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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후기

손열음, 넘 예뻐졌다 얘

  • 작성자*
  • 작성일2007-06-19
  • 조회수4786
만약 김선욱이 아니었다면 손열음은 지금보다 더 유명해졌으리라. 뭐 연주자들간에 등수를 매긴다는게 우습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의 이름이 훨씬 많이 알려졌음에는 틀림없다. 사실 손열음이야말로 콩쿠르를 통해 혜성같이 등장한 신동아니던가? 수상경력을 보라. 루빈스타인 국제 피아노 콩쿠르 3위(2005년), 비오티 국제콩쿠르 최연소 1위(2002년), 차이콥스키 청소년 국제 콩쿠르 최연소 2위(1997년). 게다가 앳되고 정감있는 외모까지.  
 
2007년 6월 16일 부천시민회관 대공연장에서는 부천필의 109회 정기연주회가 열렸다. 지휘는 스테판 블루니에, 피아노 협연은 손열음이었다. 당연히(?) 화제는 손열음이었다. 독일에서 유학하고 있는 그의 연주실력이 얼마나 향상되었는지, 레파토리는 어느만큼 다양해졌는지, 궁금한 게 많았다.  
 
결국 연주만이 그 모든 의문에 답을 주는 법. 첫 곡으로 연주된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스페인 기상곡 34번에 이어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 43번이 연주되었다. 김선욱씨의 연주로 같은 곡을 들었던 터라 은근히 비교하는 마음도 있었다. 결론부터 먼저 말하자면 김선욱은 김선욱대로, 손열음은 손열음대로 좋았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곡의 도입부와 마무리는 김선욱이, 중간 이후의 주제선율은 손열음이 우위였다. 물론 주관적이다. 그럼에도 굳이 그 이유를 설명하자면 김선욱은 강한 터치에 강점을 보였고, 손열음은 여린 감성이 잘 살아있었다. 딱히 남자와 여자라서라기보다는 피아노를 대하는 자세나 훈련방법의 차이같았다.  
 
부천필이 연주한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일명 혁명)도 인상적이었다. 정직하게 말해 3악장까지는 의자에 기댄 채 눈을 감고 들었다. 코만 골지 않으면 상관없다(라고 나는 감히 주장한다). 하지만 4악장이 시작되지마자 자세를 바로잡고 눈을 크게 뜨고 무대를 바라보았다. 혁명은 4악장만 제대로 들으면 본전을 뽑고도 남는다라는 평소의 생각을 실천에 옮긴 셈이다. 제발 타악기의 선율이 생생히 살아있어다오. 역시 예상대로였다. 다른 악기들은 모르겠지만 부천필의 타악기만큼은 일류다.  
 
뒷이야기 하나.  
 
이날 손열음은 쥐색 드레스를 입었다. 몸에 꽉 끼어 연주하는데 불편해보였으나 여성스러움이 물씬 묻어나오는 옷차림이었다. 나만 그런 생각을 한게 아니었는지, 휴식시간 내내 뒷자리에 계신 분들은 손열음, 넘 예뻐졌다 얘를 스무번 이상 말씀하셨다.  
 
뒷이야기 둘.  
 
부천필 연주를 보고 듣는 즐거움 중 하나는 연주자들을 스스럼없이 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1부가 끝나고 휴식시간에 관객들과 어울려 자동판매기 커피를 나누어 마신다. 물론 그 중에는 가족이나 친척이 대부분이겠지만. 여하튼 무대에서나 보던 사람들을 바로 곁에서 볼 수 있다니 꽤 근사한 일이다. 지난번 슈베트르 연주회에서는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는데 바로 옆에 임헌정 지휘자가 서 계셔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 이게 다 전용홀이 없어서 생기는 즐거운 해프닝이다. 그래도 어서 빨리 전용연주장이 생기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