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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필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 연주 Ⅵ - ‘Bruckner Begins'
- 일자2009-02-27(금) 19:30
- 장소 부천시민회관 대공연장
- 가격S석 15000 원 A석 10000 원
- 연령초등학생 이상 입장
- 주최부천시
- 주관부천필
- 문의032-320-3481
공연소개
* 주최측 사정으로 인하여 지휘자가 임헌정 지휘자에서 김영언 지휘자로 변경되었습니다.관객 여러분의 양해 바랍니다.
부천필의 또 하나의 도전, 부천필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 연주
Complete Bruckner Symphonies
부천필의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 시리즈, 그 여섯 번째 음악회의 주제는 ‘브루크너 비긴즈’이다. 브루크너는 교향곡 제1번을 작곡하기 전까지 관현악단과 접할 기회가 없고, 종교적인 환경, 엄격한 대위법을 공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소나타 교향곡에 대해서 깊은 지식이 없었다. 바단조 교향곡이 있지만 브루크너다운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브루크너 교향곡 제1번은 다른 교향곡에 비해서 성격적, 기법적으로 세분된 음표를 즐겨 사용하여 이단자적인 존재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브루크너의 기본적인 형식의 확립, 작품의 장대함 금관악기의 대담하고 표정적인 웅대한 사용법 등 브루크너 교향곡의 작품이 서서히 드러나는 작품이라는데 의미가 있다.
또한 이번 음악회는 고전적인 교향곡 형식을 확립한 작곡가 하이든의 교향곡 제94번을 연주한다. 이 곡은 하이든의 교향곡을 대표하는 걸작으로 ‘놀람’이라는 부제로 더욱 유명하며 제2악장에서의 사랑스러운 선율은 누구에게나 잘 알려져 있다. 서거 200주년을 기념한 하이든과 부천필의 전곡연주를 통해 새롭게 조명 받고 있는 브루크너의 교향곡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뜻 깊은 자리가 될 것이다.
지휘 : 김영언
연주 :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연주곡목
하이든, 교향곡 제94번 사장조 ‘놀람’
H. J. Haydn(1732-1809), Symphony No.94 in G Major 'Surprise'
Ⅰ. Adagio cantabile - Vivace assai
Ⅱ. Andante
Ⅲ. Menuet - Trio : Allegro molto
Ⅳ. Finale : Allegro di molto
Intermission
브루크너, 교향곡 제1번 다단조
A. Bruckner(1824-1896), Symphony No.1 in c Minor
(* Vienna [Revised] version, 1890-1891)
Ⅰ. Allegro
Ⅱ. Adagio
Ⅲ. Scherzo. Schnell
Ⅳ. Finale. Bewegt, feurig
연주프로그램 해설
Bruckner Begins
-거대한 전환점
빈 고전파의 교향곡은 높고 찬란한 봉우리였다. 하이든, 모차르트 시대에 음악적으로 완비된 교향곡은 베토벤과 함께 양적 팽창의 한계에 이르게 된다. '합창 교향곡'의 마지막 악장에 인간의 목소리가 부가된 것은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이후 교향곡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 되었다. 19세기 전반 낭만주의 작곡가들은 교향곡 역사의 깊은 계곡을 이루며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였다. 뒤이은 브루크너의 교향곡에 대한 열망은 골짜기를 벗어나 또 다른 정상을 향하는 지극히 힘든 여정일 수밖에 없었다.
낭만주의 작곡가들의 주된 특징 중 하나는 자유로운 악상전개에 있다. 이는 교향곡의 논리적 구성에서 비롯되는 긴 호흡과 어느 정도 배치되는 것이었다. 과거와 다르게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맞추어 음악도 순간의 환영을 포착해야만 했다. 짧은 길이의 피아노곡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슈베르트, 멘델스존, 슈만 등은 기악음악의 핵심이 어디에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낭만주의 작곡가들은 고전 교향곡 각 악장의 짜임새 있는 전개방식을 존중하되, 이를 자유로운 구성으로 통합하려고 애썼다. 의미 있는 실험은 이들의 안타까운 요절로 중단되는 듯 했으나, 19세기 후반에 이르면 교향곡 창작에 있어 두 개의 돌파구가 열리게 된다. 하나의 동기에서 극도로 다양한 모티브들이 파생되어 서로 결합하는 브람스의 맞은편에는 복잡한 음향의 대비를 중심으로 거대한 양적 확대가 이루어지는 브루크너가 자리 잡고 있었다.
