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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가을에 어울리는 음악가, 브람스

  • 작성일2007-11-23
  • 조회수7876
[최은규의 음악 에세이] 
 
가을에 어울리는 음악가, 브람스  
 
많은 이들이 브람스의 음악을 가을과 관련짓는다. 낙엽이 지는 가을의 쓸쓸한 정서를 브람스만큼 음악으로 잘 표현해낸 음악가는 드물기 때문이다.  
 
가을에 어울리는 음악가 요하네스 브람스(1833~1897)는 전통적인 형식 속에서 낭만적인 표현력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이름을 날렸다. 마치 ‘얼음 속의 불꽃’처럼 내면에 뜨거운 열정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엄격하고 절제된 형식미를 보여 주고 있는 그의 음악은 지극히 내면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음악성을 지니고 있다.  
 
내성적이고 신중한 브람스는 완전히 만족할 때까지 작품을 다듬고 수정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가 교향곡 제1번을 완성하기까지 21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을 보낸 것은 그의 신중한 성격을 보여 주는 일화로 음악애호가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브람스가 첫 교향곡을 쓰기 시작한 것은 22세 때의 일로, 당시 그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내 뒤로 뚜벅뚜벅 쫓아오는 소리를 항상 들어야 하는 기분을 자네는 전혀 상상할 수 없을 걸세”라고 쓰기도 했다. 여기서 거인은 바로 베토벤이었다.  
 
아직 젊은 나이의 브람스가 베토벤이라는 거인에 대해 강박관념을 느끼며 한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이처럼 오랜 시간을 투자했던 까닭에 대해서 음악학자들은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지만, 슈만의 평론문이 브람스에게 강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로베르트 슈만(1810~1856)은 19세기 전반의 뛰어난 작곡가이기도 하지만, 현란한 문체를 자랑하는 음악비평가로도 이름을 날렸다. 그가 발행하는 ‘신음악지’는 당대 유럽 음악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1853년, 20세의 청년 브람스를 만난 슈만은 ‘신음악지’에 ‘새로운 길’이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했다. 이 비평문에서 슈만은 다음과 같이 다소 과장되고 열렬한 문체로 브람스를 소개하며 그를 유럽 음악계를 구할 ‘메시아’로 묘사했다. 
“드디어 그가 왔다. 그는 요람의 여신과 영웅들이 보호하고 있는 멋진 젊은이다. 그가 마법의 지휘봉을 흔들기만 하면 우리는 정신세계의 비밀에 대한 훨씬 더 놀라운 전망들을 보게 될 것이다.” 
 
이 비평문으로 인해 브람스는 일약 유럽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으나, 아직 젊고 준비가 덜 된 브람스에게는 이 글이 큰 부담이 되었다. 이제 브람스는 자신의 시기와 질투가 담긴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야 했고, 전보다 더 큰 부담과 강박관념 속에서 작품 발표에 더 신중해질 수 밖에 없었다.  
 
갑자기 유럽 음악계를 구원해야할 소명을 떠 안게 된 브람스는 이제 베토벤을 모델 삼아 완벽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힘겨운 도전을 시작했다. 브람스는 그 힘든 노력을 마다하지 않고 평생 동안 철저한 장인정신과 자신에 대한 엄격함으로 무장한 채 음악에 정진해 오늘날 서양고전음악의 ‘3B’ 중 한 사람으로서 바흐, 베토벤과 동등한 거장의 반열에 들었다.  
올 가을, 투철한 장인정신을 견지하며 전통 속에서 새로움을 창조한 브람스의 음악을 권하고 싶다.  
 
필자는 부천필 바이올린 부수석, 기획 팀장을 역임 했으며 현재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