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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리뷰][월간리뷰]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클래식계에 신선한 충격이 될 말러 연주

  • 작성일2019-06-05
  • 조회수2141
[리뷰]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클래식계에 신선한 충격이 될 말러 연주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제248회 정기연주회 
5월 17일(금)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월간리뷰 제공 
 
 
부천필은 지금까지 클래식연주에 열정을 쏟아왔고 그만큼 각광을 받고 있다. 특별히 말러 교향곡전곡 CD를 펴내는 등 관심을 기울여왔고 그만큼 성과도 거두어 ‘말러’ 하면 부천필을 떠올리게 되었다. 이번공연에서는 부천필의 더욱 적극적인 면을 느낄 수 있었다. ‘박영민의 말러 제3번’이라는 공연명부터 그러했다. 지휘자박영민은 포디엄 앞에 놓여있던 보면대를 비우고는 마치 바이올리니스트가 바이올린 소리에 빠져들 듯 지휘자 자신이 오케스트레이션에 푹 빠져보려는 각오를 내비쳤다.  
 
난해한 작품, ‘말러 교향곡 제3번’ 
 
‘말러교향곡 제3번’ 공연은 시작부터 음악적으로나 미학적으로나 적합지 않아 큰 암초에 부딪히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다. 작곡가 말러는 아예 시작부터 “이 작품은 음악이기를 거부하는 것으로 자연의 소리를 담은 것입니다”라고 천거하였다. 
김문경은 “말러의 ‘교향곡 3번’은 마치 만화경과 같이 여러 심상을 표출하고 있어 표제의 의미를 단번에 파악하기가 수월하지 않다”고 하였으며, 음악평론가 ‘에릭 쿡’은 1악장을 지적하면서 ‘총체적 실패’로 보고 “교향곡 3번은 여섯 악장이 통일성을 이루는 데 실패한 말러의 흉측한 교향곡 중 하나”라고 혹평했다. 
말러는 ‘교향곡 2번’을 6년에 걸쳐 내놓고는 무려 6악장이나 되는 규모로 작곡자 자신도 놀랄만큼 지대한 ‘교향곡 3번’을 “이 교향곡이 내게 갈채와 돈을 가져다주길 희망한다네. 왜냐하면 이 교향곡은 유머가 있고 밝은데다가 모든 세상의 거대한 웃음을 상징하기 때문이지”라고 하며 스스로 긍정하는 면모를 보이며 당당하게 1년 만에 작곡하여 세상에 내놓았다. 그러나 자신의 당당함과는 달리 델리킷(delicate)한 이 곡은 첫 1악장부터 교향곡으로서의 기본 상식을 뒤엎고는 일단은 소나타 형식이라 하나 음산한 레치타티보와 경쾌한 행진곡의 병치는 통상적으로 교향곡의 범주로 볼 수 없는데다 무려 875마디에 한 악장의 길이가 교향곡 한 곡의 길이로 준할 수 있는 무려 35분이니, 자신의 표현 –음악이기를 거부하려는 것 – 대로 그야말로 괴물악장이다. 
작곡자 자신이 ‘Der Weckruf!’(기상신호)로 기입한 호른 군의 포효하는 소리로 말러 교향곡 3번이 시작된다. 그러나 ‘산이 나에게 말하는 것’이라고 표제로 내세웠듯이 무생물적인 단계로 보이려는 듯 ‘제 1악장’은 금관과 타악기 소리로 자연의 울림을 담은 원초적인 악기가 주가 되어 있으며 주요 주제에는 거의 금관이 차지하고 있다. 교향곡(Symphony)의 미학에 길들여져 있고 이를 기대하고 있는 관중은 불현듯 닥친 주먹에 당한 듯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고 35분이나 지속되니 지루함에 녹초가 될 수밖에 없다.  
지휘자(박영민)는 패러독시컬하고 혼돈스럽지 않을 수 없는 이 곡(제1악장)을 돌고 도는 론도 형식으로 분리한 세 가지 영역 –금관이 주도하는 레치타티보와 아리오조 영역, 신비의 판을 그려낸 세레나데적 영역, 신화의 바쿠스적인 영역 –을 머리에 담고 있는 듯 가늠하며 표현하여 난해한 이 곡을 이끌었다. 
