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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리뷰]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제294회 정기연주회 – 시벨리우스, 교향곡 제2번(글_이혜진)

  • 작성일2022-10-17
  • 조회수804
[리뷰]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제294회 정기연주회 - 시벨리우스, 교향곡 제2번
2022년 9월 30일(금)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


지난 9월 30일 금요일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에서는 장윤성의 지휘, 토마쉬츠(Stefan Gottfried Tomaschitz)의 협연으로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제294회 정기연주회가 개최되었다. 이번 무대는 19세기 초 오스트리아에서부터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북유럽에 이르기까지 낭만 시대의 다양한 고전과 접속할 수 있는 자리였다.

오프닝 무대는 슈베르트(F. Schubert)의 <로자문데 서곡>이 장식했다. 유니즌과 묵직한 화음으로 구성되어 장엄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현의 안단테 도입부는 집중도 있는 연주로 시작부터 청중의 이목을 사로잡았으며, 이어지는 오보에와 클라리넷의 대위는 목관 특유의 목가적인 음색과 함께 연주회장 곳곳을 따뜻한 질감으로 채색해냈다. 무엇보다 이 곡은 슈베르트 특유의 다양한 제스처 변화가 돋보이는 곡으로, 때로는 경쾌하고 명랑한 어린아이의 모습을 연상시키다가 어느새 단언적인 목소리로 말을 걸며, 또 때로는 서정적인 분위기로 무대를 수놓는다. 이처럼 작품에 존재하는 다양한 장면과 페르소나들을 지휘자 장윤성과 오케스트라는 생동감과 박진감 넘치는 연주로 생생하게 재현해냈다. 제시부와 재현부의 알레그로 비바체에서는 전반적으로 서두르거나 연주자들 사이에 박자가 약간씩 어긋나기도 했으나, 전반적으로 슈베르트 음악이 지닌 다양한 장면들을 마치 시공간을 순간 이동하듯 그때그때 표정을 바꿔가며 드라마틱하게 연출해냈다.

1부 두 번째 순서로 덴마크 작곡가 닐센(C. Nielsen)의 <플루트 협주곡>이 연주되었다. 낭만시기를 벗어나 1927년에 초연된 이 곡은 독주 악기의 고도의 테크닉을 필요로 하는 작품으로, 빈 심포니 수석 플루티스트 스테판 고트프리드 토마쉬츠가 본 공연의 협연자로 나섰다. 닐센의 이 작품은 통상 협주곡의 3악장 구성이 아닌 두 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서로 다른 악기들 간의 조합에 의한 다양한 실내악적 텍스처 및 음색의 구현, 다채로운 음형들의 병치가 특징적이다. 따라서 귀에 쏙 들어오는 주제선율, 뚜렷한 조성감, 꽉 찬 오케스트라 음향 등, 낭만 시대 비르투오소 협주곡의 소리를 기대한 청중들에게는 다소 낯설거나 지루할 수 있는 곡이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가 무색하게 이날 플루티스트 토마쉬츠는 청중을 압도하는 퍼포먼스에 성공했다. 연주 테크닉과 암보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채 몰입감 넘치는 연주를 선보인 그의 연주는 고전·낭만시대 조성음악의 구심력이 부재한 모던한 성격의 이 작품에 응집력 있는 음악적 내러티브를 창조해냈다. ‘박제된’ 작품의 재연이 아닌 고전 음악의 재탄생과 변용을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데에는 오케스트라의 효과적인 음량 조절, 그리고 바순, 클라리넷, 바이올린, 트롬본 등의 오케스트라 악기들의 탁월한 대위와 보조가 크게 작용했다. 특히 1악장의 클라리넷과 플루트의 듀엣은 환상적인 무대를 연출했다. 고음역과 저음역을 자유자재로 오고 가며 빠른 음형들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소리로 구현해내는 고난도의 연주 테크닉, 플루트 선율 하나만으로 연주 홀 전체를 장악하는 카덴차에서의 퍼포먼스, 소리 외에도 프레이징, 호흡, 다이나믹, 템포, 그리고 마지막 잔향까지 완벽하게 컨트롤하는 해석 능력 등, 플루트 독주자의 기량을 아낌없이 선보여준 토마쉬츠에게 부천필 청중은 수차례의 커튼콜을 보냈고, 여기에 협연자는 앵콜곡 드뷔시의 <사라방드> 연주로 화답했다.

인터미션 후 이번 정기연주회의 타이틀곡인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제2번 D장조 Op. 43>이 연주되었다. 전체 4악장 구성의 대규모 곡으로, “고통-투쟁-승리”의 내러티브가 함축된 베토벤식의 영웅적 성격을 띠기도 하고, 시벨리우스의 전작인 교향시 <핀란디아>의 애국적 면모도 감지되는 작품이다. 이날 연주에서는 무엇보다 현의 활약이 돋보였다. 곡 전반에 걸친 현 파트의 음량 조절은 매우 훌륭했고, 1악장의 유니즌과 2악장의 휴지부 후 등장하는 부분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호른, 트럼펫, 트럼본 등 금관의 활약도 돋보였다. 다만 2악장에서 금관의 음량이 다른 악기들에 비해 너무 컸던 점은 아쉽다. 2악장의 경우, 첼로의 피치카토 반주 위에 바순이 서정적인 주제를 연주하는 부분은 집중력을 요구하는 부분이나, 서로 박자가 맞지 않아 두 악기 파트 간의 화학적 결합이 덜 이루어진 점 역시 아쉬운 부분이다.

한편 시벨리우스의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연주자들이 집중력을 유지하기에 쉽지 않은 작품인 것 같다. 긴 작품 길이도 길이지만, 베토벤 이후 대부분의 낭만 교향곡이 그렇듯, 연주자가 연주하면서 즐길 수 있는 작품이라기보다는 전체를 위해 연주자 개인이 희생해야 하는 작품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1악장과 2악장의 현의 피치카토 반주 부분, 2악장 후반부의 현악, 목관, 금관 파트가 차례대로 선율 단편을 나열하는 부분, 4악장에서 첼로가 특정 음형을 반복하면서 목관 선율을 반주하는 부분 등 이 작품 곳곳에 포진되어있는, 연주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연주보다는 노동에 가까운 부분들에서는 연주자들의 집중도가 떨어지는 양상이 보이기도 했다. 이와 달리 1악장 오보에와 클라리넷의 주제 제시 부분, 4악장 현의 제1주제 모티브 연주 및 목관의 제2주제 제시 부분, 그리고 무엇보다 마지막 4악장에서 오케스트라가 투티로 주제선율을 연주하는 부분 등에서는 연주자들의 집중도가 최대한 발휘되었다. 성공적인 연주란 완벽한 연주가 아니라, 연주자들이 얼마나 그 연주에 몰입하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의 마음 상태가 어떠한지에 달려있는 게 아닐까. 그 순간 연주자들의 미적 경험이 청중에게도 오롯이 전달이 되기 때문이다.


글│이혜진(음악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