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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만 & 브람스 페스티벌 - 챔버뮤직 시리즈 Ⅱ
- 일자2010-06-03(목) 19:30
- 장소 부천시민회관 대공연장
- 가격전 석 7000 원
- 연령초등학생 이상 입장
- 주최부천시
- 주관부천필
- 문의032-625-8330
공연소개
슈만 & 브람스 페스티벌 - 챔버뮤직 시리즈 Ⅱ
2010년,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선택한 작곡가는 슈만과 브람스이다. 말러와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연주를 비롯하여 모차르트, 베토벤 등 당대 최고 작곡가들의 명곡을 시리즈로 연주하여 음악애호가들의 찬사를 이끌어 냈던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낭만주의 음악의 거장 로베르트 슈만(Robert Schumann, 1810~1856)의 탄생 200주년이 되는 2010년을 맞이하여 슈만과 브람스의 실내악 음악과 함께, 과거와 현대를 넘나드는 실내악의 명곡들을 연주한다.
슈만 & 브람스 페스티벌 ‘챔버뮤직 시리즈’는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자랑하는 연주자들의 아름다운 선율로 평소에 듣기 힘들었던 실내악곡들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며, 2010년 한해 음악애호가들의 가슴을 충만하게 할 것이다.
연주_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실내악팀
연주곡목
브람스, 피아노 3중주곡 제3번 다단조 작품101
J.Brahms, Piano Trio No.3 in c minor Op.101
Ⅰ. Allegro energico
Ⅱ. Presto non assai
Ⅲ. Andante grazioso
Ⅳ. Allegro molto
Intermission
브람스, 현악 4중주곡 제1번 다단조 작품51-1
J.Brahms, String Quartet No.1 in c minor Op.51-1
Ⅰ. Allegro
Ⅱ. Romanze. Poco adagio
Ⅲ. Allegretto molto moderato e comodo
Ⅳ. Allegro
연주프로그램 해석
브람스, 피아노3중주곡 제3번 다단조 작품 101
J.Brahms, Piano Trio No.3 in c minor Op.101
브람스는 1886부터 3년간 매년 여름을 스위스의 웅대한 풍경으로 둘러싸인 툰 호수 근처의 툰 마을에서 살았다. 이 툰으로 피서 갔을 때 많은 실내악이 만들어졌는데 이 곡도 1886년에 툰에서 만들어졌다. 그 이유는 툰 체재 중에 브람스는 거의 주말마다 베른의 친구인 비트만의 집으로 가서 실내악 앙상블을 즐기는 것이 일과였기 때문에 실내악에 상당히 매력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첫 번째 해는 브람스에게 있어 슬픔도 괴로움도 적은 즐겁고 행복한 시기였고, 또 생애 중에서 가장 정력적인 창작 활동을 계속 할 수 있었던 해였다. 이런 사실로 이 해에 만든 곡은 웅대한 경치를 반영하여 힘차고 씩씩하며 위엄을 가짐과 동시에 정열이 풍부하다. 게다가 북독일의 고향의 들과 숲에 대한 향수와 비슷한 분위기도 숨기고 있다. 그리고 이 3중주곡의 성격도 그런 것이지만, 특히 이 향수를 강하게 나타내고 있고, 또 그 반면 정력적인 열정도 격렬하게 태우고 있다.
1886년 5월에 브람스는 툰으로 가서 같은 해 가을까지 이 곳에 머물렀다. 그리고 이 동안에 3중주 곡을 만들었다. 당시의 브람스의 비망록에 따르면, 이 해 8월에 가곡과 합창곡 외에 첼로 소나타 바장조, 바이올린 소나타 가장조와 함께 이 곡의 3중주곡이 완성되었다고 한다.
개인적인 초연은 베른에 있던 친구인 비트만의 살롱에서 완성후 곧바로 행했지만, 공개초연은 1886년 12월 20일, 부다페스트에서 후바이의 바이올린, 포파의 첼로, 작곡가 자신의 피아노로 연주되었다. 1887년 짐로크사에서 출판되었다.
브람스, 현악 4중주곡 제1번 다단조 작품51-1
J.Brahms, String Quartet No.1 in c minor Op.51-1
브람스는 실내악 중에서도 가장 정통적이고 표준적이라고 하는 현악 4중주곡을 3곡 밖에 남기지 않았다. 게다가 이것들은 모두 40대가 되고 나서의 작품이다. 그리고 이 3곡뿐이라는 사실이 의외로 적다고 생각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은 브람스는 이 종류의 최초의 2곡(작품51)을 발표하기 전에 적어도 20곡 이상의 현악 4중주곡을 작곡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자기 비판이 심한 사람이기에 여기에 만족할 수 없어, 그것들을 발표하지 않고 전부 파기해버렸다.
