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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후기

장쾌하고 정중한 슈베르트

  • 작성자*
  • 작성일2007-05-27
  • 조회수4870
부천 필의 연주회에 가기 전에는 늘 기분이 좋지 않다. 뭔가 언짢은 일이 꼭 생기기 때문이다. 지난 5월 25일(금요일)도 그랬다. 용건이 있어 문자메시지를 보내도 받지 않고(속된 말로 씹는다고 한다), 내 전자우편주소는 수신거부를 해놓은 사람이(물론 전화는 받지도 않는다) 나를 보고서는 얼굴도 마주하지 않고 건성으로 재빠르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고는 사라졌다. 불러서 자초지종을 물어보려다 그만두었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겠지라고 스스로를 달래보았지만 괘씸한건 괘씸한 건다. 참고로 그는 나보다 스무살 가량 어리다.  
 
슈베르트의 로자문제 서곡이 시작되었을 때만해도 내 복잡다단한 마음은 가라앉지 않았다. 물론 음악은 좋았다. 특히 첼로의 웅장한 선율이 잘 살아있었다. 이어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와 <세레나데>, 멘델스존의 <노래의 날개 위에>를 연주곡으로 들려주었다. 색다른 맛이 살아있었으나 그래도 성악과 함께 곁들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내 바람을 알았는지 이어진 말러의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는 바리톤 전기홍씨가 합세하여 제대로 들을 수 있었다. 헌데 슈베르트 특집 음악회, 일명 슈베르티아데, 인데 왠 멘델스존과 말러? 이 이야기는 따로 하겠다.  
 
2부의 시작은 말러가 편곡한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였다. 항상 바이올린의 신경질적인 협연으로만 듣다 교향악 편성으로 접하니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뭐랄까? 풍성한 기분이랄까? 개인적으로는 그래도 신경을 득득 긁는듯한 원래의 곡이 좋았다.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은 미묘하다. 도입부터 그렇다. 흔히들 애수에 젖은 슈베르트를 떠올리는 이들에게 이 곡은 낯선 느낌을 준다. 상상의 나래를 편다. 드디어 미치기 시작한다. 죽음이 임박했다. 로맨틱한 감정은 이제 마르고 또 말라서 더이상 파낼 수가 없다. 환청이 들리고 헛것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도저히 곡을 끝낼 재간이 없다. 내내 이런 망상을 하며 곡을 듣는다.  
 
이윽고 끝났다. 박수를 친다. 한번, 두번, 세번, 네번, 다섯번. 오기를 잘했다. 늘 그렇다. 마음이 활짝 열리지는 않았으나 한결 차분해졌다. 그게 어디냐? 그런 인간은 그런 인간들끼리 어울려 살면 그만이다란 위안을 받는다. 앙코르 곡으로 다시 연주한 노래의 날개 위해가 다시 한번 내 마음을 어루만져준다. 지휘자 임헌정씨는 말한다. 좋은 음악을 듣고 즐거운 마음으로 돌아가시기를  
 
뒷이야기.  
 
당초 안내에는 말러가 포함되지 않았다. 썩 나쁘지는 않았으나 슈베르트 특집에 말러는 왠지 좀?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취소되는 바람에 대체편성되었다고 한다. 어쨌든 이 날 연주는 슈베르트의 색다른 맛을 선사해주었다. 장쾌하고 정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