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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후기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 관람후기

  • 작성자*
  • 작성일2012-02-22
  • 조회수4166
치체스터 시편은 너무 빨리 지나간 느낌이었다. 시편이란 제목에 강렬한 타악기의 충격이 그런 느낌을 가중시켰나보다. 그러나 앵콜에서 다시 들을 때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너무 신선하고 화려한 느낌은 가사의 내용을 알 수 없는만큼 곡의 중심이 콘텐츠로부터 그 표현기제로 옮겨진 것 같았다. 만일 그 가사의 내용을 알 수 있도록 배려했다면 느낌은 어떻게 변했을까? 다섯개의 신비의 노래들은 번역본은 있었으나 아쉽게도 원문이 없었고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는 원문과 번역 모두 제공되었지만 시편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나마 조명관계로 공연중 가사를 참조하기는 너무 어려웠다. 좌우에 대형 가사 스크린을 공연의 목적이자 대상자인 관객에게 서비스할 수는 없었을까? 전반적으로 공연은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나로서는 우리나라에서 카운터테너의 목소리를 들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니 우리나라에 카운터테너가 있는지도 몰랐다. 비록 히브리어라고 했지만 그 내용이라도 알았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다섯개의 신비의 노래들은 영어로 부른 노래였는데 그 번역본이 있다는 것을 나는 공연이 끝난 후에야 알았다. 나는 우리 관객 수준이 히브리어나 라틴어에는 미치지 못할지 몰라도 영어로는 어느 정도 통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처럼 이 노래들도 번역본과 함께 영어를 병기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그래서 바리톤과 합창단 모두 열심히 불러 주신 아름다운 목소리의 노래들은 더욱 신비했다.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는 여섯 부분으로 되어 있었는데 다섯개의 신비의 노래들처럼 잘 구분이 될 줄 알고 듣다가 너무 첫 부분이 길다고 느꼈을 때는 이미 마지막 부분에 들어가고 있었다. 역시 나로서는 비록 영어라도 합창으로 듣는데는 한계가 있음을 느꼈다. 특히 월트 휘트먼은 내가 좋아하는 시인이라 더욱 신경을 썼었는데 그 특유의 시원시원한 싯귀는 읊기만해도 감흥을 돋기에 충분하건만 만연체의 그 시는 전체적으로 이해하는데도 꽤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어서 듣는 것만으로 감동을 느끼기에는 나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전체적으로 코러스와 오케스트라의 차이를 알 수 있는 공연이었다. 오케스트라가 추상적이고 감정적이라면 코러스는 구체적이고 감동적인 차이가 있다. 그렇지 못할 때 우리는 코러스에서 추상적이고 감정적인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관객에게 좀더 구체적인 감동을 주기 위한 배려가 필요했지만 고상한 음악의 아름다움을 선사한 공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