브람스로서는 교향곡 제1번을 43세 때까지 완성하지 않았던 것은 베토벤의 불멸의 9곡에 대한 공경심에 따른 것과 마찬가지로 베토벤의 일련의 현악 4중주곡과 비교하여 아무래도 자신의 작품에서 역부족을 느꼈을 것이다. 확실히 베토벤의 일련의 현악 4중주곡은 19세기 이후의 작곡곡가들에게는 너무나도 큰 존재임에 틀림없다. 그 때문에 19세기의 작곡가는 단순히 가정적인 모임이 아닌 참다운 의미의 연주회를 위한 현악 4중주곡을 쓰기에는 지나치게 신중한 경향이 있었던 것 같다. 멘델스존과 슈만, 그리고 브람스 같은 작곡가는 현악 4중주 곡에 대해서 좀처럼 솔직하게 결단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또 실제로 현악 4중주곡은 고전파 작곡가들에 의해서도 고도 성장을 이뤘고, 형식과 내용면으로 봐서 그 이후의 낭만파 작곡가들로부터 경원되기 쉬운 곡 종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낭만파 혹은 그 이후의 작곡가들은 실내악에서 현악 4중주라는 한정된 틀 안에서 생각하기보다도 더 자유롭게 편성을 생각하여 거기에 맞는 색채 중에서 자신의 환상을 펼치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브람스도 현악 4중주곡보다 오히려 다른 편성의 것에 흥미를 기울이는 경향을 보였다.
그렇다고 해서 브람스가 남긴 3곡의 현악 4중주곡이 가치가 낮은 작품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뿐 아니라 브람스가 자신을 갖고 세상에 내보낸 작품인 만큼 이들 3곡은 치밀한 구성과 깊은 내용을 갖고 있다.
브람스가 새로운 마음과 자세를 갖고 현악 4중주곡을 작곡하기 시작한 것은 1860년대 후반인 듯 하다. 다만 그 소재는 1859년의 스케치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1865년 12월 16일에 요아힘이 브람스에게 보낸 편지에는 ‘자네의 다단조의 현악 4중주곡은 완성했는가? 만약 그렇다면 18일에 연주하게 해 주지 않겠나’ 라고 적고 있다. 이것으로 봐서 브람스는 이미 전에 4중주곡의 계획을 요아힘에게 말했음에 틀림없다. 또 이 편지의 18일이라는 것은 다음해 1월 18일에 함부르크에서 예정되어 있던 연주회를 말한다. 그리고 브람스는 1866년 1월 11일에 함부르크에 도착하여, 거의 3주일을 거기에서 머물렀다. 요아힘이 보낸 편지에 브람스는 답장을 하지 않은 것 같은데 이것은 브람스로서는 이러한 예정이 있었고 함부르크에서 요아힘과 만나게 된다는 것과 4중주곡이 아직 만족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에 따른 것이다.
그리고 사실 함부르크 체재 중에 이 4중주곡이 연주되었다는 흔적은 없는 것 같다. 브람스는 그 후도 아마 이 곡을 수정한 듯 하며, 1866년 8월 17일에 바덴바덴 가까이에 있는 클라라가 사는 리히텐탈에 갔을 때에 8월의 클라라의 일기에 ‘다단조의 현악 4중주곡이 브람스에 의해 연주되었다’라고 있는 것처럼 이 곡을 피아노로 시연하여 클라라에게 들려줬다. 이러한 과정을 겪은 다단조의 곡이 현재의 작품 51-1의 4중주곡의 전신인 것이 거의 틀림없다고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자기비판이 엄격하였던 브람스는 이것으로 이 곡을 공표한 것이 아니며, 다시 가필을 거듭하고, 동시에 또 1곡의 가단조의 4중주곡의 작곡도 하게 되었다. 이 곡은 드디어 작품51-2가 된다. 클라라는 1869년 6월 10일의 일기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최근 브람스는 2개의 훌륭한 4중주 악장을 갖고 왔다. 하나는 제1악장이고 또 하나는 마지막 악장인데, 이 마지막 악장은 아주 멋지고 아다지오로 넘치고 있다. 이것에 대해서 제1악장은 그다지 자신의 취향에 적합한 것은 아니다. 브람스 자신도 완전히는 좋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아마 그것을 바꿀 것이다.’
여기에서 화제로 되어 있는 두 악장이 3년 쯤 전에 브람스의 피아노로 클라라가 들은 곡과는 다른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실제로 브람스는 짐로크에서 보낸 편지에서 ‘1곡이나 2곡(의 현악 4중주곡)을 준비하도록 정말로 노력하고 싶다.’고 말하며, 6월 24일에는 4중주곡 2곡의 출판을 약속하고 있다. 그러나 원고를 아직 건네지는 않았다. 1860s년대 후반에는 브람스의 창작의 주력은 <독일 레퀴엠>의 완성에 향해져 있었다.
그리고 또 세월이 흐른다. 그 동안에도 4중주곡은 브람스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던 것 같다. 1873년 봄, 브람스는 바이에른 산중의 슈타른베르크 호수 근처의 투칭에서 쾌적한 피서를 즐기면서 ‘하이든 교향곡’의 작곡을 하며, 또 2곡의 현악 4중주곡을 완성시키려고 했다. 이 체제 중에 친해진 사람들 중에는 요제프 발터의 4중주단 멤버가 있고, 브람스는 일단 완성한 2곡의 4중주곡을 헤르만 레비의 집에서 뮌헨에서 온 4중주단에게 몇 번 시연하게 하고는 그것에 수정을 가했다. 그리고 8월 27일에 짐로크에게 보낸 편지에 따르면, 2곡 모두 이미 완성되었다고 쓰고 있다. 그리고 그것에 이어서 브람스는 2곡을 쓴 4손 피아노용으로도 편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