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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리뷰]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제291회 정기연주회 '세자르 프랑크 탄생 200주년 기념연주' (글_강지영)

  • 작성일2022-07-04
  • 조회수620
[리뷰]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제291회 정기연주회 <세자르 프랑크 탄생 200주년 기념 연주>
2022년 6월 21일 (화)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부천필의 새로운 시도
 
한국의 대표적인 중견 연주단체로 손꼽히는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1988년에 창단되어 30년이 넘도록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 온 이 단체는 몇 년 전 노사갈등을 겪으면서 약간의 삐걱거림을 비치기도 했으나, 지난해 장윤성 상임지휘자를 영입하면서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고 새로운 비상의 날갯짓을 시작하고 있다. 변화의 단초는 레퍼토리의 확장에서 먼저 감지된다. ‘국내에서 말러 교향곡을 전곡 연주한 최초의 관현악단’이라는 타이틀이 항상 붙을 만큼 말러와 브루크너를 전문적으로 연주하던 부천필은 탄탄한 구성과 형식미를 바탕으로 하는 19세기 후반 독일 오스트리아 교향곡을 넘어 비슷한 시기 러시아와 프랑스로 눈을 돌렸다. 올해 4월 교향악 축제에서는 쇼스타코비치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스크랴빈의 교향곡을 선보이면서 높은 음악적 완성도를 보여줬다는 호평을 이끌어낸 바 있다.
 
2022년 6월 21일 제291회 정기연주회는 19세기 후반 프랑스 작곡가인 세자르 프랑크(Cesar Frank, 1822-1890)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그의 곡들로 채워졌다. 선택된 레퍼토리는 교향시 <프시케>와 교향적 변주곡, 그리고 그의 유일한 교향곡 라단조. 한국에서 실연으로는 비교적 접하기 비교적 쉽지 않은 곡목들이다. 그래서인지 온전히 프랑크의 작품들로 채워진 두 시간여 동안의 공연은 그의 음악을 음미하면서 즐기고 이해할 수 있게 만든 소중한 기회이기도 했다.
 
첫 곡인 교향시 <프시케>는 과히 ‘색채의 변용’이라 할 만큼 다채로운 음색의 향연이 이어졌다. 클라리넷으로 시작된 멜로디는 플루트와 오보에로 바뀌면서 미묘하게 색깔이 달라졌고, 바이올린이 주도하는 현악기 파트는 영롱하면서도 밝은 색채와 감각을 보여줬다. 고급스럽고 중후한 소리를 잘 내는 것으로 알려진 부천필의 현 파트의 새로운 변신이랄까. 비올라와 첼로, 더블베이스 등 저음역 현악기군들이 무게감을 유지하는 가운데, 그 위에 섬세한 목관과 묵직한 금관이 얹혀지며 전체적인 밸런스가 맞춰졌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시케의 이야기가 음악적으로 펼쳐지는데, 지휘자 장윤성이 이끄는 대로 부천필은 내용의 전개에 따라 음색과 분위기가 순식간에 전환되는 맛깔 나는 연주 솜씨를 보여주었다.
 
원래 전체 3부 8곡으로 구성된 곡 중 이날은 1부와 2부에 해당하는 네 곡만 연주되었는데, 울다 지쳐 잠든 프시케를 묘사하는 1곡 ‘프시케의 잠’에 이어 2곡 ‘제피로스에 의해 옮겨지는 프시케’에서는 여러 겹의 음악적 층위가 쌓여 풍부한 볼륨감을 만들어냈다. 3곡 ‘에로스의 정원’은 앞 곡과 전혀 다른 분위기로 금관이 이끌어가는 총주에 선명한 독주가 대비되었고, 4곡 ‘프시케와 에로스’는 자신을 의심한 프시케에게 분노한 에로스가 떠나는 마지막 장면의 음악적 묘사가 인상적이었다. 19세기 중후반, 회화의 이미지나 문학의 내러티브, 작곡가 자신의 실제 경험 혹은 역사적 사건 등 음악 외적 프로그램을 순수기악곡에 가져오려는 시도는 다악장으로 된 교향곡의 장르적 한계를 인식하고 단악장으로 된 자유로운 형식의 ‘교향시’(symphonic poem)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냈다. 프랑크의 <프시케>는 교향시이긴 하지만 단악장이 아니라 8곡으로 구성되어 장대한 신화의 세계를 음악적으로 그려내는데 성공했으며, 이야기를 풀어내는 부천필의 섬세한 음색적 변용이 돋보였다.
 