교향곡이 한 예술가를 평가하는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 이후 작곡가들은 점점 더 숙고를 거듭하여 작품을 내놓게 되었다. 모차르트가 불과 8살에 쓴 제1번 교향곡을 베토벤은 나이 서른에 이르러서야 발표했으며, 브루크너, 브람스는 마흔을 넘어서야 완성하게 된다. 제1번 교향곡 이전 브루크너는 이미 두 곡의 교향곡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스스로 선배들의 작품과 비교해 부끄럽지 않다고 판단이 설 때까지 번호 붙이기는 계속 유보될 수밖에 없었다. 바그너에게 경도된 브루크너에게 있어 교향곡은 거대한 음향의 서사시와도 같았다. 그의 교향곡은 인간사회의 불가사의한 내면을 그린 바그너 악극에 대한 일종의 기악적 응답이었던 것이다. 시대는 빠르게 변화하는 동시에 복잡하게 확대되고 있었다. 짧고 매력 있는 선율이 일반 대중을 위한 것이라면, 긴 호흡의 난해한 음악은 진지한 청중을 겨냥한 야심찬 예술가의 도전장이었다. 브루크너는 결코 바그너의 악극을 관현악으로 옮기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혼돈에 가득한 바그너와 달리 그는 고전 교향곡의 기본 구성을 바탕으로 음향 단락들을 확대해 나갔다. 이는 소나타 악장 중 2개의 주제가 등장한 뒤 종결부가 새로운 주제로 확대되는 것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유능한 오르간 주자였던 브루크너는 체질적으로 기악음악 작곡가였던 것이다. 1866년 완성된 브루크너의 제1번 교향곡은 19세기 후반 교향곡 쇄신의 본격적인 첫 시도가 된다. 브람스의 제1번 교향곡이 나오기까지는 아직 8년의 시간이 남아있었다. 주로 종교음악을 쓰던 무명의 시골 작곡가 브루크너는 교향곡 한 편으로 세상과 대결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이제 교향곡은 베토벤이라는 첫 번째 한계를 돌파하여 말러의 거대 교향곡에 이르는 팽창의 전환점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 모든 일은 바로 하이든이 런던에서 새로운 교향곡 세트를 주문받은 일에서 비롯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이든은 궁정과 교회가 아닌 불특정 다수의 일반 청중을 위해 런던 교향곡 시리즈 12곡(93~104번)을 썼다. 이로써 교향곡은 근대사회를 대표하는 음악장르로 떠오르게 된다.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으로 자유로운 시민계층이 음악 소비층의 대다수를 이루게 되었고, 교향곡은 이들의 취향에 맞추어 다양한 소리형태들의 유기적인 결합으로 확대된 것이다. 교향곡이 서양음악의 총아로 부상하는데 있어 견인차가 된 하이든의 94번 교향곡과 거대 교향곡의 미래를 연 브루크너의 제1번 교향곡은 모두 교향곡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을 이루는 작품들이다. 오늘 연주회는 음악사의 드라마틱한 장면 두 개를 생생히 전달할 것이다.
글_고 우(작곡가)
하이든, 교향곡 제94번 사장조 ‘놀람’
H. J . Haydn(1732-1809), Symphony No.94 in G Major 'Surprise'
궁정음악가 하이든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온 것은 1790년 가을이었다. 그 해 하이든이 모시던 니콜라우스 에스테르하지 후작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파울 안톤 후작이 그 뒤를 잇게 되면서 하이든에게 자유가 주어지게 되었다. 음악에 별 관심이 없던 파울 안톤 후작은 하이든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았고 하이든의 지위와 연금도 그대로 두었기에 하이든은 사실상 자유의 몸이 되었다. 때마침 런던의 공연기획자이자 바이올린 주자인 요한 페터 잘로몬이 하이든을 런던으로 초청했고 하이든은 이를 기쁘게 받아들였다. 두 차례의 런던 방문을 통해 12곡의 교향곡을 발표한 하이든은 국제적인 작곡가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이때 탄생한 12곡의 교향곡(93번부터 104번까지)들은 하이든의 런던 체류 중에 작곡·초연되었기 때문에 ‘런던교향곡’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대규모 청중을 위한 12곡의 런던교향곡 시리즈는 작곡의 출발점부터 달랐다. 궁정음악가의 제약에서 벗어난 하이든은 더 이상 후원자 개인의 취향에 음악을 맞출 필요가 없었다. 런던교향곡은 특정인을 위한 음악이 아니기에 하이든의 이전 교향곡들보다 더 장대하며 실험적이며 드라마틱하다. 하이든은 자신의 독자적인 스타일을 더욱 깊게 추구하면서도 영국풍의 기호에 맞추어 트럼펫과 팀파니를 곡 전체에 걸쳐 사용했고, 교향곡 제99번에는 당시에 거의 사용되지 않았던 클라리넷을 편성해 더욱 다채로운 음향을 추구했다.
