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관람후기

R.슈트라우스 탐구 II 리뷰

  • 작성자*
  • 작성일2017-07-14
  • 조회수1599
바그너 시리즈를 완주한 부천필의 다음 도전과제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다. 슈트라우스는 바그너로 상징되는 반음계주의와 신독일악파 표제음악의 연장선에 있는 작곡가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바그너 시리즈의 후속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바그너와 슈트라우스의 음악은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데, 바그너의 음악이 힘과 의지가 돋보이는 음악이라면, 슈트라우스는 거기에 조금의 장난기와 관조적 태도가 더해진 것 같다는 개인적인 막연한 인상이 있었다. 부천필과 지휘자 박영민이 나의 이 인상에 어떤 확신을 넣어 줄 수 있을지 궁금했다. 
프로그램이 흥미로웠다. 비교적 초기 작품들인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Op.30>과 <영웅의 생애, Op.40> 사이에 말년의 작품 <호른 협주곡 2번>이 끼워진 모양새이다. 전성기의 작곡가와 나이든 노장의 작품을 비교해 보는 느낌이었다. <짜라투스트라>는 니체의 철학시에 기초한 교향시(Symphonic Poem)인데 인간과 자연에 대한 슈트라우스의 생각을 표현하는 작품이다. 여기서 그가 관념적 주제를 음악에 대입하여 표현하는 방식은 매우 흥미롭다. 그 유명한 서주에서 연주되는 자연의 주제는 C장조이다. 반면 인간을 상징하는 주제는 B장조와 B단조인데 이는 자연과 충돌하는 조성 관계로서 ‘대립’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결국 자연의 C장조로 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는 이끈음(리딩톤)으로 읽히기도 한다. 
종합해서 말하자면, 물질문명에 찌든 인간(B)은 자연 또는 내면의 자신(C)과 대립각을 세우지만, 결국 자연의 이상에 수렴된다는 사상을 슈트라우스는 음악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시각에서 보면, 현재의 과학만능주의를 벗어나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자, 즉 초인(Ubermensch)의 자세를 지향해야한다는 주장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연주는 부천필다웠다. 과장 없이 곡이 말하고자하는 바를 투명하게 드러내는 연주였다. 금관 파트가 돋보이는 연주였는데, 지난 번 연주보다도 더 안정적으로 노래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대부분의 한국 오케스트라에서 금관은 꾸준히 단점으로 지적되어 왔는데, 부천필 금관의 최근 모습을 보자면 적어도 부천필에서는 그런 걱정을 조금 덜 수 있을 것 같다. 원래 안정적이었던 트럼펫과 트럼본은 물론이고, 호른도 풍부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후세 사람들에 대하여’에서의 마지막 선율 연주가 인상적이었다. 
‘과학에 대하여‘에서의 푸가는 연주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였다. 자연(C-G-C)과 인간(B-F#-D)의 모티브가 뒤섞인 주제는 ‘가장 과학적인’ 양식인 푸가를 통해 전개되었다. 각 파트가 자신의 자리에 정확히 들어오면서도 균형을 무너뜨리지 않고 흐름을 이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각 파트의 밸런스를 잘 맞춘 결과라고 생각되는데, 박영민 지휘자의 조율 능력과 단원들 간의 호흡이 돋보였다. 
<호른 협주곡 2번>은 매우 흥미로운 작품이다. 그의 초기 작품들이 현란한 관현악법과 철학적 사고로 가득 차 있다면, 이 말년의 작품은 모든 것을 내려놓은 노대가의 모습을 보여준다. <차라투스트라>에서 나타났던 반음계주의는 축소되었고, 깔끔하고 경쾌한 악구를 노래한다. 
김홍박의 호른은 내내 빛을 발했다. 슈트라우스의 호른 페시지는 어렵기로 유명한데, 1악장에서의 작은 음이탈 말고는 별다른 실수를 보이지 않았으며, 호흡 역시 완벽했다. 2악장은 슈트라우스의 곡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간단하지만 아름다운 선율을 가진 악장인데, 이 역시 완벽하게 연주해 냈다. 앵콜곡은 호른으로 연주 가능한 모든 테크닉을 실험하는 듯 했다. 다양한 음색의 변화와 테크닉을 이렇게 안정적으로 소화할 수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었다.<영웅의 생애>는 슈트라우스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곡이자, 그의 화려한 관현악법이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영웅의 대항자’에서의 플룻, ‘영웅의 반려자’의 바이올린 솔로 등 슈트라우스는 악기를 어떻게 다루어야 효과적인지를 아는 작곡가이다. 
연주는 정말 흠잡을 데 없었다. 정말 작은 실수들을 제외하고는 정말 나무랄 데가 없는 연주였다. 악장의 바이올린 솔로는 정확한 음정과 강약 조절로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하는 듯 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베이스와 첼로는 저음부를 든든하게 받쳐주어서 풍부한 울림을 만들었으며, 바이올린 파트에서는 윤기가 흘렀다. 저음과 고음, 관악과 현악 간의 밸런스도 완벽했다. 이는 지휘자의 역량을 볼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 같은 악단이라도 지휘자의 변화에 따라 울림과 균형이 변하는 모습을 종종 보아 왔기 때문이다. 박영민 지휘자는 단원들끼리 서로의 소리를 잘 듣고 균형을 맞추도록 성공적인 리드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호른이었다. 부천필의 호른은 최근 점차 안정화 되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프레이즈를 시작할 때 위태로운 순간들이 꽤나 있다. <영웅의 생애>의 첫 부분이 그랬다. 입 근육을 사용하는 관악 연주자들이 여러 마디 쉬고 나올 때 겪는 보편적인 문제이지만, 동시에 모든 연주자가 더 높은 단계를 위해 극복해야할 문제이기도 하다. 다음 연주에는 더 나아진 모습을 기대해 본다. 
훌륭한 연주였음에도 불구하고 롯데콘서트홀의 건조하고 잔향 많은 음향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얇게 마른 악기 소리가 다음 프레이즈까지 남아있어서 감상에 방해가 되었다. 롯데홀의 또 다른 단점은 연주회가 자주 열리지 않아, 음향을 확인하고 고쳐나갈 기회 역시 적다는 점이다. 오케스트라 연주회가 자주 열려서, 그 때마다 홀의 부족한 점을 조금씩 보수해 나갈 수 있기를 희망하는 바다. 
이 날 부천필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관조적이면서도 장난기 있는 바그너’라는 개인적 인상에 확신을 주었다. 그리고 바그너보다 더 균형 있게 오케스트라를 다루는 작곡가라는 인상 역시 받았다. 내 개인적 인상이 정설이든 아니든, 부천필이 바그너에 이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도 매우 성공적으로 소화해냈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부천필은 다음 발자국을 어디로 내딛든 간에 믿고 들을 수 있는 오케스트라로 점차 성장해가고 있으며, 개인적으로도 점차 더 높은 기대치를 갖게 된다. 다음 연주 역시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