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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후기

11/13 부천필 시벨리우스 연주회

  • 작성자*
  • 작성일2015-11-14
  • 조회수2687
국내 음악 연주 단체의 연주회 중 가장 기대되고 꼭 가고 싶은 공연이었습니다. 시벨리우스의 작품들로만 구성된 음악회를 언제 또 볼 수 있겠나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게다가 좀 더 대중적인 1, 2번 교향곡도 아니고, 7번이라니... 지극히 숭고한 브루크너의 교향곡들조차 가톨릭 신앙의 패러다임에 갇힌 것으로 보일 만큼 시벨리우스(특히 7번)는 어떠한 문화/인식의 틀조차도 초월한 절대의 경지를 보여주는 감동적인 음악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편으로는 공연에 앞서 로비에서 초등학교 저학년생들이 많이 보이길래 아이들 수준에서 이해할 없는 작품 연주회에 무슨 생각으로 왔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던 게 사실입니다. 아니나다를까 5번 교향곡 종악장 끝에서 투티에 의한 종지음이 끝나기도 전에 아이들의 박수와 웃음소리가 터져나와서 지휘자님도 많이 허탈해하시는 모습이더군요. 그래서인지 슬픈 왈츠 전에 손가락으로 입을 대며 주의를 주시던 모습이 정말 간절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어제의 청중들 중에는 악장 사이에 박수를 치지 않는 게 관례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따라서 만약 5번 교향곡처럼 마치 끝난 것처럼 착각할 수 있는 곡 연주에 앞서 지휘자님이나 아니면 장내 방송으로라도 완전히 끝날 때까지 박수를 자제해달라는 당부가 짧게나마 있었다면 어제같이 맥빠지는 해프닝은 없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지휘자님이 대기실로 들어가시는 모습이나 서둘러 앵콜에 들어가시는 모습에서 그 허탈한 순간을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심정이 느껴지는 것 같았습니다. 
 
시벨리우스의 교향곡은 동시대의 슈트라우스나 말러에 비하면 듣기에는 상대적으로 간결하고 투명하게 들리지만, 사실 악보를 보면 리듬이 매우 까다롭고 파트 간 앙상블도 어긋나기 쉬운 어려운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제 공연에서도 바이올린 협주곡 1악장 후반에 플룻이 잘못된 시점에 들어와서 다른 파트와 계속 어긋나게 가는 바람에 지휘자님이 잠깐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이시던데, 그만큼 연주의 어려움이 시벨리우스 연주회가 드문 이유가 아닌가 싶고, 또 그만큼 어제 부천필의 공연이 의미있고 가치있는 것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심지어 베를린 필이나 토스카니니가 지휘하는 NBC 심포니 같은 최정상급 악단도 실황에서는 일부 파트가 잘못된 시점에 들어오는 황당한 실수가 간혹 있기 때문에 어제 플룻 파트의 오류는 물론 없으면 더 좋았겠지만 이해할 수 있는 실수였다고 생각합니다. 작품 자체가 까다로운 탓도 있었을 거구요. 그런데 이런 실수에 이어 3악장에서는 협연자님의 바이올린 줄이 끊어져 연주가 중단되는 해프닝까지 벌어지다보니 좀 불안한 기분이 점점 들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교향곡 5번 1악장 앞부분에서는 트럼펫의 삑사리가 너무 두드러졌고(물론 음이 잘못 나기 쉬운 악기이긴 하지만), 1악장에서 템포 몰토 모데라토에서 알레그로 모데라토로 옮겨가는 대목(점4분음=점2분음, 마 포코 아 포코 스트레토)은 일단 연결 부분이 눈치채지 못하게 교묘히 이어진 후 서서히 빨라지는 것이 이 대목의 묘미가 아닌가 싶었는데 그 지점에서 갑자기 템포가 빨라져서 그게 지휘자님의 의도적인 해석이었는지 오케스트라가 서둔 건지 좀 의아하게 여겨졌던 것 같습니다. 또 1악장 후반에 가서는 호른 파트가 현 파트랑 아슬아슬하게 어긋났기 때문에 이거 또 무슨 사단이 나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들었습니다. 
 
확실히 독주자의 화려한 기교나 오케스트라 총주의 강력한 사운드가 청중에게 어필하는 면이 큰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협주곡이 끝나고 청중의 박수가 끊이질 않았는데 분명 앵콜을 원하는 듯한 분위기로 느껴졌지만, 제발 앵콜을 안 해주시길 바랐습니다. 협주곡 연주의 여운을 간직하고 싶었기 때문이고, 그 날 만큼은 오직 시벨리우스의 음악 세계에만 빠져있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첫 연주곡인 7번 교향곡 연주 후에는 청중의 박수가 너무 짧아서 안타까웠는데 한편으로는 대중적인 어필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현실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7번은 개인적으로 아는 음악 중에 그 감동의 크기가 정말 심적으로 견디기 힘들 만큼 엄청난 영적, 초자연적인 힘이 내재된 작품이라 생각하는데 어제 연주 곡목 중에서는 가장 잘 된 연주 같았습니다.  
 
아무리 시벨리우스 기념 연주회라도 만약 핀란디아 같은 작품들로 구성된 연주회였다면 어제의 연주회만한 의미와 가치는 없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제 공연의 프로그램 구성은 대중성(바이올린 협주곡)과 작품성(교향곡 7번), 그리고 공연의 대미를 장식하는 5번 교향곡에 이르는, 아주 좋은 선곡과 구성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시벨리우스 음악에 대한 지휘자님의 열정과 오케스트라의 훌륭한 실력을 느낄 수 있었고, 일부 아쉬운 점은 아마도 리허설 시간이 충분하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짐작되는데 만약 오케스트라가 이런 레퍼토리에 시간을 두고 더 익숙해진다면 더욱 발전된 기량의 연주를 선보일 수 있겠다는 잠재력을 느꼈습니다. 객석에 편안히 앉아 연주 이곳저곳이 어떠했다고 말하긴 쉽지만, 은근히 앙상블이 까다로운 시벨리우스의 작품을 그토록 훌륭한 소리와 합주력으로 들려주신 것에 대해 감탄했습니다. 끝으로, 시벨리우스 교향곡처럼 연주하기 어려우면서도, 대중들의 호응을 이끌어내기는 어려운 작품에 도전해주신 지휘자님과 오케스트라 단원 여러분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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