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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후기

바그너 음악의 본질을 향한 새로운 걸음 (부천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바그너의 향연 III> 공연 리뷰)

  • 작성자*
  • 작성일2017-05-26
  • 조회수1627
바그너 음악의 본질을 향한 새로운 걸음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바그너의 향연 III> 공연 리뷰) 
 
 
바그너는 극 음악 작곡가이다. 이 뻔해보이는 명제는 바그너 음악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클래식 음악의 대표적 극 음악 장르는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한 오페라이다. 이 오페라라는 장르는 극적 흐름보다는 음악적 아름다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아리아로 인한 극의 단절은 선율의 유려함과 성악가의 기교를 통해 상쇄되며, 대부분의 청중들이 전통적인 오페라에서 기대하는 것 역시 노래의 선율이지 극의 줄거리가 아니다. 
바그너는 이러한 오페라의 극 음악 전통을 어느 정도 수용하면서도 자신만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 음악극(Musikdrama)은 ‘모든 요소들이 하나로 포괄되어 극에 봉사해야 한다’는 총체예술작품(Gesamtkunstwerk) 철학을 실현시킨 새로운 장르이다. 음악극에서는 노래가 가수의 기교와 선율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가 아니며, 오케스트라 또한 단순히 노래의 반주가 아니다. 바그너의 작품에서 오케스트라는 극 중 언어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다시 말해, 바그너의 음악은 가수들의 음악이 아니라 오케스트라의 음악인 것이다. 
바그너의 극 작품을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으로 편곡해서 연주하는 것의 의의도 여기에 있다. 극 인물과 라이트모티브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 또는 설명이 있다면, 관객들은 음악을 듣는 것 만으로도 극의 내용을 따라갈 수 있다. 노래 선율보다 오케스트라의 선율이 극에서 더 큰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부천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이하 ‘부천필’)는 서울시립교향악단에서 정명훈 음악감독이 추진했던 <니벨룽의 반지> 전곡 프로젝트가 중단된 이후에 바그너의 작품을 메인 프로그램으로 다루는 유일한 국내 오케스트라다. 최근에 많은 악단이 앞다투어 기획하고 있는 말러와 브루크너 연주를 가장 먼저 시도했던 오케스트라로서, 국내에서 실연으로 듣기 힘든 바그너에의 도전은 이목을 집중시켰다. 
공연을 보기 전부터 프로그램이 눈에 띄었다. 프로그램 배치에도 신경을 썼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탄호이저 서곡>을 첫 곡으로 선택함으로서 이 공연이 작년 <탄호이저> 전곡 연주의 연장선에 있다는 인상을 주는 구성을 취했으며, <니벨룽의 반지> 중 가장 유명한 <발퀴레의 비행>을 1부에서 맛보기로 보여주는 점 역시 재미있었다. 거기에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서곡>을 더해 바그너의 음악 중 비교적 대중적인 곡들이 1부에 포진되었다. 일반 관객들에게 낯설고 어려울 수 있는 바그너 음악에 적응할 수 있는 몸풀기와 같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연주의 수준은 몸풀기에 그치지 않았다. <탄호이저 서곡>은 시작부분 호른이 조금 삐걱거리기는 했으나 전체적으로 작년보다 더 자연스럽고 매끄러웠으며, <발퀴레의 비행> 역시 지난 달 교향악축제 앵콜 때보다 더 단단해진 모습으로 2부를 기대하게 했다. 
부천필의 가장 큰 장점은 매끄럽고 단단한 현악 파트이다. 국내 교향악단 중 독보적인 이 장점이 바그너를 연주하는데 있어서도 큰 도움으로 작용하는 듯 했다. 현악 파트는 주선율을 연주할 때는 물론이고, 관악 파트가 노래하는 배경 역시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매우 안정적으로 제공했다.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부천필이 국내 교향악단 중에서 빛날 수 있었던 이유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현악 파트는 앙상블 뿐 아니라 독주에서도 빛을 발했는데, 특히 <발퀴레>의 초입에 첼로 수석의 솔로는 이 공연의 백미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을 움직이는 연주였다. 
부천필의 관악기군, 특히 금관악기군은 유려한 현악기군에 비해 비교적 적은 관심 속에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날 그들은 현악기군 못지 않은 존재감을 과시했다. 압도적인 음량을 뽐냈으며, 타 악기군과의 밸런스도 훌륭했다. 특히 트럼본은 저음부를 받쳐주는 역할과 주선율을 연주하는 역할 모두 훌륭하게 해 내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종종 음정이나 테크닉적인 부분에서 실수가 있기는 했으나, 점차 개선될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개인적으로 박영민 지휘자는 무엇보다도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지휘자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날의 연주에서도 역시 그러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바그너의 음악은 자칫하면 지나친 과장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박영민 지휘자는 과장된 표현 없이 자연스러운 해석을 보여주었다. 이런 점이 현재의 부천필이 과거와 차별성을 가지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 뿐 아니라, 곡 전체에 뚜렷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힘을 줄 때와 안 줘도 될 때를 확실하게 구분하여, 곡의 클라이막스가 어디인지를 명확히 했다. <니벨룽의 반지>에서 모든 음악적, 극적 내용은 <신들의 황혼>에서 그 결론을 얻을 수 있는데, 이날의 연주에선 지휘자와 연주자들이 그 결론을 향한 방향성을 뚜렷하게 가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에너지의 적절한 분배의 결과로, 이 날의 <무언의 반지>는 4악장 구성의 교향곡과 같다는 인상을 주기도 했다. 
부천필이 탄호이저 오페라 콘체르탄테에서 어디로 향하고자 하는지를 보여주었다면, 이 날의 공연은 그 곳으로 걸음을 내딛은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국내에선 비교적 자주 연주되지 않는 바그너라는 작곡가에 오케스트라로서 색다른, 하지만 어찌보면 더 본질적인 접근을 했다는 점, 또 장점은 유지하고 부족했던 점은 보완해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 연주였다. 계속 새로움과 발전을 추구하는 부천필의 다음 걸음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