금관과 타악기의 굉음(제1악장)이 그치고 현과 목관의 봄볕 같은 부드러운 앙상블(제2악장: 꽃 이야기)은 작곡자 말러가 “이 곡은 꽃의 성향이 그렇듯 내가 쓴 음악 가운데 가장 평안한 음악입니다. 마치 꽃이 유연한 줄기 위에서 흔들리며 잔물결을 이루듯이”라고 말했듯이 목관의 풍부하고 따뜻한 소리에 바이올린의 다양한 음색의 오묘한 소리가 고운 꽃에서 풍겨나는 향 같았다. “…이 순진한 꽃의 유쾌함은 지속되지 못하고…거친 폭풍이 초장을 쓸고 꽃과 잎사귀를 뒤흔들어놓습니다. 마치 더 높은 곳으로 속죄를 갈구하듯이 그들은 신음하고 흐느낍니다”라고 작곡자가 말했듯이 희롱하는 듯한 요사스러운 사운드, ‘한 여름 밤의 꿈’ 풍의 노래로 마친다. 
뻐꾸기 폴카, 우편나팔의 세레나데, 부제가 붙은 ‘제3악장’은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에서 가사를 소재로 한 것인데 말러의 전14곡의 가곡집 ‘청년시절의 노래’의 제11번째 곡인 ‘여름밤의 꿈’에 의한 것이다. 이 가곡은 ‘뻐꾸기는 수양버들 동굴 속에 빠져 죽었다. 나이팅게일은 푸른 가지에서 울면서 이제 우리들을 즐겁게 해주리’라는 가사이다. 동물에 관한 소리를 가곡의 일부분을 인용하여 작곡하였다. 연주의 프로그램에 보면 “인간이 출현하기 전 숲속의 삶은 평온하고 방해받지 않았다. 곧 동물들은 인간의 출현은 목격한다. 인간은 조용히 동물들을 지나쳐 걷지만 미래의 환난으로 동물들은 공포를 갖게 된다”고 하였다. 
사람으로 인하여 공포에 휩싸인 동물들의 두려움을 표현하기 위하여 현의 트레몰로가 fff에서 pp로 다이나믹의 낙차를 보이고 코다 직전에는 ppppp가 그려져 있어 극단적인 강약법을 쓴 것이 이색적이다. ‘인간이 내게 말하는 것’이라는 부제가 붙은 ‘제4악장’은 텍스트를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가져왔다. 알토(이아경)가 부르는 노래 “오 인간이여! 조심하라! 깊은 밤은 무엇을 말하는가? 나는 자고 있었네! 그리고는 꿈에서 깨어났도다. 이 세상은 깊도다. 낮이 생각한 것보다 깊도다. 세상의 고통은 깊도다. 쾌락은 아직 비통함보다 깊구나! 고통은 말한다. 사라져라! 그러나 모든 쾌락은 영원을 갈망한다. 깊은 영원을!” 실로 숙연한 모습으로 알토 이아경이 저현의 반주에 따라 부른 이 노래는 관중도 깊이로 빠져들게 하였다. 
‘천사가 내게 말하는 것’의 부제가 붙은 ‘제 5악장’은 천사의 노래와 베드로의 회개로 이어진다. 종소리, 글로켄슈필, 소년합창, 여성합창이 경건한 분위기로 이끈다. 텍스트는 ‘소년마술뿔피리’에서 인용되었고 독창 및 피아노 버전을 합창과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바꾸었던 것이다. 
소년합창단(부천유스콰이어)이 빔 밤(Bimm Bamm)으로 외쳐 종소리를 모방하고 알토 독창도 여기에 끼어든다. 여성합창단(부천시립합창단과 과천시립여성합창단)이 실로 경건한 소리로 노래한다. “세 천사가 달콤한 노래를 부르고 있었네. 그 노래는 천국에서 복되게 울려 퍼지고 그들은 기쁨의 환성을 질렀네. 베드로는 무죄라고... 천국은 행복한 곳이요, 천국의 기쁨은 끝이 없어라. 예수께서 베드로와 모든 이의 영원한 행복을 위해 천국의 기쁨을 준비하셨도다.” 
알토의 독창 “어찌 울지 않을 수 있으리까”는 베드로의 역으로 노래한 것이다. 복음적인 이 노래들은 관중을 경건한 마음으로 이끈다. 
‘사랑이 내게 말하는 것’이라는 부제가 붙은 마지막 장 ‘제6악장’은 실로 감동적인 곡으로 곡 전체를 아울러 완성적인 피날레로서 이 곡을 듣기 위해 이 전의 긴 부분도 인내하여 기다리고 있으며, 이 악장에서 현의 표현이 독특한 아름다움으로 인해 발레음악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제5악장의 종소리의 여운이 사라져 갈 무렵 바이올린이 가장 낮은 음역대를 연주하는 G선으로 주제를 조용히 찬가 풍으로 노래한다. 장조와 단조가 번갈아 제시되면서 곡은 두 번 고통의 클라이막스를 거치게 된다. 이는 숭고한 사랑으로 가는 여정에 필연적으로 절망과 고통이 동반됨을 표현한 것이다. 조용한 가운데 플루트와 피콜로가 솔로 연주로 깨달음을 주는 듯, 트럼펫 군이 주요 주제를 장엄하게 울리는 재현부는 모든 걱정과 갈등이 해소되고 지복의 단계로 상승함을 나타내어 가장 지고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수용코자 하였다. 
 
