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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후기

말러, 고행에 이르는 길, 비극

  • 작성자*
  • 작성일2007-07-22
  • 조회수4793
가는 길부터 고행이었다. 일찌감치 떠났다면 아무 일 없었으리라. 게다가 눈 앞에서 번번히 버스며 지하철을 놓치니. 중동역에 내린다. 7시 20분. 과연 공연 시작시간인 7시 30분까지 맞추어 갈 수 있을까? 뛴다. 무조건.  
 
손수건으로 얼굴에 흘러내리는 땀을 훔치며 생수병을 꺼내 물 한모금을 삼킨다. 여하튼 나는 지금 부천시민회관 대공연장의 삐걱거리는 객석 의자에 앉아있다. 어떻게 이곳까지 10분에 달려왔는지는 이미 잊었다. 콰과광. 비극이 시작된다.  
 
나는 대지의 노래로 말러와 만났다. 인내심 테스트용 음악이었다. 듣고 듣고 또 들어도 뭐가 좋은지 모르겠던 어느날 감동이 마음 속으로 밀려들왔다. 깜짝 놀라 다시 들었으나 조금전의 감동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다. 수수께끼같은 작곡가군.  
 
말러의 고향곡 6번은 일명 수수께끼 교향곡이라 불린다. 말러 스스로 붙였다. 나는 이 말을 평론가들의 독설에 맞서기 위한 방편이라 생각한다. 섣불리 비평하지 말라구, 음조니 뭐니 하는 시답지 않은 음악이론으로 날 공격하기만 해봐, 가만두지 않겠어. 그냥 수수께끼니까 그렇게 알아둬.  
 
감상자에게는 행운이다. 자기 멋대로 해석하면 되니까. 상상을 한다. 이 자리에 온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부천필의 매력에 이끌려, 혹은 지휘자 임헌정을 보기 위해, 아니면 한국에서 그나마 제대로 된 말러 연주를 듣기 위해. 그건 겉으로 드러난 이유에 불과하다(?). 온갖 상념에 빠져 있으리라. 돌아갈때 차가 막히면 어떡하나? 이번달 직원들 월급은 제대로 줄 수 있을까? 장마는 왜 이리 길지? 내일 점심은 뭐로 준비하지? 아, 귀찮아. 말러는 그런 고민을 계속 하도록 고문을 해댄다.  
 
내가 그랬다. 연주 내내 집중하지 못하고 잡다한 생각들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댔다. 1악장부터 4악장까지 쭉. 말러는 마지막 순간까지 친절했다. 이제, 악몽은 끝입니다. 잠들 깨세요. 꽝 다들 얼떨결에 눈을 뜨고 박수를 쳐댄다. 내 곁에서 꼼지락거리며 몸을 가누지 못하던 아이 한마디한다. 휴우, 엄마 이제 끝났어? 그 어린이에게도 말러는 악몽이었으리라.  
 
뒷이야기.  
 
정작 중요한 연주평을 하지 못했다. 좋았다. 특히 1악장과 4악장은 압권이었다. 2악장과 3악장은 처지는 느낌이 들었다. 늘 느끼지만 부천필은 강점과 약점이 분명한 연주단체다. 세계 몰아칠 때는 거침이 없지만 약하게 갈 때는 어쩔 줄 몰라 쩔쩔 맨다. 강약조절이 힘들다는 말이다. 조마조마하게 들었던 금관악기의 연주는 만족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