1792년 3월 23일에 런던의 하노버 스퀘어에서 초연된 교향곡 제94번 ‘놀람’은 그의 런던교향곡들 중에서도 가장 호평 받는 작품 중 하나다. 하이든이 변주곡 풍의 느린 2악장의 16마디에서 사용한 유명한 포르티시모의 코드가 듣는 이들을 놀라게 했기 때문에 이 교향곡에는 ‘놀람 교향곡’이란 별명이 붙게 되었다. 이 코드는 소위 “마님들의 잠을 깨우기 위해” 사용했다고 알려져 왔으나 하이든 자신은 단지 “뭔가 새로운 것으로 놀라게 하려는 의도”만 있었다고 증언했으며, 후에 하이든의 전기 작가인 그리징어가 이 문제 대해 귀찮을 정도로 집요하게 질문했을 때 하이든은 신경질적으로 “마님들의 잠을 깨우는 것은 바라지도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자필악보를 보면 하이든이 나중에서야 이 코드를 첨가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아무튼 2악장의 포르티시모 코드 덕분에 교향곡 제94번은 매우 유명해졌고, 1800년경의 빈 사람들은 이 교향곡을 ‘북치는 교향곡’이라 부르기도 했다.
1악장은 조용하고 느린 서주로 시작해 빠른 주제부로 향하며 “전원적인” 인상을 주는 제1주제와 대조적인 요소로 구성된 제2주제로 이어진다. 계속되는 전조로 색채감을 표현한 서주는 특히 비범하다.
하이든 교향곡 가장 유명한 악장이라 할만한 2악장은 16마디의 포르티시모 코드로도 유명하지만 잘 구성된 변주 풍의 전개도 아름답다. 단순한 느낌을 주는 2악장의 주제는 하이든이 그의 오라토리오 <사계> 중에서 농부의 아리아에 사용한 민요와 비슷한 악상을 지니고 있어 무척 소박하다.
3악장 미뉴에트는 점잖은 궁정무곡이라고 하기에는 비상식적으로 빠른 템포로 되어있어 떠들썩한 시골 춤의 느낌마저 든다. 트리오에는 훌륭한 뛰어난 바순 솔로가 나오며 그 템포는 무용수들의 다리가 꼬일 정도로 빠르다.
4악장은 매우 빛나는 악상을 지닌 음악으로 전체 4개의 부분으로 나눠져 제1부와 4부는 제시부와 재현부 역할을 하고, 중간 두 개는 전개부의 역할을 맡고 있다. 마지막 부분에서 팀파니가 일시에 울려 퍼진 후 한숨 돌릴 사이도 없이 격렬하게 울리는 코다로 결말에 이른다.
브루크너, 교향곡 제1번 다단조
A. Bruckner(1824-1896), Symphony No.1 in c Minor
평생 공부하는 자세를 잃지 않았던 브루크너는 30세가 넘어서도 계속 스승의 가르침을 받으며 작곡기법을 연마했다. 1854년부터 61년까지 계속된 시몬 제흐터와 함께 수업시대는 브루크너를 대위법의 달인으로 만들어주었지만 브루크너는 그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아마도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교향악적 충동을 느꼈던 것일까. 이후 계속된 오토 키츨러와의 수업(1861~63)과 이그나츠 도른과의 수업(1863~65) 과정을 거치며 브루크너는 슈만과 멘델스존을 모델로 한 연주회용 서곡 g단조(1862~63)를 작곡해 관현악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은 그 자신을 주로 종교음악작곡가로 인식했던 브루크너는 키츨러의 수업 이후에 d단조 미사곡(1864)을 작곡했고, 계속해서 고풍스러운 e단조 미사(1866)와 좀 더 바그너적인 f단조 미사(1868)를 내놓으며 “19세기의 중세인”이란 별명에 걸맞게 종교음악 대작들을 연달아 내놓았다. 그와 동시에 1865년부터 1866에 걸쳐 그가 교향곡 제1번으로 인정했던 첫 번째 교향곡을 완성하면서 교향곡 작곡가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브루크너는 교향곡 1번을 완성하기 전에 이미 두 곡의 습작 교향곡을 작곡했지만 이를 본격적인 작품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이 두 작품에는 각각 ‘제00번’과 ‘제0번’이라는 우스꽝스러운 번호가 붙게 되었다. 하지만 브루크너는 새롭게 완성한 c단조 교향곡에는 당당히 ‘제1번’이란 번호를 붙이고 “자유로운 성숙기의 첫 번째 교향곡”이라 칭했다.
