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연리뷰

[리뷰]부천시립합창단 제167회 정기연주회 - 포레 레퀴엠 (글_변효경)

  • 작성일2023-08-03
  • 조회수358
[리뷰] 부천시립합창단 제167회 정기연주회 - 호국보훈의 달 기념 <포레 레퀴엠>
2023년 6월 29일(목) 오후 7시 30분 부천아트센터 콘서트홀



부천시립합창단의 연주가 있었던 6월 29일은, 지척에서 열리고 있던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개막행사로 주변이 부산한 가운데 비까지 내려서 연주회를 하기에 그리 이상적인 날은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표시인 윤동주, 도종환의 시에 입혀진 아름다운 선율이 김선아 지휘자의 손끝에서 시작하여 합창단의 화음으로 울려퍼지자, 부천아트센터에 당도하기까지의 번잡스러움은 쉽게 잊혔다. 호국 보훈의 달을 맞아 시대를 아파하며 공감했던 시인들의 조용하지만 단호한 삶의 결심을 그대로 드러낸 곡들을 선정하여 섬세하게 표현해 내는 지휘자의 정성이 느껴졌고, 이를 따르는 합창단의 집중력이 돋보였다.
 
테너 솔로로 시작하여 조심스럽게 시작하는 첫 곡에서는 긴장감 때문인지 단원들의 목이 덜 풀린 듯했지만 곡을 거듭하면서 연주홀을 감싸는 합창단의 하나 된 음색을 들을 수 있었다. 지휘자의 설명 후 듣는 조혜영 작곡가의 ‘애가’는 더욱 슬프게 다가왔다.
 
앞의 두 곡에 이어 호국보훈의 달에 이보다 적절한 선곡이 있을 수 있을까 싶었다. 오르간 반주와 피아노 반주에 맞춰 구슬프게, 때로는 아프게 다가오는 선율들이 작게, 크게 울리면서 일렁이는 바다에 자식을 떠나 보내야하는 어머니의 요동치는 마음을 그대로 느끼게 했다. 시대의 비극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해석과 연주였다. 곡마다 들어있는 곡 중 솔로는 합창단원들에게 맡겨졌는데, 단원들 개개인의 역량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휘였다. 앞으로도 더 많은 단원에게 기회를 주어 각자의 역량을 개발하고 힘 있게 발전하는 부천시립합창단이 되길 바란다.
 
휴식시간 이후의 프로그램은 포레의 <레퀴엠>. 김선아 지휘자는 ‘전반부에서 연주된 곡들이 죽음의 슬픔을 노래했다면 2부의 연주는 남은 자들을 위한 위안의 노래가 될 것’이라 설명했다. 여러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곡이라 전체를 감상하고 나서 마지막에 박수를 쳐 주십사하는 부탁의 말도 남겼다. 원곡은 오케스트라의 반주로 되어있지만 오늘의 연주는 오르간과 하프, 그리고 팀파니가 반주를 맡았다.
 
이 곡은 여리게 시작하는 합창이 이끄는데, 그 중 테너 파트의 절제된 유니슨 소리가 특히 눈에 띄었고, 오르간 역시 현악기 계열의 Gamba 소리가 주도하며 합창을 여리게 뒷받침했다. 이 역시 의도된 원곡의 표현이었다고 지휘자로부터 설명을 들었다.
 
상당히 반음계적으로 진행되는 2악장은 셈여림의 표현도 극대화되어 있는 악장이었다. 아카펠라 부분인 ‘O Domine Jesu Christe…’(주 예수 그리스도여)에서는 부천아트센터의 훌륭한 음향이 합창의 아름다운 소리와 가사를 선명히 잘 전달시켜 주었고, 마지막의 ‘Amen’은 간구의 모든 내용들이 합쳐져 하늘로 승화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3악장은 하늘의 천사들이 노래 부르는 느낌의 악장으로 종종 따로 연주되기도 하는 ‘Sanctus’(거룩하시도다)인데, 바이올린 솔로의 아름다운 멜로디를 오르간이 담당하고 아르페지오는 하프로 연주되었다. ‘Hosanna’(호산나)에서는 오르간의 reed stop(관악기 소리)들이 더해지면서 다이내믹의 극대화를 이끌었고 자주 바뀌는 셈여림은 오르가니스트에게 많은 연습을 요구했을 것 같았다.
 
‘Dies irae’(심판의 날)가 강조되는 많은 레퀴엠들과는 달리 포레는 그의 레퀴엠에서 남은 자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바리톤 솔로가 노래하는 ‘Libera me’(나를 구원하소서) 악장에서 잠시 심판의 날의 가사가 등장하는데, 팀파니가 극적인 느낌을 더하면서 두렵고 떨림을 표현한다. 하지만 빛을 비추어 안식을 구하는 차분한 유니슨으로 마무리된다. 아름다운 멜로디로 전개되는 마지막 악장 ‘In paradisum’(천국에서) 역시 소망과 위로에 중점을 둔 이 작품의 백미 중의 하나이다. 최근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관객이 있었다면 천사가 노 래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이 악장에서 많은 위안을 받았을 것이다.
 
앙코르로는 ‘천개의 바람’이 연주되었다. 김선아 지휘자는 프랑스에 포레의 레퀴엠이 있다면 한국에는 우리만의 정서로 위안을 주는 ‘천개의 바람’이 있다고 곡을 소개하면서 차분하고 안정적인 연주를 들려주었다.
 
김선아 지휘자가 부천을 이끈지 1년 반이 되었다고 한다. 새 지휘자와 호흡을 맞추며 소리를 다듬고 있는 부천시립합창단에게 부천아트센터는 더 좋은 음악을 만들게 하는 도전을 주고, 부천시를 한단계 더 높은 음악도시로 성장시키는 훌륭한 원동력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서울 공연장의 대장격인 예술의전당에도 없는 파이프 오르간까지 설치하면서 음향에도 상당히 신경을 쓴 부천아트센터와 함께 부천시립합창단의 아름다운 울림이 더욱 더 멀리 퍼져나가기를 바란다.
 

글│변효경 - 음악전문지 <콰이어&오르간> 2023년 8월호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