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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리뷰]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 연주 Ⅷ(글 : 류태형_음악칼럼니스트)

  • 작성일2012-08-07
  • 조회수4458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 연주 Ⅷ 
First Glory
 
 
 
 
타는 목마름 적셔준 단비  
 
브루크너 교향곡은 목마름이다. 카를 슈리히트, 오이겐 요훔, 귄터 반트에서부터 리카르도 샤이, 프란츠 벨저 뫼스트, 사카리 오라모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클래식 음악애호가들은 ‘브루크네리안’이란 칭호를 얻은 수많은 지휘자와 연주단체의 브루크너 교향곡 음반들을 섭렵해 왔고, 오늘도 CD와 LP, DVD와 블루레이를 통해서 심원한 브루크너의 세계를 체험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오케스트라의 공연들 가운데 브루크너를 레퍼토리로 하는 음악회는 드물다. 지난 7월 25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펼쳐진 임헌정이 지휘한 부천필하모닉의 공연은 실제로 객석에서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을 접할 기회를 선사한 ‘가뭄 속의 단비’와도 같았다.  
 
첫곡은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에서 ‘전주곡과 사랑의 죽음’이었다. 브루크너는 교향곡 3번을 존경하던 바그너에게 바쳤고, 바그너의 죽음을 예감하고 교향곡 7번을 썼다. 바그너의 작품을 첫곡으로 배치한 것은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의 2악장이 바그너를 애도하는 장송음악이라는 점이 작용했겠지만, 바그너는 브루크너의 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실로 짙고 큰 그림자였다. 바그너의 음악은 단순히 연주시간을 맞추기 위한 필업 레퍼토리로서가 아니라 청중들이 음악사적인 의의를 한자리에서 체험할 수 있는 인상적인 기회를 마련해주었다.  
 
 
 
브루크너에 대한 기대를 안고 객석에 앉아 있던 내게 ‘전주곡과 사랑의 죽음’은 생각지 못했던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거대하게 부풀어 오르는 스케일과 구름에 떠있는 듯한 음향이 콘서트홀을 가득 채웠다. ‘사랑의 죽음’에서 임헌정의 지휘봉은 부천필에서 매혹적인 관능성을 끄집어내고 있었다. ‘이대로 곡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관과 현의 일사불란한 연주 속에 좌우로 넘실거리던 어두운 마성과 아우라는 곡이 끝난 뒤에도 무대에 머물러 떠나지 않았다.  
 
인터미션 뒤에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이 시작됐다. 자신감이 넘치는 현악 주자들의 트레몰로에서 좋은 예감이 스쳤다. 플루트의 유현한 지저귐에 이어 저역 현의 울림은 깜깜한 골짜기로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했다. 관과 현이 최고조에 달해 육박하는 총주는 날카로웠다.  
 
1악장 도중 지휘자 임헌정이 놓친 지휘봉이 땅에 떨어지는 해프닝이 있었다. 그러나 지휘자는 곧바로 열 손가락을 모두 사용해 맨손으로 섬세한 지휘를 펼쳤다. 오케스트라도 전혀 동요하지 않고 집중력 있는 연주를 이어 나갔다.  
 
다시 지휘봉을 손에 쥔 임헌정의 신호로 시작된 2악장 아다지오는 숭고했다. 향불을 피우듯 그윽한 현악군의 탄식 속에서 넉 대의 바그너 튜바가 위대한 작곡가의 초혼제를 집전했다. 때로는 해가 뉘엿뉘엿 지는 머나먼 지평선을 붉게 물들인 노을을 보는 것처럼 황홀했다.  
 
 
 
 3악장과 4악장의 해석 돋보여  
 
임헌정과 부천필의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은 3악장과 4악장에서 그 진가가 드러났다. 트럼펫이 묻고 클라리넷과 바이올린이 이에 답하는 3악장 스케르초에서 부천필은 매서운 기를 발산했다. 트럼펫의 선율이 리드하는 악구의 텍스처가 촘촘했다. 풍성한 황금빛 관악의 홍수가 객석을 뒤덮었다. 그 굽이치는 파도 안에 몸을 담그자 끈질긴 반복의 음형이 회전목마처럼 눈앞에서 계속됐다.  
 
대부분의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의 해석을 살펴보면 1, 2악장은 완만하게 고조되고, 3악장에서 최고조에 이른다. 이런 경우 4악장은 하강하고 잉여적이거나 부속적인 성격을 띠게 마련이다. 그러나 임헌정이 지휘하는 부천필은 마지막 악장에서도 3악장에서 받았던 탄력을 완만하게 지속시켰다. 거기엔 베토벤 교향곡 9번의 4악장같이 세심하고 확신에 찬 밀도가 있었다. 환희에 차 신들린 듯한 최후의 종결부가 끝이 나자 격한 환호와 갈채가 홀을 뒤덮었다.  
 
갈증은 해갈되었다. 임헌정과 부천필의 브루크너 교향곡은 말러 못지않게 뭔가를 보여주었다. 이제 내년에 대작인 교향곡 8번으로 부천필의 브루크너 사이클은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된다. 후년에는 부천필의 전용홀이 첫삽을 뜬다. 조용히, 묵묵히, 그러나 제대로 갈 길을 가고 있는 부천필. 많은 음악팬들이 부천필의 행보를 예의 주시하는 이유이다. 말러와 브루크너 팬의 한 사람으로서 임헌정 지휘자의 건강과 부천필의 약진이 계속되기를 바란다.  
 
글 : 류태형_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