첫 번째 교향곡을 완성하고 자신감에 차있던 브루크너는 이 교향곡의 피아노 편곡악보를 당대 유명 음악가들에게 이 작품을 보여주었는데, 그들 가운데는 바그너 지휘자인 한스 폰 뷜로우도 끼어있었다. 브루크너가 1악장을 연주해보이자 뷜로우는 트롬본이 나오는 94마디의 악구에 대해 “매우 드라마틱하군!”이라 말하며 감탄했다. 브루크너 자신도 이 교향곡에 각별한 만족감을 표시하며 “건방진 아이(das kecke Beserl)”라는 애칭을 지어주기도 했는데, 이 별명은 이 교향곡에 충만한 에너지를 잘 표현해준다.
1악장은 어두운 c단조의 행진곡으로 시작한다. 당시로서는 행진곡으로 교향곡을 시작하는 것은 매우 드물었기 때문에 신비로운 느낌을 주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음악이 진행될수록 처음의 행진곡은 점차 새로운 음악으로 변형되어 첫 번째 클라이맥스에 다다르면 세 개의 모티브들로 분화된다. 노래하는 듯한 제2주제도 제1주제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통일감을 준다. 그러나 94마디에서 트롬본이 포효하면서 음악은 급반전된다. 그 장대한 악상은 듣는 이들을 압도하기에 충분하며, 마치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 중 ‘순례자의 합창’을 떠올리게 하는 신성함과 장엄함을 지니고 있어 매우 인상적이다. 종결부에 이르면 다시 어두운 c단조가 중심을 이루고 있지만 간혹 C장조의 빛을 내비치며 4악장에서 펼쳐질 긍정적 결말을 암시하기도 한다.
2악장의 느린 아다지오는 브루크너가 특히 사랑했던 음악으로, 브루크너의 열렬한 숭배자인 헬름 역시 2악장을 가리켜 “베토벤의 아다지오 이후 매우 깊이 있고 중요한 아다지오”라 극찬하기도 했다. 그러나 첫 스무 마디까지 쉼 없이 전진하며 끊임없이 새롭게 변모해가는 아다지오의 주제를 잘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오히려 누구에게나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음악은 3악장이 아닐까 싶다. 3악장을 이루는 광포한 스케르초와 동경하는 듯한 트리오는 브루크너 당대에도 거의 모든 사람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베토벤의 스케르초와 비슷한 강한 추진력이 있어 피날레를 향해 치닫는 힘은 대단하다.
4악장 피날레는 브루크너 교향곡으로는 드물게 처음부터 선언적으로 시작한다. 아마도 브루크너가 이 교향곡에 “건방진 아이”라는 별명을 지은 것도 4악장의 자신감 넘치는 도입 주제 때문이 아닌가 싶다. 브루크너 자신도 피날레의 첫 부분에 대해 “이 건방진 아이는 곧장 ‘여기 제가 있어요!’라고 말한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마치 베토벤 교향곡 제5번처럼 브루크너의 제1번 역시 1악장에서는 c단조의 어둠으로 시작해 4악장에서는 C장조의 광명이 비쳐오지만 브루크너는 이 과정을 좀 더 서서히 진행시킨다. C단조로 시작된 피날레는 점차 단계를 밟아 C장조로 향하고 마침내 금관악기의 벅찬 연주로 이어지는데, 금관악기군의 연주는 마치 합창과 같은 충만한 음향을 뿜어내며 브루크너 특유의 사운드를 만들어낸다.
브루크너는 이 교향곡을 몇 차례 개정하여 1891년에 빈 개정판을 완성했기 때문에 오늘날 이 교향곡은 1865년의 린츠 판본과 1891년의 빈 판본의 두 가지 버전이 존재한다.
글_최은규(음악 칼럼니스트 / <교향곡은 어떻게 클래식의 황제가 되었는가>의 저자)
* 지휘자 변경으로 인하여 공연 취소를 원하시는 분은 아래 전화로 연락주시면 취소처리해드리겠습니다. (지휘자 변경 공지일(-2009.2.4) 이전 예매 관객에 한함)
다시 한 번 관객 여러분의 양해를 바랍니다.
문의 : 032-320-3481 부천시립예술단 사무국
출연자소개
[지휘 : 김영언]
- 서울 음대 작곡과 졸
- 라이프찌히 국립음대에서 지휘 전공 재학 중 독일 작센 주의 안나베르그 오페라극장에서 지휘전공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세미나에서 최종 선발되어 Erzgebirgisches Sinfonie Orchester 을 지휘
- Westsaechsisches Sinfonie Orchester 을 객원 지휘
- 카셀 국립대학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 역임
- 2006년 통영음악제 개막제,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데뷔 무대를 가졌으며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새로운 기획시리즈인 21세기 음악축제에서 다양한 현대음악을 연주, TIMF 앙상블(통영국제음악제 상주 연주단체), 마드리 실내악단 등 지휘
- 2007, 2008 성남아트센터 차이코프스키 발레 호두까기인형 지휘자로 성공적인 공연
- 현 서울대 강의중으로 경원대,삼육대,선화예고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