움과 음악적 몰이해와 싸우며 힘들게 살아갔다. 설상가상으로 1943년에는 백혈병 진단까지 받아 그의 미래는 암울하기만 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 고통스러운 시기 동안 바르톡은 갑자기 엄청난 창조적 욕구를 분출하며 걸작들을 쏟아냈다.  
 
비참했던 생애 말년에 바르톡이 마지막 창작의 불꽃을 불태웠던 이 시기의 작품 중에서도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은 그의 최대 걸작으로 꼽히며 예술성과 대중성을 겸비하고 있어 바르톡 음악의 입문 곡으로 추천할 만한 작품이다.  
 
쌀쌀한 바람과 함께 10월도 어느덧 마지막을 향해 치닫고 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간절한 요즘, 옛 민요 선율 속에서 새로운 음악의 가능성을 발견한 바르톡의 음악을 들으며 전통 속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지혜를 배우고 싶다.  
 
필자는 부천필 바이올린 부수석, 기획 팀장을 역임 했으며 현재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