적극적으로 다가서 신선한 충격으로 관중을 사로잡은 박영민 
 
지휘자 박영민은 서울음대에서 작곡을 전공하고 이어 오케스트라 지휘를 전공하고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국립음대를 졸업하고는 지휘자 단골 코스로 여기는 키지아나 아카데미를 수료하였다. 2015년 부천필의 상임지휘자로 부임하고는 부천필만의 사운드 구축을 위해 다양한 시도로 열정을 쏟아 클래식 음악계에 관심을 모으고 있다.  
금번 공연(박영민의 말러 3번)은 말러 교향곡 중에서도 가장 난해한 말러 3번 연주를 보면대 없이 바짝 달려들어 지휘함으로서 또 다른 면을 보여주었다. 
대부분의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meter(박자)에 연연하는 경우가 많은데 박영민은 이를 벗어나 곡의 스토리(흐름)에 중심을 두고 오케스트라 모든 소리를 지휘자 지휘에 모아 앙상블을 이루는 모습이 새롭게 보였다. 금번 공연에서도 특히 변화무쌍한데다 템포까지 빨라 대부분의 지휘자들이 연주할 때 허겁지겁하는 경우가 많은 제 1악장에서도 중심 축을 놓치지 않고 흐름을 이어가는 모습이 돋보였다. 특히 변화무쌍한데다 템포까지 바른 꼭을 순간적 포착으로 흐름을 이어가는 것에 감탄이라기보다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따뜻한 봄볕에 활짝 핀 꽃이 향기를 풍기는 듯한 ‘제2악장’, 극적인 표현으로 동물세계의 굴곡을 읽어낸 ‘제3악장’, 관중이 숨소리까지 멈추게 한 알토 독창을 축으로 한 앙상블의 ‘제4악장’, 더할 나위 없는 신앙적 경건의 극치를 이룬 소년합창과 여성합창의 ‘제5악장’, 음악미학의 최상의 묘미로 곡을 종결지은 마지막 장 ‘제6악장’, 
말러 자신이 음악이 아니라고 표현한 ‘제1악장’을 제외시키거나 변혁할 수만 있다면 ‘박영민의 말러 3번’ 공연은 심포니 연주 역사상 최상의 연주로 여겨도 좋을 것이다. 
지휘자(박영민)는 작곡자의 미학(창작품)을 깊이 파고들어가 마음으로 담아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옮겨 공감대를 형성하고는 단원들이 내는 각양의 소리를 자신의 몸에 담아 앙상블을 이루어 표현(지휘)하여 관중에게 미적 공감을 이루고자 하는 그의 오케스트레이션(연주)은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클래식 예술계에 플러스 알파(+a)가 되어 신선한 충격이 되리라 여겨진다.  
 
 
글|조진형(한국음악평론가협의회회장; 문인)