두 번째로 연주된 곡은 <교향적 변주곡>. 제목 그대로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변주곡이면서 형식상 피아노 독주가 붙은 피아노 협주곡이기도 하다. 협주곡의 전통대로 3악장으로 되어 있으나 전체 악장이 휴지 없이 아타카로 연결되어 마치 단악장처럼 연주되는 것이 특징이다. 제목대로 테마와 여러 개의 변주로 구성되는데, 변주의 개수에 대해서는 6개에서 15개까지 의견이 분분하다. 현악기의 짧은 안내로 시작되어 피아노가 서주를 연주하는 도입부에 이어 주제 테마가 등장한 후 여러 번의 변주를 거듭하며 진행하다가 피날레에서 분위기가 고조되고 마침내 끝이 난다. 이 작품을 두고 음악학자 도널드 토비는 “변주곡 형식으로 된 중요한 에피소드가 있는 정교하고 자유롭게 만들어진 판타지”라고 불렀을 만큼, 변주곡보다 환상곡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교향적 변주곡>에서 피아노는 화려한 기교를 뽐내는 독주 악기로서 부각되는 게 아니라 오케스트라와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다. 독주자로 나선 피아니스트 이효주는 이를 매우 잘 알고 있는 연주자였다. 그녀는 기교를 과시하기보다 하나의 전체를 만들어 가는데 일조하였으며, 시종일관 섬세하고 차분하게 연주하다가 마지막 부분에서는 충분히 상기되고 고무되어 피날레를 극적인 대비로 처리하는 묘미를 보여주었다. 작곡가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는 영민함과 야무진 터치는 관객들에게 ‘이효주’라는 이름을 선명하게 각인하게 했다. 개인적으로 청중의 열화와 같은 성화에도 앵콜곡을 연주하지 않은 그녀의 선택에도 박수를 보낸다. 어찌 됐던 이 곡은 피아노가 주인공이 아니므로. 독주 파트를 부각시키면서도 오케스트라의 균형을 잡고 곡 전체를 장악한 지휘자의 노련함이 돋보였다.
 
짧은 인터미션 후 2부에서는 프랑크의 교향곡 라단조가 연주되었다. 통상 4악장으로 구성되는 구조와 개별 악장의 형식을 고수하는 독일-오스트리아의 교향곡 전통과는 달리, 베를리오즈와 생상스, 포레, 드뷔시나 라벨 등의 프랑스 작곡가들은 음악적 표현이나 색채에 더 중점을 두었다. 독일계 어머니를 둔 탓인지 프랑크의 음악에 대해 ‘교향곡 특유의 건축적 구조미와 프랑스 고유의 색채와 유연한 선율미를 균형 있게 통합’한다는 비평이 유독 많다. 이는 특히 이 교향곡이 선배 독일 작곡가 슈만인 애용한 ‘순환 동기’를 1악장부터 3악장까지 전체적으로 활용한다는 점, 그러면서도 프랑크 특유의 극적인 대조와 대비, 음색의 다채로움을 잘 드러낸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서주를 포함한 소나타 형식의 1악장과 세 부분 형식으로 된 2악장, 다시 소나타 형식으로 돌아오는 3악장 총 세 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스케르초로 해석할 수 있는 2악장 중간 부분 때문에 고전적인 4악장 구성의 틀로 보는 경우도 있다.
 
장윤성이 이끄는 부천필의 연주는 호쾌했다. 1악장의 서두에서 제시되는 전체를 지배하는 순환 동기를 강렬하게 강조하고 이어지는 제2주제는 보다 부드럽고 온화하게 처리하여 명료함을 주었고, 중후한 소리를 내는 현악기군에 실려 목관악기군은 악기별로 다채로운 음색으로 음악적 표면을 풍부하게 물들였고 금관악기군 역시 긴장감으로 가득한 특유의 빵빵한 음색을 안정적으로 실었다. 청중들의 뜨거운 반응은 이날 부천필의 높은 연주 수준을 반영하는 듯했다. 지휘자는 누구나 들으면 아는 프랑크의 <생명의 양식>을 앵콜곡으로 준비하여 청중의 호응에 보답했다.
 
다만 필자에게는 프랑스 작곡가로서 프랑크의 장점이 1부 레퍼토리에서 훨씬 더 부각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자주 다루지 않았던 작품 연주에 도전하면서 표현이 한결 섬세해지고 다채로워진 부천필의 새로운 면모도 1부에서 더 잘 드러났다고 하겠다. 장윤성 지휘자가 부천필에 부임한 지 막 1년이 되는 시점에 만난 이번 연주는 ‘장윤성호 부천필’이 보여줄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국내 유수의 오케스트라를 이끌며 얻은 지휘자의 노련함이 중후하면서도 안정적인 소리를 가진 오케스트라를 만나, 이제는 다채로운 음색과 섬세한 표현으로 팔색조와 같은 매력을 보여주리라. 그러면서도 부천필 하면 떠오르는 말러와 브루크너 등 원래 잘하던 레퍼토리도 틈틈이 만나게 되길 기대한다.
 
 
글|강지영(음악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